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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고전에게 인생을 묻다 - 삶에 대한 사색이 필요한 시간
이경주.우경임 지음 / 글담출판 / 2013년 5월
평점 :
나는 내가 20대와 30대이던 시절, 내 나이가 마흔 일 때 쯤에는 내 삶이 참 여유롭고 풍요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남자를 사랑했던 20대의 그때.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 임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펴라!"
나는 인생을 이렇게 '사노라면' 마흔 즈음에는 고생한 보람이 있어 옛말하며 살 날이 올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마흔 하고도 중반에 접어들어선 지금, 나는 2,30대 시절 보다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
가족부양이란 의무는 내 어깨를 점점 더 강하게 짓누르고 있다.
20대에 외쳤던 정의는 30대를 거치면서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그때의 '함께'라는 가치는 잊고 산지 오래다.
'마흔 고전에 인생을 묻다'의 저자는 마흔을 '삶의 가을'이라고 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나에게 마흔은 지글지글 끓고 있는 한여름이다.
부양해야 할 나의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부모님은 점점 나이들고 병에 시달린다. 내 통장의 잔고는 언제나, 늘, 항상 마이너스다. 빚은 늘 나의 목을 조이고, 세상은 나에게 사정 없이 채찍질 한다. 멈추지 말고 달려라. 남들보다 더 빨리 달려라. 그래야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그래서 나는 앞만 보고 달렸다. 그랬더니 내 앞에 펼쳐진 것은 샹그릴라 같은 낙원이 아니라 천길 낭떠러지더라.
마흔은 '풍요와 여유'의 다른 이름 일 것이란 나의 기대는 현실을 모르는 몽상가의 착각이었다.
얼마 전에 다시 꺼내 읽은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
그에게도 나의 2,30 대와 같은 청춘이 있었다.
밤을 세워 팔씨름을 하고도 거뜬히 고기잡이를 나갈 수 있었던 펄펄 뛰는 청춘의 몸뚱이가 있었고, 그런 청춘을 따라 돈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으리라.
이젠 늙어서 그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낡은 배 한 척과 내일 바다로 나가 고기 잡이 미끼로 쓸 고기 몇 마리, 몇날 며칠 고기잡이에 실패해도 그를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어린 친구. 그리고 그가 고기 잡이 나갈 바다.
누군가는 산티아고를 패배자로 볼 지도 모른다. 어부로서의 그의 운이 끝났다고 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는 오늘도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물 때를 기다릴 줄 알고, 상대를 인정할 줄 알고,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안다. 누구도 무시 못한 어마어마한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 그 끝이 처참한 결과를 낳더라도. 그래도 살아 집으로 돌아오지 않던가?
그리고 산티아고는 내일 또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갈 것이다.
산티아고가 젊은 시절의 패기만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는 바다에서 죽었을 것이다.
생존의 바다에서 허덕이고 있는 나는 아직 더 살아야하는데.....
산티아고가 내게 말한다.
"내일도 있고 또 내일도 있어, 그리고 고기는 청새치만 있는 건 아니라오!"
10대에도 고전을 읽었다.
지식으로.
20대에도 고전을 읽었다.
겉멋으로.
마흔에 고전을 읽자니 눈물이 난다.
마음으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