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천산 수도원의 갑작스런 몰락과 지하방 벽에 써진 성경과 관련한 의문. 

천산 수도원을 둘러싼 인물들의 원죄와 욕망 그리고 속죄를 통한 구원의 이야기. 

 

사촌 누이를 사랑하게 된 소년 후.

누이를 농락한 박중위를 칼로 찌르고 나서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천산 수도원으로 가게 된다.

후가 천산 수도원에서 읽게 된 성경은 그에겐 거울이다.

"그것은 성경이 큰 거울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비추지 못하는 것, 비출 수 없는 것은 없다.....거울을 들여다볼수록 형제는 거울이 아니라 형제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을 읽을수록 형제는 성경이 아니라 형제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111쪽---

 

후는 압살롬의 길을 걷는다.

여동생을 범한 이복 형을 죽이고 자신의 딸에게 사라져버린 자신이 사랑했던 누이의 이름을 지어주고 그리워했던 것처럼  

천산 수도원을 떠나게 된 후는 사라져버린 누이를 찾아 헤맨다.

후는 오랜 헤매임 끝에 천산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로부터 시작된 벽서, 그는 과연 거기에 무엇을 담았던 것일까?

 

세상의 기억에서 자기를 없애는 것이 소원이었던 사람 한정효.

1961년 혼란에 빠진 사회를 안정시키고 가난과 부정부패에서 나라를 구한다는 대의를 따라 군복을 입은 장교 신분으로 한강을 건넌 선글라스를 낀 그와 함께 했던, 아내가 선물한 선글라스를 꼈던 한정효.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은 본연의 임무로 복귀한다는 것이 군사 혁명 위원회의 '혁명 공약'중에 하나였지만 그 공약은 그 이후의 다른 많은 약속들과 마찬가지로 지켜지지 않았다. 군은 정권을 넘겨줄 양심적인 정치인을 찾지 못했으므로 본연의 임무로 복귀할 수 없었고, 국민들의 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확신했으므로 본연의 임무로 복귀하는 대신 스스로 양심적인 정치인이 되는 편을 택했다. 본연의 임무로 복귀하지 않고 군복을 벗은 정치인의 힘은 군복을 벗기 전의 장군보다 더 커졌다."

---164쪽---

 

3선을 위해 헌법을 바꾸고, 공권력과 금력을 동원해서 다시 권력을 잡은 것으로 충분하다. 세 번이나 했고 10년이 넘었다. 지나쳤다. 이제 그만 해야 한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계엄령은 안 된다. 국회 해산도 안 되고 정치 활동 중단도 안 되고 대학의 문을 닫는 것도 안 된다. 영구 집권은 불가능하고 무모한 욕망이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167쪽---

 

다른 날 한정효는 같은 말을 했고, 구체적인 계획안을 문서로 제시했다.

결국 "임자가 지금 나한테 훈계하는 건가? 못쓰겠다."는 선언을 듣고 유폐당한다.

외국으로 나가 언론과의 회견을 한 측근으로 타격을 입은 장군은 그를 천산 수도원에 감금해버린다.

세월이 흘러 자신 때문에 피해를 입을 천산 수도원 형제들을 위해 그곳을 떠나 머나먼 길을 걸었으나 다시 돌아와 역사와 형제들에게 속죄해야 했던 한정효.

그는 벽서에 무엇을 담았을까?

 

상부의 명령으로 한정효를 천산 수도원에 감금했고, 그의 감금을 위해 후를 강제로 세상으로 내보냈으며, 훗날 저돌적이고 야욕에 사로잡힌 또 다른 장군이  선글라스 장군이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장군의 또다른 장교의 명령으로 천산 수도원을 파괴했던 장.

 

그는 자신이 했던 행동을 교회사 강사 차동원의 입을 빌어 속죄한다.

 

선글라스 장군에 의해 한번 형제를 강제로 떠나 보내야했던 수도사들.

20년이 지나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다시 그때와 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형제들을 산 사람들을 위한 방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위한 방에 몰아 넣고 입구를 시멘트로 막아버렸던 그 일을 했던 강영호는 자신의 여행기 책을 통해 천산 수도원을 세상 밖으로 알려 속죄하고자 한다.

 

"세상의 권력은 그들의 구별된 공간인 천산을 침범하고 파괴하여 카타콤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침범하고 파괴하는 권력이 행사되는 이 세상이야말로 카타콤에 다름 아님을 그들의 구별된 삶과 특별한 죽음으로 증거했다. "

---346쪽---

 

 

정말 단순한 추리소설이라 여기고 들었던 책이 어찌나 가슴을 누르는지.

한정효의 감금을 두고 말한다.

그들은 그를 가둠으로서 감옥을 만들고자 했지만 그는 스스로가 나가기를 거부했으므로 수도원이 된 것이다.  

 

작가의 뛰어난 묘사 능력에 문장 하나하나 허술하게 읽을 수가 없다.

십여년을 준비했다는 작가의 말이 헛말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