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이호철 문학재단 총서 1
이호철 지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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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호철의 판문점을 처음 만난 것은 80년 대가 끝나가던 대학 신입생 때였다. 

 

군인 출신의 양복을 입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서너 명 이상이 모일려고 해도 신고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모일 수 있었고, 자고 일어나 학교를 가면 밤 사이에 어느 과의 어느 선배가 기무사로, 안기부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매일 듣던 시절이었다.

대학 내에 사복을 입은 경찰이 상주했고, 프락치라는 이상한 사람들의 감시가 사방에 가득했으며, 교내 신문사니 편집국이니 학생회실이니 하는 곳은 수시로 경찰들이 수색영장도 없이 털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의 봄은 캠퍼스의 봄과 함께 왔다고는 했지만, 책을 읽고 토론하는데도 비밀 접선하듯이 해야하는 이상한 상황이 신입생인 내겐 이해불능의 요상한 풍경이었다.

통일이란 말만 꺼내도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간다는데 지은 죄가 없어도 간이 벌럭이던 시절에 판문점이란 소설을 가지고 토론을 했으니, 그래서 나는 소설 판문점이 체제를 전복하자는 금서인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1961년 작 판문점은 전쟁때 월남한 작가 진수가 판문점에서 만난 북측 여기자와의 짧은 만남을 그린 소설이었다.

남북간의 팽팽한 긴장감이나, 프락치의 감시망을 피해 가면서 까지 책읽은 소감을 나눌 만한 내용이라곤 어디도 없는 남남북녀의 그렇고 그런 시시덕거림 정도라는 느낌.

 

"졸음이 오는 듯한 그 남쪽 분위기, 기지개를 켜는 듯한 감미한 맛, 적당하게만 토퇴폐적인 것이 풋익는 그 완숙한 냄새, 조금쯤 무리를 해도 용서가 될 듯싶은 펑퍼짐한 언덕 같은 관용, 조금쯤 쓸쓸하고 괴괴한 분위기가, 대에 따라서는 애교에 넘친 적당한 허풍, 당신들이 자유라고 일컫는 그 권태가 섞인 분위기는 확실히 짙은 냄새로 휩싸아요." -201쪽-

 

20년도 훌쩍 지나 다시 만난 판문점에서의 나의 느낌이 바로 이렇다.

 

30대의 이호철이 기자로 신분을 위장해 찾았던 판문점에서의 일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작품에서 이호철은 오래지 않는 미래에 남북이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 상상한 모양이다.

 

'1953년 생겼다가 19**년에 없어졌다. 지금의 개성시의 남단 문회회관이 바로 그 자리다....이 나라 북위 38도선상 근처에 있었던 해괴망측한 잡물이었다....바로 한가운데 가로지른 선이 지금 문화회관의 변소에 해당된다는 것이다.고증학자 설교수의 설에 의하면 변소 속의 변기가 바로 경계였다니 익살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을 50년이나 건너 뛰어 이제 80대 노인이 된 진수가, 옛시절 기자였던 영호와 만나 당시를 회상하면서 판문점 2가 시작된다.

주로 판문점이란 소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뒷이야기 쯤 된다고 할까.

전작에서는 진수 자신의 가족을 통해 남측의 기득권 층의 삶에 대해서는 비판해두고 있지만,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남북의 민중의 삶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판문점 2에서는 특히 북한의 세습체제에 대한 비판과 북쪽 사람들의 아픈 삶에 대해 1편과 비교해보면 아주 적극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두고 있다.

그런데 판문점 2에서는 백낙청 교수의 '2013년 체제 만들기'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까지 비판해 두고 있는데 이호철 작가가 왜 하필이면 '2013년 체제 만들기'를 다루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판문점이란 소설 자체가 남북 분단과 통일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이 문제에 좀더 적극적인 진보 진영에 대해 이야기해도 되었을텐데, 그것이 왜 하필이면  백낙청이었을까?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이 책이 자그마치 1961년에 쓰였다니, (그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나는 지금까지 그 소설이 80년대에 나온 줄알았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이 끝난지 몇 해 되지도 않은 시기에 이런 내용의 소설이 등장 할 수 있었다니. 

안타까움이라고 해야하나.

진수의 말대로 1980년 대의 언제쯤엔가는 통일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했듯이, 나도 남북의 긴장이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이어질 줄은 물랐다.

어쩌면 앞으로는 지금까지 보다 더 원수처럼 물고뜯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남북의 민중들의 삶은 또 어떻게 펼쳐질까?

이호철이 판문점2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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