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사라지는 시간 - 오이겐 루게 장편소설
오이겐 루게 지음, 이재영 옮김 / 문예중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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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다 다른 기억과 추억을 갖기 마련이다.

 

나는 아무런 기억이 없는데 10여 년 만에 만난 친구는 그 오랜 시간 전 어느 때 내가 한 말 때문에 상처를 입었노라 고백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무런 기억이 없으니 어떻게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너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지금이라도 미안하다 사과하는 수밖에.

 

그러나 동독에서는 그런 정도로는 안 된다.

 

1989년 10월 1일, 동독 사회주의의 시작이자, 이 가족의 시작이라 할 빌헬름의 생일 파티에 대한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빌헬름은 동독 사회주의 건설에 헌신한 공을 인정받아 90세 생일날 훈장을 받고, 동독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노래를 합창하며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한다. 그가 동독에 공헌한 공은 다름아닌 비밀경찰 행위다.

그의 아내 샤로테는 그런 빌헬름을 독살 한 날이었고, 러시아에서 이주해와 동독 사회주의를 누렸던 며느리 이리나는 알콜중독에 빠진 날이다. 손자 알렉산더는 서독으로 탈출한 날이며, 증손자는 할아버지로 부터 박제된 이구아나를 선물받고, 아버지로 부터는 버림받은 날이 될 것이다.

 

망명지 멕시코에서 새조국 건설을 위해 되돌아 온 동독에서 샤로테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제 편안히 눈감을 날만 기다리면 될 나이에 그녀는 왜 남편을 독살했을까?

나는 빌헬름의 슈타지로 불리는 비밀경찰들의 공포정치, 동독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감이라고 본다.  

그녀의 아들 쿠르드와 베르너는 스탈린의 외교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용소 십년 감금형을 선고 받고 시베리아에서 벌목공으로 노동수용소 생활을 해야했고, 둘째 아들 베르너는 결국 배고픔과 추위로 얼어죽게 된다. 그 원인의 출발이 바로 빌헬름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아들마저도 고발해야 하는 공포의 사회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반성은 커녕, 동독 사회주의를 누리다가 훈장도 모자라 그 시대를 찬양하기까지 하다니.

늙은 공산주의자들이 마시는 술이, 합창이, 웃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요구했을까.

 

그녀가 멕시코에서 돌아오던 배에서 그려보았던 조국이, 이런 모습의 조국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알렉산더의 멕시코 행은 어쩌면 이 가족의 비극과 상처의 출발점에서부터 힐링을 얻고자하는 목적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애초에 이 가족의 출발지가 왜 멕시코인지에 대해서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동독이 역사에서 사라진지 30년이 넘었다.

아직도 솔직한 동독 사회주의 시절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이책을 통해 나는 겨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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