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든든한 내 편이던
박애희 지음 / 걷는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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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에게 나는 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7남매 맏딸로 태어나 학교 문턱도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자신 대신 어려운 가정형 편에도 남들이 미쳤다 손가락질하는데도 나를 대학에 보내주었습니다. 대신 낮 일도 모자라 달빛 아래 벼를 베야 했지요.

무명 치마 한 벌로 일 년이 뭡니까 다 닳아 찢어질 때까지 입어야 했던 어린 시절 고운 옷 한 번 입어보지 못한 엄마는 그 한을 나에겐 철마다 고운 꽃무늬 천 사다 직접 옷을 만들어 입히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지긋지긋했던 농사일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그늘 밑에서 하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며 농삿일 대신 시집을 읽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배부르게 밥 한 그릇 먹어보지 못한 배고품의 설움을 딸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엄마는 검은 보리밥에 물 말아 배채우면서 딸에겐 하얀 쌀밥이 더 많은 밥을 떠 주셨습니다. 입이 짧아 아침밥 안 먹고 학교 가는 딸이 안스러워 그 귀한 콩음료를 따스하게 데워 동네 큰길까지 쫓아 나와 주머니에 넣어주던 엄마, 고등어 구이를 너무 좋아하는 딸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 양보하고 엄마는 고소하고 포실한 고등어 살 대신 뼈만 씹어야 했습니다.

그 사랑을 알지 못한 채 결혼하고 애들 수발에 남편 담배 심부름까지 할 때면 내가 이렇게 살라고 엄마가 그리 키우진 않았는데, 이제사 생각합니다.

그러함에도 나에게 엄마는 극성스럽고 무식하며 사나운 사람이었습니다.

왜 나는 엄마도 첫사랑에 설레는 볼 빨간 스무 살 시절이 있었을 거라, 책가방 메고 학교 가는 친구들을 보며 등에 업힌 동생을 떼어내지 못하는 일곱 살 어린 아기였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혹처럼 매달리는 아이들 남편 떨쳐버리고 훨훨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나 혼자 잘나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엄마가 있어서 였습니다.

아,나는 엄마 발꿈치도 못 따라갈 바보입니다.

첫사랑인 큰아들에겐 차마 아무 말도 전하지 못했다. -71쪽-

우리 엄마는 엄마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갔던 엄마의 첫사랑이고 기둥이었던 아들과 하늘나라에서 재회했을까? 미쳐 다 못 주었던 사랑 다 퍼붓고 있을까?

"엄마, 되게 멋있는 사람이었었던 거 알지? 엄마 진짜 멋지게 살았어!"-71쪽-

15년 전 엄마가 숨을 거두던 그날 나는 이렇게 말해주는 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엄마의 선택을 원망만 했습니다.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을 읽으면서 난 왜 박애희 작가 같은 살가운 딸이 되지 못했나 참 후회됩니다.

나는 참 나쁜 딸입니다.

반성마저도 너무 늦었습니다.

햇살 따스한 날, 우리 엄마 좋아하던 탐스런 수국 한다발, 향이 좋은 헤이즐넛 한 잔 들고 엄마 무덤을 찾아가보려 합니다. 이번엔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을 엄마에게 읽어주려고요.

"너는 남들한테는 책도 잘 읽어주면서 나한테는 왜 안 읽어주냐?" 시던 엄마.

너무 늦었지만 이번엔 내가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든든한 내편이던' 엄마한테 읽어줄게.

엄마 미안, 살가운 딸이 되어주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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