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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 복수와 생존을 둘러싼 실화
존 베일런트 지음, 박연진 옮김 / 솟을북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에게 연해주로 불리는 결코 낯설지만은 않은 러시아 프리모례.
1997년 12월 어느 날, 이곳에서 마르코프라는 사내가 야생 호랑이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고 한때는 그의 친구였던 유리 투루시가 이끄는 타이거 정찰대가 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프리모레의 작은 마을 소볼로녜로 찾아든다.
유리 투루시와 타이거 정찰대는 호랑이를 사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호랑이를 밀렵하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호랑일르 보호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호랑이를 죽이려 하는지, 호랑이가 왜 사람들을 잡아 먹는지를 밝히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선에서'를 책으로 다시 엮어 출판 한 것이 바로 '타이거' 이 책이다.
영하 45도~영상 38도의 시베리아의 미림에서도 살아남았고, 북극의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유일한 호랑이 '아무르호랑이'의 몸무게는 250 킬로그램, 어른 손가락 길이만한 엄니와 벨로키랍토르의 발톱과 같은 날카롭고 굽은 발톱은 길이만 10센티, 몸의 길이는 2.5미터, 높이는 1미터인 동물을 상상해 본다.
그것이 호랑이란다.
그러나 나는 상상불가다.
내게 호랑이는 기운 빠진채로 늘 하품만하는 동물원 우리 속의 호랑이거나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적 곶감이 제일 무섭다던 그 호랑이가 다이기 때문이다. 혹은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하던 독립군이 어찌나 용맹하던지 호랑이도 거뜬히 사냥했다던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로 겨울밤을 밝히던 이야기 속의 존재다.
그러나 이 책 '타이거'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오랜 사냥 경험이 많은 사냥꾼들 조차도 두려움에 떠는 존재이다.
20세기 초 아시아에 서식하던 호랑이는 7만 5,000마리가 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2008년 기준으로 프리모례와 남부 하바롭스키 지역에서 450마리 졍도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호랑이의 95%가 여가로서의 사냥, 아름다움을 이유로, 약재로 쓰이기 위해, 돈벌이를 위해, 영역 싸움으로, 앙갚음에 희생당해 죽음을 맞았다.
과거에는 인간의 우월의식(동물의 왕을 사냥했다는)에서의 사냥이 주였다면 현대에 와서는 인간의 돈벌이 (이 책에서는 주로 중국인의 수요가 100%)를 위해 호랑이가 사냥 당한다.
내가 이 책에서 관심을 가진 부분은 프리모례로 대변되는 이 지역의 러시아 국민들의 삶이다.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마르코프란 인물은 죽음은 거대한 대륙의 동쪽 끝에서였지만 태어난 곳은 대륙의 서쪽 끝이었다.
레닌과 그의 후계자 스탈린에 의한 강제 이주에 정책에 의해 이곳까지 흘러들었고,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한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호랑이의 음식을 훔친 그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호랑이와 마찬가지 신세였다.
마르코프의 죽음에 이은 또다른 체첸에서 군생활을 했다는 용맹한 젊은이마저 호랑이에게 무참히 살륙 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 숲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공자의 예기 편에서 든 것처럼 호랑이보다 무서운 정치 때문이다.
영역싸움에서 가장 상위에서 충돌한 인간과 호랑이.
호랑이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고, 인간에겐 이땅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좋은 곳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만이라도 호랑이의 영역으로 놔두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메세지를 이 책은 전달하고픈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주석이 달린 '451쪽'의 글을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호랑이보다 용맹했다던 조선인, 그들의 슬픈 이야기가 나온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이념의 격랑에 휩쓸려 버린 그들의 삶이, 호랑이의 슬픈 포효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