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홀로서기 - 나는 정말 한국 사람일까?
조월호 지음 / 매직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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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환갑이 다 되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글을 쓰셨다는 저자는 눈물이 많고 정이 많은 반면 거침이 없으며 냉철할 정도로 현실적이기도 한 사람이다. 미군과 결혼하면서부터 미국생활을 이제 34년째 하고 있는 그녀는 천성 탓인지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주고도 또 주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미군부대에 다니시는 외삼촌 덕에 영어를 곧잘 했던 터라 미국에 가서도 그다지 언어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현지에서 듣는 영어는 확실히 달라서 죽어라고 공부하고 노력했던 과거가 있기에 유학생활이나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게다가 같이 살려고 결혼했던 남편은 심각한 알콜중독에 의처증이란 병으로 그녀의 결혼 생활을 힘겹게 했으니 그녀만큼 힘들게 살아온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과부가 홀아비 심정 안다고 그랬기에 더욱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데 발벗고 나섰는지도 모르겠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만을 믿고 남편의 모진 학대에도 꿋꿋이 버텼던 그녀가 교회를 안 가겠다는 남편의 통보에 13년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홀로서기를 했던 것은 어쩌면 그녀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을까. 양육비나 대학등록비까지도 전혀 기대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던 남편에게 위임장까지 써주며 훌훌 털어버리고 새 삶을 시작했던 것은 그녀만이 할 수 있는 당찬 결단이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10년 넘게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 양육비와 위자료로 팬티 한 장만 입혀 내쫓을 수 있게 약자를 위한 보장이 잘 되어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새 삶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은행에 취직하다가 퇴사하곤 없는 솜씨를 발휘해 바느질일을 시작했던 그녀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처음에 선뜻 돈을 주었던 지인들 덕분이었다. 그 당시에 100달러씩 돈을 그저 줬던 몇몇 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낯선 미국 땅에서 그녀가 살아남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랬던 기억을 절대 잊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그녀의 수많은 봉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민가서 처음 걱정되는 것이 집을 구하는 방법이나 법에 저촉되는 것이 없는지에 대한 것이 아닌가. 그녀가 처음 77년에 미국에 갔을 때 생각했던 것이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이 배우고 많이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특히나 미국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친절하기 때문에 법적인 것을 모를 때는 그 분야에 대해 전문가들에게 묻고 조언을 구하고 의학적인 것을 모를 때는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식으로 조금씩 지식을 얻어갔다. 그래서 그녀는 각계 각층 다양한 전문가들을 많이 알고 또 그들과 친분을 계속해서 유지한다. 특히 교회에서는 예배 후에 자체적으로 광고를 해서 점심을 드시러 오시라고 하면 꼭 30명은 모여서 밥을 같이 먹으니 그 관계가 안 지속될 리가 없는 것이다. 딱히 미국 음식을 하지 않아도 전라도 음식이나 김치를 많이 해놓아도 충분히 다 잘 먹고 바리바리 싸가기까지 하는 미국인들을 보면 정말 놀라울 뿐이다. 미국 음식에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그렇게나 베푸는 것을 보면 진짜 선한 사마리아인이 생각이 난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가게까지 그만 두고 돕는 것을 보면 유전자 자체가 다른 인종인 듯 싶다. 그랬기에 이민국에서는 그녀가 진짜 변호사인 줄 안다고. 그만큼 법적인 절차나 법규를 많이 알아두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능으로 기부를 한다.

 

게다가 그녀는 입양아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딸 진주가 바로 그런 입양아이기 때문이다. 온갖 병치레에 고생했던 그녀로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미숙아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진주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남편이 반대를 했지만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서 겨우 얻은 귀중한 딸이었다. 그러나 글 속에서 만난 그녀의 딸, 진주는 딱 조월호의 딸로밖에 태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금융업계에서 일을 하는 그녀가 해고되고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된 적이 있었는데 해고된 회사에서 그렇게 앙갚음을 한 이유가 바로 그녀의 단호한 정직성 때문이었다. 상사가 내연관계의 여자에게 돈을 쓴 것을 회사 공금으로 처리하라고 하는 명령을 어기고 집으로 발송했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상사의 보복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면접보러 갔던 회사에서 이 사실을 알고는 바로 채용하며 여기에서도 그렇게 정직하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단다. 절대 옳고 그름 앞에서 타협하지 않는 기질은 조월호의 딸이 아니고서는 행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정말 대단한 모녀였다. 이국의 땅에서 오히려 주인 행세를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 조월호 씨는 그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는 사람이다. 이 땅에 그런 사람을 많이 만들어두고 가시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임무가 아닐까 싶다. 읽으면서도 나도 많이 변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으니 책도 많이 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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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같이 좋은 선물 -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이야기
박 불케리아 지음, 윤진호 정리 / 예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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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의 엄마 수녀로 39년째 살아가고 계신 박 불케리아 수녀님이 구술한 것을 토대로 영화 「말아톤」, 「마이 파더」 등의 시나리오를 쓴 윤진호 씨가 정리한 책이다. 고아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단코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일 것으로 여겨진다. 내가 힘들게 도와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런데 그런 고아들이 뭉쳐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바로 1979년에 만들어진 부산 소년의 집 합주부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얼마나 대단하고 화려한 모습이 담겨져 있을까 상상했다. 그들이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했다는 소리를 듣고부터는 내가 모르는 음악가들의 아름다운 삶이나 영혼, 예술을 위해 꿈틀거리는 어린 청소년들의 고뇌들이 담겨있을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는 누가 썼는지, 어떤 관점에서 썼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탓이었다. 내가 음악인들을 대단하게 여기기 때문에 벌어진 헤프닝인데, 실제 책은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일단 화자가 합주부의 소년들이 아니라 박 불케리아 수녀님이라는 것부터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만약에 합주부에 있다가 음악가가 된 소년이 화자였다면 내가 읽고 싶은 그 내용이었을 수도. 하지만 실제는 아니었고, 그나마 합주부를 하다가 음대에 진학한 아이들의 현실도 비참했다. 대학 진학의 길은 고아에게 그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수녀님들이 상당히 많이 반대하고 많은 조건을 달고서 보내준다고 하셨다. 제 생활비를 제가 벌어야 하는 처지여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해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다른 음대생과 많이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 태어나서 음대에 진학하고서도 유학이나 다른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는 출발선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음대에 합격하고도 휴학을 하거나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나는 이런 실상을 보고 고아들의 장밋빛 미래를 그렸던 것을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 아이들은 하루를 살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심지어 평생 두려움에 떨며 하루를 살아가기도 하는데 나는 그들에 대한 처지를 공감은커녕 상상 비슷하게나마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합주부 아이들 중에는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깨달아 눈부시게 꽃피운 아이도 있었다. 그래서 시향에 들어가거나 외국으로 유학도 많이 다녀온 친구도 한,두 명 정도는 있었지만 실상은 여가 시간에는 음악이 좋아 클래식 악기를 손에서 떼지는 못하지만 일하는 곳은 공장인 친구들이 훨씬 많다.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은 바로 취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기술고등학교로 가는데 개개인의 적성이나 취향을 고려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렇기에 주위에서는 공돌이들이 여가 때 바이올린이나 플롯을 부는 것을 희한하게 보는 사람들도 많다. 돈도 비싼데 제일 먼저 월급을 받으면 악기부터 사는 그들이 아마도 희한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인생에 가장 우울한 처지에서 희망을 제시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히려 상황과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음악이, 합주부가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이 카네기홀에서 연주하게 된 것도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제껏 연주했던 아이들보다 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미 졸업한 학생들을 세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미국에 가서 연주를 한다고 일주일 이상 되는 시간을 그냥 쉬게 해줄 직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직장을 그만 두고 연주회를 하러 갔다 온 것을 보면 그 열정과 헌신이 쉽사리 이해되지도 않고, 뭔가 독특하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정말 독특하지 않은가. 제 생활비를 대신 내주는 것도 아닌데 취업 준비라는 중요한 상황에 있거나 중요한 시향 오디션이 있었던 시기에도 연주회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다니~ 솔직히 감정이 메말랐던 것인지,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희생을 했으나 얻은 것은 없었다고밖에 나는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그것은 뭔가를 희생했으면 나중에는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여겨왔던 내 가치관을 뒤흔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오신 수녀님을 보고 자라 와서 그런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고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행동은 아무나 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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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와의 티타임 - 친구를 사귀고 세상을 얻는 인간관계의 결정적 비결
창송 지음, 김수연 옮김, 정쯔 그림, 데일 카네기 / 미다스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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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보기 전까진 데일 카네기란 사람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여기저기서 그의 이름을 많이 듣다보니, 그런 인물이 있었나보다 하고만 지나갔을 뿐이다. 다만 강철왕 카네기와 성이 같아서 그런 비슷한 위인이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121년 전에 태어난 사람으로 최초로 「인간관계론」이나 「행복론」에 대해 역설했던 인물이다. 어머나~! 지금으로부터 121년 전이라면 1800년대 사람이란 말이 아닌가. 그런데 그 시대에서 벌써부터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단 말이야. 정말 대단한 인간이군.

 

이 책은 그의 방대한 저작 중에서 고르고 또 골라 중요한 엑기스만 담아낸 책이다. 미다스북스에서 카네기탄생 121주년 기념으로 특별히 펴낸 책이니까 말이다. 사실 이 사람의 책이 내가 얼핏 본 것만으로도 다섯 권은 넘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것을 다 보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한 권으로 나온 책을 보면 무지 반갑다. 뭐, 어차피 이 책을 보고 더 재미있으면 또 사보면 되는 거니까 처음엔 이렇게 한 권으로 시작하는 것이 나을 듯 싶다.

 

이 책은 구성이 좀 독특하다. 데일 카네기의 말만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주장한 것 중에서 제목으로 하나를 정하면 그에 따라 자그마한 만화가 등장해주시고, 실제 카네기의 책에서 발췌한 글이 짤막하게 들어가주신다. 표지의 보랏빛도 마음에 들고, 만화체의 그림도 앙증맞아서 참 재미나게 보았다. 그런데 그의 이론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익숙한 것이여서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을수도 있다. 처음에 내가 그래서 그의 이야기가 깊숙하게 와닿지 않았다. 피~ 나도 이런 말은 할 수 있어. 이딴 식의 말만 계속 나왔었는데, 어느 날 마음을 비우고 그저 뒤적이다가 얼핏 본 글귀 하나가 내 맘속에 들어왔다. “먼저 나를 낮추어라.” 지극히도 당연하고도 당연한 말인지라 평소같았으면 그저 무시하고 지나쳤어야 마땅한 글귀였는데, 그날따라 이 말이 지극히 강하게 내 마음을 내리쳤었다.

 

그날 직장에서 있었던 일 중에 내가 왠지 내 능력을 내세웠던 것이 있지 않았나 하는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기에, 아마도 그 말이 뇌리에 박혀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대단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을 그렇게 대단하게도 생각하지도 않는데, 왜 난 그리 잘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나 잘난 척을 할까 정말 한심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그런 만고불변의 진리를 말해준 이 책이 참 고마웠다. 평소같았으면 그저 튕겨버렸을 말이었는데, 가만히 앉아서 귀를 기울이게 해주어서....

 

정말 틈틈히 두고두고 읽어야 할 글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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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내 앞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 - 시로 옮기고 싶은 순간을 놓치다
로저 하우스덴 지음, 김미옥.윤영삼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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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의 감성이 드러나는 시 입문서라고 해도 무방한 시에세이이다. 시가 좋은데 왜 좋은지는 모르겠는 사람들을 위한, 혹은 시가 왜 좋은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특히나 예전부터 고전이라 불린 시가 아닌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시인들을 몇몇을 불러와 그들의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휠씬 접근하기도 쉽다. 시의 은근한 울림은 맘에 들지만 아직까지도 시가 어렵게만 느껴지는 내게도 퍽이나 유용한 책이었다.

 

이 책은 모두 16장으로 이루어졌는데, 각 장을 표현하는 제목들까지도 정말 시적이다. 워낙에 시에 대해서 많이 글을 썼던 에세이스트여서 그런지 그의 글도 정말 감성이 폴폴 풍겨져나온다. [금방이라도 눈앞에 그릴 수 있도록 시야에 가득 찬 형상][편안하게 말을 건네듯 평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어투][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은 새처럼 문득 다른 세계를 눈앞에 가져오는 결말][아무 떨림 없이 상대를 반갑게 맞이들이는 정겨운 눈빛][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거리에 도배한 전단지를 볼 때의 마음속 움직임][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려는 순간 뛰어오는 사람을 보고 열림 버튼을 누르는 배려][주방 싱크대에서 커피를 쏟으며 얼버무리는 사랑의 맹세 '나도 사랑해'] 등등 평범한 나 같은 이로서는 절대 쓸 수 없는 말이 제목으로 떡 하니 올라가 있다. 각각의 제목 만큼이나 예로 든 시도 예사롭지가 않다.

 

‘죽음’을 생경한 ‘가을철 굶주린 곰’에다 비유한 메리 올리버의 「죽음이 다가오면」의 이야기로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하더라도, ‘감미롭고 풍요로운 가을’을 ‘여인의 모습’으로 의인한 존 키츠의 「가을에 부쳐」을 읊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책이 나랑은 맞지 않다는 생각만 가득했었다. 뜬금없이 ‘죽음’과 ‘굶주린 곰’이 연결되는 것도 ‘가을’을 찬양해대는 것에도 그다지 감흥이 일지 않았기 때문인데, 철저하고 이성적인 내 성향 탓에 난 시랑은 뭔가 안 맞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였다. 뒤로 갈수록 내 가슴을 울리는 시가 한 가득 등장해주었다. ‘인류애’를 노래한 나오미 시하브 나이의 「정」과 ‘자신의 치유의 힘을 믿는’ 골웨이 키널의  「성 프란체스코와 암퇘지」, ‘우리의 인생 곳곳에 숨어있는 놀라운 개연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첫눈에 반한 사랑」, ‘소외된 자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소소한 배려’에 대해 전달하는 도리언 로의  「모르는 사랑」이 그것이었다. 이런 시들을 음미하고 있으면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감사가 절로 흘러나온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한 게 없다고 하는 것이나 천대 받는 동물에게조차 꽃봉오리가 있는 것, 우리의 만남은 무수한 인연 중의 한 자락일 뿐이라는 운명의 이야기, 자살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름 모를 배려들이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기 마련이다. 이름 없는 우리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이런 수많은 이름없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확고하게 서있다면 어느 누가 비관하거나 우울증에 빠져 자살할 수가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있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야 할 것이다. 정말 몇 글자 되지 않는 시가 이렇게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면 시는 정말 위대하지 않은가 한다. 모처럼 시와 푹 빠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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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민속기행 2 - 사라져가는 옛 삶의 기록, 최상일 PD의 신간민속 답사기
최상일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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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에게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 버린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이다. 개그 코너에서도 패러디를 할 정도로 이제는 국민프로그램이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그것을 기획하고 제작한 최상일 프로듀서가 또하나의 역작을 냈다.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20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내용을 조금씩 다듬어서 나온 책이다. 우여곡절 끝에 1999년에 시작해서 겨우 2005년에야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방송이었는데, 너무나 진귀한 자료이기에 이렇게 책으로 엮어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순전히 대한민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이야기이기에 그 가치가 새롭지 않을까 한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서 '보릿고개'라느니 '무밥'이니 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보릿고개'와 '무밥'은 우리의 문화요, 삶이요, 현실이다. 있었던 것을 박박 문질러 지워버릴 수 없는 일. 그렇다면 우리의 것을 지키고 살려 쓰는 것이 도리이다. 그래서 일일히 고개를 넘어 마을의 집집마다 발품을 팔아가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녹취해서 기록으로 남겨놨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볼지도 모르겠으나 앞으로 100년만 더 지나가도 기록으로 남겨놓은 지금의 이 책이 더없이 소중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우리 문화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단순히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하면, 당연히 평야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중에 백두대간의 마을처럼 산골마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족한 경험 탓인 것도 있겠으나, 벼농사가 되지 않아 겨우 감자나 옥수수로 연명해가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워낙에 오고가기가 힘든 곳이었으니 과거에는 산골마을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전해줄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의 고향도 다들 농촌일 뿐 산골이 아니니 내가 알 수 있는 경로가 모두 막힌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정보도 빠르고 교통도 그 때보다는 편리하게 되어 있고 또한 강원도가 살기가 좋다는 소문을 간간히 듣기까지 하니까. 얼마 전에는 전국 각지에 있는 시골마을을 취재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에서 강원도 홍천의 옥수수엿 이야기를 보여주었는데 그 비슷한 이야기가 이 책에도 나올 정도로 많이 알려졌다. 옛날 강원도에서는 저녁을 지어먹이기 위해서 옥수수로 엿을 만들어 팔아야 겨우 그냘 저녁 먹을 보리쌀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를 옆에 끼고 꾸벅꾸벅 졸아가며 옥수수를 갈고 난 후 아궁이에 불을 때며 눌러붙지 않게 저어야 했다고. 그러면서 졸다가 풍덩하기도 부지기수여서 화상 사고도 많이 당했단다. 그 이야기는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옥수수엿을 만들고 남은 물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키면 달달하게 맛나는 술이 나오는데 그 술은 강원도 양양에서도 많이 먹었단다.

 

예로부터 평야가 적은 강원도는 정말 기구한 삶이 많았다. 그런 이야기를 읽고보니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안쓰러운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농촌을 생각하면 양계도 하고 농사도 지어서 먹을 것은 풍족했던 외가이야기보다 내겐 친가가 더 짠하게 느껴진다. 특히 많이 먹어야 할 때에 많이 먹지 못해 배고픔을 절절하게 겪어야 했던 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밥만 많이 주면 아무 걱정이 없었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어쩌다 듣게 되면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든다. 그런 아버지의 고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성장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배 곯지 않고 사나운 추위를 피할 집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 어려운 삶을 웃음과 희망으로 살아오신 많은 어르신들에게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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