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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평점 :
나는 과연 먹기 위해 살고 있나, 살기위해 먹고 있나, 가끔은 참 궁금타.
너무 가난하여 살기 위해 먹은 사람 도스토예프스키. '입과 배의 노예는 언제나 노예다'라고 먹는 쾌락에 탐닉하는 인간에게 일침을 날린 톨스토이의 기준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아주 좋아했을 것이란 저자 석영중 씨의 의 지적이 재미있다.
인간의 영혼을 탐색하느라 바빠서 인간이 무얼 먹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일 여유조차 없을만큼 궁핍했던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등장인물인 아무거나 막 드신 조시마 장로와 극도로 절식했던 페라폰트 신부의 식생활상의 대립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입에서 나오는 것', 바로 그 입에서 나오는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육체의 양식을 해결해보자고 일어난 혁명이 오히려 영혼의 양식으로 주린 육체를 채워야만 했을 러시아.
자신 역시 이반 데니소비치와 마찬가지로 1945년부터 1953년까지 8년에 걸쳐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오랜 수감생활을 했던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통해 육체의 양식이 영혼의 양식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수용소에 갇혀 있는 죄수들은 취침 시간을 제오하면 아침 식사 시간 10분과 점심 시간 5분, 그리고 저년 식사 시간 5분을 위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그 진미를 알 수 있도록 먹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 조그마한 빵 조각을 먹듯이 먹어야 한다. 조금씩 이안에 넣고 혀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양쪽 볼에서 침이 흘러나오게 한다. 그러면 이 설익은 검은 빵이나마 얼마나 향기로운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이 지겨운가? 천만에."
"점심도 곱빼기, 저녁도 곱빼기. 게다가 식사를 마친 그에게는 지금 상여급 식으로 받은 400그램의 빵 덩어리와 200그램의 빵 덩어리가 있다. 그는 생각한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이쯤되면 '먹는 행위'가 '인간의 존엄성'과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는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하겠다.
오늘 하루 세끼를 먹기위해 나는 하루를 노동으로 꽉 채운다.
그래도 나와 가족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톨스토이가 걱정하던 달고 기름진 쾌락 수준의 음식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영혼이 구원 받고 있다고 기뻐해야 하나?
나의 이 삐딱함.
음식에도 계급이 있다.
푸쉬킨이 아내의 부정(?)에서 원인이 된 죽음의 순간 딸기를 먹으면서 행복해하며 죽었다지만, 문학을 통해 러시아 제국에 새로이 이식되어 만들어진 선진의 서구 음식문화에 대해 비판을 날려주었듯이, 그때 그시절이나, 러시아나, 우리나라나 음식 앞에서 조차 만인 평등은 역시 없는 모양이다.
아쉽다. 아니, 부끄럽다.
석영중 씨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냈건만, 나의 독서 이력이 저급해서 이책에서 언급된 러시아 대문호들의 작품을 읽은 것이 많지 않으니.
고전문학이라 불리나 사실은 근현대 문학인 러시아 문학을 음식이라는 코드로 재해석해 한 권에 책에 담아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전 다시 읽기 열풍이라 할 만큼 요즘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단순한 읽기도 좋지만, 다시 읽기를 할 때는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와 같은 주제로의 읽기도 참 가치 있는 독서가 될 듯하다.
이 책에서 언급되었으나 아직 읽지 못했던 작가들의 책을 찾아 반드시 읽어야 되겠다는 의무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