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대중교양서는 언제나 읽을 때 신이 난다🙂 이 책을 읽을 때도 역시나 그러했다.새롭게 알게 되는 약의 역사를 마치 서프라이즈처럼 맛깔나게 소개하는 저자의 입담이 웃겼고 그러한 와중에도 약의 과용•남용을 유도하는 제약 회사들을 비꼬는 노련함이 감탄스러웠다.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이 책의 집필의도는 과학을 경탄하며 제약업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약의 병폐를 고발해 제약업계를 비판하는 행동가들을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새로운 세계-신약개발의 세계-로 안내하며 이 세상에는 좋은 약도 나쁜 약도 없다는 약의 양면성에 대한 교훈을 독자에게 주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은 충분히 성공한듯하다. 이 책을 손에 들고 펼친 독자라면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을테고 그렇다면 우리에게 친숙한 약의 탄생과 변천을 지켜보며 약을 이해하게 될테니까.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 이해 후엔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테니까.
<장애의 역사>라는 책 제목을 서점에서 처음 봤을 때,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나는 이 책이 ‘장애인’에 관한 역사서일거라고 믿었다. 우리 사회의 이야기지만 비장애인인 나는 배워볼 일 없었을 그들만의 이야기가 존재하고 저자는 그러한 이야기를 역사로 정의하고 더 많이 말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을 설명하는 크게 틀린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반만 맞는 설명이기도 한데, 이 책은 장애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역사서이기도 하며 동시에 시대, 계급,인종,성별에 따라 달라진 장애 개념에 대한 역사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에도 북아메리카 토착민들도 장애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북아메리카 토착민 사회에서 장애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토착민 공동체는 오늘날 ‘장애’애 해당하는 단어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지적 결함을 가진 젊은 남성이 물을 운반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는 뛰어난 인재일 수 있었다. 그의 결함은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지만,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공동체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는 현재의 ‘장애’(신체능력주의)개념과는 달랐다. 첫 장의 토착민의 이야기에서 장애를 가진 몸이 선득적이고 영원불변하게 고정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깨닫고 그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하며 끝난다. 결국 미대륙에서 시대에 따라 장애를 가진 ‘몸’의 개념이 흑인, 여성, 노인 그리고 노동을 할 수 없는 비생산적인 몸을 모두 포함하며 매우 넓은 범위로 혹은 좁은 범위로 확장되고 축소되는 걸 따라가다보면 지금까지 믿고 있던 ‘다름’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번 꼭 읽어볼만한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