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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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매년 미국에서만 150명중 한명이 자폐증 진단을 받는다. 1980년대 1만명당 한명 꼴이었던 숫자는 불과 20년 사이에 당혹스러울 정도로 증가했다. 미국 사회 내에서는 자폐증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해 신음하는 가정과 부모들이 늘어나자 그들에 대한 지원과 봉사를 위한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자폐아에 대한 교육과 치료의 문제도 사회적 논의의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대중매체는 자폐증과 자폐아에 대한 뒤늦은 관심으로 소란스럽다. 왜 세계와 소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그 아이들이 침잠해있는 내면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자폐증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는 아직도 먼 여정이 남은 것만 같은 오늘날의 현실에 어둠의 속도는 마치 '빛'처럼 등장한다.

그 자신이 자폐아의 어머니인 저자 엘리자베스 문은 아들이 자신에게 던졌던 잊을 수 없는 질문을 회상한다. "빛의 속도가 일 초에 삼십만 킬로미터라면, 어둠의 속도는 얼마에요?" 문은 대답한다. "어둠에는 속도가 없단다." 우리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더 빠를 수도 있잖아요. 먼저 존재했으니까요." 빛이, 어둠을 밝힘으로써 빛이라면 항상 그보다 앞서 존재하는 어둠은 정말로 빛보다 빠를지 모른다. 문이 아들의 물음에서 받았던 충격은 그대로 독자에게도 전해진다. 이 무슨 놀라운 상상이란 말인가! 자폐아들이 가진 내면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담한 발상과 반짝이는 생각들로 가득할지 모른다. 문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그 아이들의 세계를 엿볼 다시없을 기회를 마련해준다.

어둠의 속도는 루 애런데일이라는 자폐증을 가진 청년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문장부터 루가 루 애런데일로 존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선이며 그의 눈은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시각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가 묘사하는 자극은 전혀 미지의 것처럼 낯선 모습과 색깔을 띄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자극의 수용은 감각기관과 뇌 사이에 직통로가 놓여있는 것 마냥 직접적이다. 그의 뇌와 의식은 많은 자폐인들이 그렇듯 평균이상으로 열려있어서 자연이 보여주는 패턴을 거의 아무런 어려움 없이 즉각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다. 바람에 돌아가는 바람개비가 반사하는 빛은 균형을 내포한 구조이고 광자로 이루어진 질서여서 그것을 포착하는 일은 루에게는 유희이자 환희가 된다. 자연이 비밀스럽게 숨긴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데 있어서 그보다 능숙한 사람은 없는 것만 같다. 거리를 걷는 그가 인지하는 것은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표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빛의 파장과 온도, 공기의 포근함,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교향곡에 맞춘 발걸음의 템포다. 완벽한 음악이 주는 완전한 대칭 속에서 루는 봄날의 햇빛 속을 걷는다. 우리는 그 등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읽는 이를 매료시키는 것은 루의 뛰어난 지적 능력과 감성이 포착하는 세계의 질서와, 마치 보석처럼 매끄럽고 흠없는 그의 다정하고 선한 본성이다. 읽을 줄 아는 이에게만 보이는 아름다움과 진실을 늘 감각하는 그의 내면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유하고 그로 인해 정신을 소모하는 시기, 질투, 중상, 모략과 의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있는 것은 균형에 대한 감각, 온화한 삶에 대한 소망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사람들과의 소통을 도모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으로 타인을 배려한다. 그가 '자폐아'이기에 습득할 수 밖에 없었던 공존을 위한 방법론들은 실상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발견이 쉽지 않은 선량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루가 인식하는 세계의 경이로운 모습에 취해 있던 사람들에게, 루의 '현실'이 그의 시각으로 비추어져 제시되는 순간, 독자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한순간에 각성에 이른다. 꿈은 깨어지고 '우리'가 속한 현실의 모습이 되살아난다.

아주 평범한 인삿말을 나누기 위해 사전에 타이밍을 계산하고 표정을 연습하며 진땀을 흘려야 하는 루의 서투름은 처음에는 어색함으로, 그러나 점차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친절이 이해받지 못하고 거절되는 이유를 알지 못해 벽역해하는 루에 대한 안쓰러움은 금새 그의 어쩔 수 없는 미숙함을 알고자 하지 않는 '보통'사람들의 무신경함에 대한 분노로 변한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자폐증'에 대한 무지는 공기처럼 넓게, 편견 특유의 강경함을 가지고 산재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폐인을 이해한다고, 하다못해 그들을 '다루는 법'을 안다고 착각한다. 거기에 몰이해와 오해가, 편견이 부르는 폭력이 더해져 루와 그의 자폐인 친구들을 향해 쏟아져내린다. 읽는 이도 함께 휩쓸릴 만큼 강력한 변화의 파도가 루를 삼킬듯이 덥쳐든다. 가녀리고 섬세한 그의 정신은 세상이 강요한 폭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독자들은 바깥 세계, 보통 사람들의 세계에 소용돌이치는 악의와 불신이 루의 정신을 뒤흔들고 그의 삶을 공격하는 광경을 비명을 삼키는 심정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우리는 깨닫는다. 이와 같은 폭력이 사실은 너무도 만연해 있음을. 그것은 언제고 무지의 이면에서 일어나는 '다름'과 '순수'의 질식사 장면이다. 타인의 다름에 대한 배척과 배제 속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타인살해'의 광경이다. 우리는 그 순간들을 알고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삶과 역사를 통해서.

지금 이 순간 자폐증과 자폐인들의 삶에 관해 암흑 속에 있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다. 빛과 음악과 패턴을 감각하는 아름다운 정신들에 대한 무지의 암흑 속에 우리는 침묵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루 애런데일, 시인의 언어로 말하는 천진한 영혼이 나타남으로써 우리의 어둠은 빛과 닿았다. 처연하리만치 선한 밝은 노랑의 따뜻한 빛 속에서 우리를 둘러싼 어둠은 소멸한다. 혹은 안식을 찾는다. 적어도 우리는 루라는 가장 밝은 빛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자폐인에 대한 전례없는 통찰과 깊고 따스한 애정이 담긴 소설 [어둠의 속도]는 자폐증에 대한 이해의 등불을 밝혀주는 빛이다. 시선과 사념 위에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사라진 우리의 눈은 이윽고 자폐인들을 곧게 바라볼 것이다. 이제는 좀처럼 눈을 마주쳐주지 않는 그들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반짝이는 그들의 내면에 흐르는 시간의 변화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루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윽한 슬픔과 눈부신 환희 속에 펼쳐지는 루의 삶에 동참하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우리의 삶에 커다란 행운으로 새겨진다. 언제나 좋은 책과의 만남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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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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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나름의 호흡을 가진다. 작가에 따라, 문체와 주제에 따라 책은 각기 다른 리듬을 가지고 숨을 쉰다. 이탈리아 문학의 경우 그 호흡이 영미권에 비해 조금 더 늦은 템포로 이어지는데,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느릿한 속도감과 함께 원어가 가지고 있었을 차분함, 정적, 차갑고 습기찬 호흡, 긴장과 고통으로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순간들을 빠트림 없이 전해온 것이 주기율표라는 책이다. 

슬픔을 경험한 사람들은 어딘가 남다르다. 그들은 눈빛으로 말하는 법을 알고 침묵으로 대화하는 법을 안다. 그들의 한숨은 단순한 실망이나 체념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비극을 경험한 사람들의 체험담은 그 발화가 정신과 육체에 끼치는 강렬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이야기되기가 쉽지 않다. 그 사람들이 경험했던 비극에 세상을 향한 외침이 되게끔 힘있는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며 글을 쓰고 발표해온 사람이 바로 프리모 레비다. 그 자신이 나치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이며 아우슈비츠의 증언자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 주기율표는 그러한 삶을 살아온 레비의 유년기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전작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다루었던 전쟁과 수용소의 시간들을 의도적으로 제외시킨 시간축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순결함으로 가득했던 지나간 날들 속에는 미래를 꿈꾸고 막연한 희망과 기대를 향수하던 어린 시절의 그가 있었다. 소년 시절에 누렸던 자유와 우정, 눈부시게 푸르렀던 들판과 추위와 싸워가며 등반했던 높은 산들의 기억, 자연의 풍광과 아름다움에 대한 도취, 지적 성취와 자극들. 누구나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가지고 있지만 그가 그이기에 남다르게 예민하고 깊은 감수성으로 감각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의 기억 속의 실타래에서 풀려나오는 이야기들은 실망조차도 매끄러운 표면으로 미끄러지는 돌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결코 지워버릴 수 없는 어떤 것을 경험한 뒤에 상처입은 채 살아남은 인간, 레비가 말하는 기억 위에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엷은 그리움과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 안개처럼 드리워져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눈물만이 누락된 한결같은 애도 속에서 기억과 추억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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