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하나가 되지 못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최상명 지음 / 푸른숲 / 2012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정말 몰랐습니다. 

그가 이토록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는지.

고문으로 인한 파킨슨 병이 그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도,

그가 일 년의 몇 달은 두려움에 떨고 아파 우는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가 축구를 하고, 2006년 개성을 방문했을 때 연단 위에 올라간 그를 춤판을 벌였다고 보수 언론들이 그를 마녀사냥 하듯 몰아 붙였을 때도,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장을 지키다 경찰에 짓밟히던 그때도.

 

그가 고문을 이겨냈고 인간한계를 극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자신을 고문했던 이근안을 만났다고 하길래 이근안이 김근태가 자신을 용서했다고 떠벌리고 다니기에 김근태는 역시 대인배라 생각했습니다.

 

여당의 국회의원이 되고, 최고위원에 이어 당의장이 되고, 한미FTA를 통과 시켰을 때,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양심선언을 했을 때.

전 그를 버렸습니다.

그도 다른 정치인과 다를바 없다고, 입신양명에만 관심있다고.

 

그런데 그는 속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게 눌려 죽을 것 같더라고. 밟히고....'

---43쪽~44쪽---

'고 김근태 의원은 2008년부터 총 4차례에 걸쳐 YTN 조합원들의 투쟁 현장을 방문해 지지했다. 방문 당시에도 몸이 좋지 않아 캔을 딸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46쪽---

 

자신을 직접 고문했던자는 목사가 되어 나라를 구한 애국자로 행세하고 다니고, 고문을 사주했던 권력자는 전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면서도 골프를 즐기건만, 그는 기어이 고문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64세였습니다.

 

그럼 그는 정말 실패한 사람이었을까요?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그는 국민연금을 지켰고 영리 의료 법안을 반대했습니다.

(의료 영리법안은 2012년 4월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허용되었다.)

이제 그의 양심고백으로 정치자금법이 개정되었고, 그가 최초로 제기했던 국민경선제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고,  이어 문재인 씨가 국민경선으로 대통령 후보가 되고, 한미FTA 재협상은 차기 정부의 당연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김근태는 이명박 정부를 '민간독재'라 규정하고 '국민 불복종 운동'을 제안하고 역사와 서민을 위한 올바른 정권 창출을 위한 준비를 역설햇다. 이것이 바로 김근태가 2002년에 '제2차 민주대연합'을 주장하고자 한 이유였습니다.

---104쪽~ 105쪽--

문재인 후보의 시민의 정부는 여기에서 출발한듯 보입니다.

신자유주의로 부터 국민들을 지켜야 한다는 김근태의 경제인간화는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우선 분배되는 원칙의 보장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경제민주화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선을 며칠 앞운 지금,

 

 

"시간이 갈 수록 빛나는 김근태의 비전

 알아갈수록 가슴 치는 김근태의 진심"

 

그의 마지막 호소

"2012년을 점령하라!!!"

 

제 가슴을 울립니다.

 

--북카페의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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