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같이 좋은 선물 -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이야기
박 불케리아 지음, 윤진호 정리 / 예담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의 엄마 수녀로 39년째 살아가고 계신 박 불케리아 수녀님이 구술한 것을 토대로 영화 「말아톤」, 「마이 파더」 등의 시나리오를 쓴 윤진호 씨가 정리한 책이다. 고아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단코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일 것으로 여겨진다. 내가 힘들게 도와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런데 그런 고아들이 뭉쳐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바로 1979년에 만들어진 부산 소년의 집 합주부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얼마나 대단하고 화려한 모습이 담겨져 있을까 상상했다. 그들이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했다는 소리를 듣고부터는 내가 모르는 음악가들의 아름다운 삶이나 영혼, 예술을 위해 꿈틀거리는 어린 청소년들의 고뇌들이 담겨있을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는 누가 썼는지, 어떤 관점에서 썼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탓이었다. 내가 음악인들을 대단하게 여기기 때문에 벌어진 헤프닝인데, 실제 책은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일단 화자가 합주부의 소년들이 아니라 박 불케리아 수녀님이라는 것부터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만약에 합주부에 있다가 음악가가 된 소년이 화자였다면 내가 읽고 싶은 그 내용이었을 수도. 하지만 실제는 아니었고, 그나마 합주부를 하다가 음대에 진학한 아이들의 현실도 비참했다. 대학 진학의 길은 고아에게 그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수녀님들이 상당히 많이 반대하고 많은 조건을 달고서 보내준다고 하셨다. 제 생활비를 제가 벌어야 하는 처지여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해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다른 음대생과 많이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 태어나서 음대에 진학하고서도 유학이나 다른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는 출발선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음대에 합격하고도 휴학을 하거나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나는 이런 실상을 보고 고아들의 장밋빛 미래를 그렸던 것을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 아이들은 하루를 살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심지어 평생 두려움에 떨며 하루를 살아가기도 하는데 나는 그들에 대한 처지를 공감은커녕 상상 비슷하게나마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합주부 아이들 중에는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깨달아 눈부시게 꽃피운 아이도 있었다. 그래서 시향에 들어가거나 외국으로 유학도 많이 다녀온 친구도 한,두 명 정도는 있었지만 실상은 여가 시간에는 음악이 좋아 클래식 악기를 손에서 떼지는 못하지만 일하는 곳은 공장인 친구들이 훨씬 많다. 부산 소년의 집 아이들은 바로 취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기술고등학교로 가는데 개개인의 적성이나 취향을 고려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렇기에 주위에서는 공돌이들이 여가 때 바이올린이나 플롯을 부는 것을 희한하게 보는 사람들도 많다. 돈도 비싼데 제일 먼저 월급을 받으면 악기부터 사는 그들이 아마도 희한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인생에 가장 우울한 처지에서 희망을 제시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히려 상황과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음악이, 합주부가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이 카네기홀에서 연주하게 된 것도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제껏 연주했던 아이들보다 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미 졸업한 학생들을 세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미국에 가서 연주를 한다고 일주일 이상 되는 시간을 그냥 쉬게 해줄 직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직장을 그만 두고 연주회를 하러 갔다 온 것을 보면 그 열정과 헌신이 쉽사리 이해되지도 않고, 뭔가 독특하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정말 독특하지 않은가. 제 생활비를 대신 내주는 것도 아닌데 취업 준비라는 중요한 상황에 있거나 중요한 시향 오디션이 있었던 시기에도 연주회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다니~ 솔직히 감정이 메말랐던 것인지,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희생을 했으나 얻은 것은 없었다고밖에 나는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그것은 뭔가를 희생했으면 나중에는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여겨왔던 내 가치관을 뒤흔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오신 수녀님을 보고 자라 와서 그런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고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행동은 아무나 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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