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설레고 아름답다가 끝내 먹먹해진다.

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솔직히 표지가 예뻐서 샀다.

<위저드 베이커리> 이후 구병모 소설가에게 관심은 있었지만, 나오는 족족 사서 읽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동화 같으면서도 그 이면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은 순백의 표지.

그리고 다행히도, 이야기는 디자인을 배신하지 않았다.

아들의 사고 소식을 뉴스로만 듣고, 시신도 확인하지 못한 채 홀로 살아가는 세탁소 주인 명정.

그에게 어느 날 배달되어온 말 그대로 로봇 소년.

작년 알파고 이후로 로봇이든 컴퓨터든에 괜한 기시감을 갖고 있던 터라, 웬 로봇?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사뭇 다르게 흘러간다.

명정은 로봇 소년에게 '은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은결은 한때 세간의 화제와 뉴스의 중심이 되었으나 그도 잠시, 곧 세탁소 골목길의 아이로 자라난다.

그렇다. 은결은 자라난다.

성장하지도 늙지도 죽지도 않아야 할 로봇이지만,

유사 아버지 명정과 세탁소 동네의 아이들과 시간을 공유하며, 점점 자라난다.

결코  인간은 될 수 없지만,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픈 욕망이 들 무렵,

그렇다. 로봇에게 욕망이 생길 무렵.

은결을 둘러싼 사랑스러운 존재들. 명정, 시호, 준교, 세주...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노화와 균열이 생겨온다.

참 따뜻하고, 아련하고, 저릿하고, 맑은 소설이다.

그렇다고 쉽거나 유치한 건 절대 아닌,

그냥 맑음. 맑은 소설.

마지막쯤 떨어지는 눈물은 굉장히 순정한 눈물인, 그런 소설.

정말 오랜만이다.

은결과 <한 스푼의 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