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고요한 노을이…
보리스 바실리예프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러시아 문학.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솔제니친, 고리끼 이외에 내가 알고 있는 작가가 있기나 했던가?

 

사회주의 리얼리즘 전쟁문학. 

너무 거창한가?

1969년에 쓴 작품이니 곳곳에 사회주의적 색채가 진하게 묻어난다.

전쟁중이건만 철없어 보일만큼 밝고 명랑한 아가씨들, 도무지 총이라고는 쏘아보지도 못했을 것같은 대책없는 여자들이지만 전투기를 향해 고사포를 쏘고, 독일군에게 기관총을 쏠 때는 두려움이 없다.

주인공 바스꼬프가 여성 병사들에 대한 남성주의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하고.

여성이 굳이 총을 들고 군복을 입고 전쟁에 참전하는 것에 의구심을 갖는 내가 오히려 이상하리 만치 당연하게 그려진 내용들.

독일군에 대한 적개심.

 

 

바실리예프의 간결한 문장은 책을 읽는 나로하여금 그들과 함께 숲길을 뛰어다니게 했고, 호수를 건너며, 늪에 빠져 허우적이게 했고, 독일군과의 대치에서 두려움에 떨게 했다. 

칼에 찔려 죽은 그녀의 주검을 만났을 때는 칼이 내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선명함을 느꼈고, 연락병으로 지원군을 요청하러 떠나던 리자가 빠졌던 늪의 그 차가운 뻘이 마치 내 다리에라도 달라붙는 것 같던 느낌이 들었다.(이하는 스포일러 주의보로 생략)

나는 그들이 뛰어들었던 자작나무 숲과 풀밭과 바위 언덕이 눈앞에 펼쳐진듯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바스꼬프가 자신의 병사를 보호하기 위해 무기도 없는 맨몸으로 독일군을 끌고 다니던 숲은 끝이 없고, 평원을 가로 지르는 호수는 거대한 대륙 러시아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호수 위를 비끼는 바람, 아침 노을, 백야의 밤, 햇살 따뜻한 풀밭, 작가가 그려둔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를 읽다보면 도통 전투라는건 일어나지도 않을것 같은 평화마져 느껴진다.

 

그러나,전투는 벌어진다.

전장에서의 죽음치고 슬프지 않는 죽음이 있을까?

대부분의 전쟁문학이 전쟁의 비극, 참혹함, 고통을 중심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작품, 뭔가 느낌이 다르다.

여성 병사 5명을 이끌고 독일군 정규군을 저지하러 떠나던 바스꼬프 특무상사의 무모하기까지한 결단력.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마치 소풍가는 마냥 따라 나선 여성 병사들과 서로에 대한 믿음과 끈끈한 동지애.

 

차례로 맞게 되는 죽음.

그녀들이 피흘리며 쓰러져 간 그 숲에 노을이 지고 고요가 깃들 때,

그곳을 찾아 올 누군가가 바로 자신의 아이이기를 바랬던 간절한 마음으로 그 곳을 지키며 그녀들이 잠들었다.  

 

읽고나서도 가슴이 처참해지지 않는 전쟁문학.

 

이번에 나는 새로운 소설 하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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