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의 난초화
글/홍민정
그림/이지후
밝은미래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한 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일본에 의해 대한 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형제들과 전 재산을 팔아,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여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목 차
등장 인물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냈습니다.
대한 제국의 가장 부유한 집안이었지요~~
현재 명동 일대가 모두 이회영 일가의 땅이었으니까요.
부유하게 태어났지만 이회영은 집안의 노비들에게까지 높임말을 쓰는
예의 바른 아이였다고 합니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재벌 3세들과는 다른 모습이죠...
그 시대는 노비제는 폐지되었지만 신분에 따라 차별을 하던 사회라
노비들에게는 하대를했는데..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이시네요
을사늑약과 오적 암살단
1905년 을사년에 고종은 옥쇄를 찍지 않았지만 오적단이 나라를 팔아
일본에게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당했습니다.
을사늑약으로 대한 제국이 외교권을 빼앗기자
이에 맞서기위해 이회영은 만국평화회의에 보낼
헤이그 특사계획을 주도하고
일본이 부당하게 우리 외교권을 빼앗은 사실을
널리 알리려고 했습니다.
“외교권이 없는 나라는 국제회의에 참가할 수 없다”며
미리 손을 써놓은 일본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오히려 이를 빌미로 고종은 황제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순종에게 한일 병합 조약을 강제로 맺게 하면서
군대마저 해산시켰습니다
일본은 운요호를 강화도에 무단으로 접근 시켜
우리의 공격을 유발하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강화도 조약을 맺었는데...
조선이 다른 나라와 맺은 최초의 근대적인 조약이었지만
일본이 제시한 대로 맺은 불평등 조약으로
조선을 침략하려는 일본의 못된 속셈이 담긴 조약이었습니다
고종의 왕비인 명성 황후는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몰아내려고 했고
이에 일본은 왕비를 죽일 작전을 세우고
1895년 을미년에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사건으로
을미사변이라고 불리운다..
그리고...1년 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
이를 아관파천이라고 합니다
묵란도란 먹으로 그린 난초 그림으로
난초는 선비의 충성심과 곧은 절개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어려서 부터 유학을 배우던 이회영은 과거는 포기했지만
묵란도는 이회영의 취미이자 특가가 되었어요~~
이회영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돈이 떨어지자
직접 그린 묵란도를 팔아서 독립운동 자금에 보탰다고 합니다.
▶1920년 봉오동 전투
▶청산리대첩
이회영선생님의 집안은 조선의 10대 부자라고 불릴만큼
명문 부잣집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치하의 주권없는 나라를 되칮겠다는 일념으로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한 평생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그의 6형제들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적으로 뛰어들어
엄청난 생활고를 겪으며 돌아가셨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며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보여 주었고
이 분들의 희생과 값진 정신으로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기억하고 높은 정신을 이어받아
다시는 주권을 잃는 굴욕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세상을 꿰뚫어보는 긴 안목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며
과거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