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키가이 - 벼랑 끝 삶에서 마침내 발견한 것 Meaning of Life 시리즈 3
가미야 미에코 지음, 홍성민 옮김 / 필로소픽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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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필로소픽 출판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존 케그의 <아픈 영혼을 위한 철학> 때문이었다. 윌리엄 제임스라는 철학자의 생애와 사상을 자신이 고민하는 삶의 허무와 일견 의미 없어 보이는 고통의 해석에 적용하는 사색의 과정을 담은 그 책을 읽으며 깊은 위로를 받았다. 이후 같은 저자가 썼던 <심연호텔의 철학자들2도 찾아 읽었고, 니체의 삶과 절학을 저자 자신의 삶에 겹쳐보며 부조리를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초인'의 자세를 숙고하는 여정을 그린 그 책을 읽으면서도 큰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처음 읽었던 두 책을 통해 필로소픽에서 펴내는 다른 책들도 자연히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게 됐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가미야 미에코가 지은 <이키가이>는 소셜 미디어 X의 전신인 트위터에 서 필로소픽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을 때 담당자가 곧 절판 예정인 훌륭한 책이 있다고 소개했던 삶의 보람에 대하여>라는 책을 새로운 표지와 제목으로 펴낸 것이다. '곧 절판이라고? 안 돼!' 하면서 서둘러 구매했고 첫 몇 장을 읽고는 덮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이키가이>를 펼쳐 처음 몇 창을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 읽어본 적이 있는 책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는 끝까지 읽어보리라 결심하고 수주에 걸쳐 찬찬히 읽어보았다.

'이키가이'는 살 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상태, 혹은 그러한 대상을 의미하는 일본어 고유의 표현이다. 일대일 대응이 되는 단어가 외국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표현한다. 일본인 특유의 관념이 이 단어에 배어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정서가 있다. 저자 가미야 미에코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다양한 철학자와 저술가의 글을 인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키가이', 한국어로는 '사는 보람'이라고 번역되는 이 정서는 어느 한 국가나 계급에 고유한 특성이 아닌 인간이라면 선천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이다.

저자는 이키가이-사는 보람감-를 느끼는 다양한 경로를 탐구한다. 사람은 실로 다양한 곳에 서 사는 보람을 느낀다. 일, 자연, 신앙, 예술, 다른 사람을 돌보는 행위 외에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지극히 사소해 보일지라도 한 사람의 마음에 충만한 기쁨과 만족과 의미를 준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이키가이-사는 보람-가 될 수 있다. 읽는 중에 와닿았던 몇몇 구절들을 소개 한다.

"이렇게 보면 사는 보람에 대한 욕구는 단순히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욕구가 아니라 개성적인 자아의 욕구일 것이다." (52쪽) 획일적 존재가 아닌 고유한 자아로서의 나, 타인의 필요와 목적에 의해 규정되거나 강제되지 않는 나로서 갖는 욕구와 목표야말로 사는 보람과 맞닿아 있는 것이고, 그런 점을 저자가 잘 포착해냈다고 느꼈다.

"새로운 사는 보람을 발견하고 싶다면 먼저 모든 것을 단념해버리고 싶은 마음, 조급한 마음 을 억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142쪽) "자신의 슬픔이나 슬퍼하는 자신에게 주의를 집중하는 동안에는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이다." (146쪽)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 태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행동은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자신이 느끼는 슬픔과 허무를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능동적인 관점에서 '수용하는' 것, 즉 삶에서 마주하는 사건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해 나에게 아무런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듯 수동자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느냐, 설사 내가 그것에 대해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능동자적인 관점에서 수용하는 보다 장기적이고 넓은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서 사는 보람을 느 낄 수 있는지 없는지가 갈린다는 의미로 느꼈다.

"육체로부터 오는 제약을 그대로 인정해 괴로울 때는 괴로워하고, 치료가 필요할 때는 치료를 하는 (...) 육체와는 별개로 자기 존재의 가치를 적절하게 의식하는 태도" (156쪽) "인간의 존재 의의는 이용 가치나 유용성에 달려 있지 않다. 들판에 피는 꽃처럼 그냥 존재하는 사람도 위대한 자의 입장에서 보면 존재 이유가 있다." (262쪽) 삶의 목적과 가치, 이유를 어떤 특정 조건에 두면 그 조건이 상실되었을 때는 사는 보람도 필연적으로 소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경로와 대상에서 사는 보람을 탐색하되 그것에 종속되는 것은 경계해야 함을 함의하는 문장으로 이해했다.

많지 않은 독서경험에 비추어보면 일본 저술의 특징은 비교적 '둘러가는 듯한' 문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키가이> 역시 그러한 특성 탓에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지루함을 참고 찬찬히 읽어가다보면 저자의 오랜 기간에 걸친 삶의 정수를 연구하는 태도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도 필로소픽에서 출간되는 책들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길어올려지는 지혜를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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