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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호프
그레첸 올슨 지음, 이순영 옮김 / 꽃삽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해수욕장에서 어린 아들과 튜브를 마주잡고 물놀이를 하다 잠깐 동안 물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두려움과 함께 아주 긴 시간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내가 튜브를 붙들고 있으면 내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내가 죽을까봐 튜브를 놓지 못했다. 아들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일 이후로 내 목숨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자식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내용의 책이나 영화를 볼 때마다 그 때가 생각난다.
수업시간에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한 단어로 표현해 보라고 하자, 아이들은 인종차별, 용기, 대량학살 등이라고 했으나 호프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아내와 아들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랑에 감동했었다.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수용소로 끌려가면서도 아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1000점을 얻어 일등을 하면 상으로 탱크를 받게 되는 게임을 하러 여행을 떠난다고 말하는 아빠, 아내에게 트럭에 타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여장을 하고 가다가 발각되어 총살당하러 끌려가는 순간에도 아들이 그 상황을 게임으로 알도록 하려고 웃긴 표정과 행동을 해서 아들을 안심시키고는 끌려가서 총살을 당한 아빠.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었던 소설<가시고기>의 아빠가 생각났다. 자신의 죽음과 고통은 뒷전이고, 아들의 행복과 미래를 생각하며 기뻐하던 아빠, 마지막 떠나는 길에 정을 떼기 위해 슬픈 이별의 고통을 숨기고 냉정함을 잃지 않던 아빠가 떠올라 가슴이 멍했다.
“우리가 이겼어요. 우리가 일등이예요. ”
이것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희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희생은 아버지가 내게 준 선물입니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눈물이 나왔다. 영화로 봤을 때와는 다른 감동이 느껴졌다. 호프는 ‘영화를 다시 돌려보다가 모든 상처와 아픔이 시작되기 전인 행복한 순간에서 멈추고 싶었다.’고 했다. 아마도 유머러스한 아빠,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가정이 너무나 부러웠나보다. 막내가 도서실에서 빌려와서 읽은 책 <깨어서 꾸는 꿈>에 나오는 주인공이 생각났다. 행복한 가정이 너무나 부러워서 그런 내용이 나오는 책에 빠져 현실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멍하니 몽상에 빠져 사는 아이, 유령으로 떠돌던 작가와의 만남으로, 미혼모이며 엄마로서의 책임감이 전혀 없던 엄마에게, 용기를 내어 마음속의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고통스런 현실을 당당하게 마주 대하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우는 아이로 자란다는 내용이 이 책과 비슷한 성장소설이다.
엄마도 처음 호프를 낳아 병원에서 데려와서 안고 사진을 찍었을 때는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호프의 엄마는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이지만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많다고 했다. 오빠와 호프를 낳은 것이 배우가 되는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한 ‘사고’였다고 말해서 상처를 준다. <깨어서 꾸는 꿈>에 나오는 주인공의 엄마도 처음에는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것 같았고 사랑스러웠지만, 곧 아이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살아가는데 걸림돌로 느껴져서, 동생에게 떠맡기다시피 하고 도망치려고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엄마의 눈을 보며 말한다. 엄마도 힘들겠지만 내가 혼자서도 살아 갈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내 옆에서 나를 지켜줘야 한다고. 물론 현실에서는 그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엄마들이 더 많겠지만, ‘자기의 생각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빈정거리고 노려보고 바보 멍청이 머저리라는 말을 하고 물건을 가로채기도 했다. 호프는 학교에서 ‘머저리‘라는 말 한마디 한 것 때문에 엄마를 학교에 오게 하고 통학버스를 일주일동안 못타고 걸어서 다니는 벌을 받았는데 말이다. 호프는 말한다 ’이렇게 해야 해‘ 나는 그 말이 싫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바보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은 심장에 자국을 남기고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언어폭력이다. 한마디의 언어학대를 극복하려면 서른 마디의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고 하시며, 언어폭력을 당할 때, ‘나는 마음이 아파요.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라고 말하라고 가르쳐 주신 선생님께 왜 진즉에 알려주시지 않았느냐고 마음속으로 소리친다. 그렇지만 안다고 해서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눈을 보며 직접 말할 용기가 없어, 메모지에 ‘엄마가 나를 비웃을 때면 마음이 아파요. 나를 사랑해 주세요.’ 라고 써서 식탁에 두었을 때 엄마는 지나치게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오히려 나무란다.
호프의 엄마는 그 나이에 머리아플 일은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도 그 나름대로 얼마든지 머리가 아플 일이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잊어버릴 때가 많다.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의 아이가 돌봄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호프는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이 될 야영캠프 신청서를 써주지 않아 못 가게 될까봐 두통에 시달리고 두려움에 떨었다. 엄마는 드레스를 훔쳐간 벌로 야영캠프에 못 가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그 드레스를 보면 아기 때 울어서 힘들게 한 것과 집을 나가버린 아빠가 생각나서 자기를 싫어하는 줄 알고 없애버리려 했다고 호프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엄마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상담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신 것을 계기로 호프의 인생 문제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가 옷을 훔쳐간 것을 비난할 때, 옷을 가져간 이유를 말하고 엄마의 눈을 똑바로 보며,
“엄마가 나를 멍청이라고 부를 때마다 뱃속이 뒤틀리는 것처럼 아팠어요. ‘생각 좀 해봐’ ‘네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할 때 마다 내가 정말로 바보가 된 것 같았어요.”
엄마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어쩐지 슬퍼보였다. 아무런 대항을 하지 않던 아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에 놀랐을까? 자신도 호프에게 화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겠지만, 호프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상처받았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던 걸까?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고, 나도 분명 엄마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요, 나는 착해지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나는 없어져 버려야 해요”
호프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하자 넬슨선생님의 딸인 매디가 말한다.
“나하고 있으면 돼.”
“호프는 여기서 나와 함께 있어야 해”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야영캠프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호프는 다시 두통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엄마는 사진 속에서 입고 있던 옷을 입고 마중을 나왔다. 호프를 사랑했던 때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재잘대며 이야기도 하고 같이 웃기도 했지만 엄마는 다시 부정적인 말들, 상처 주는 말들을 해서 (호프가 커서 상담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하자, 너는 아이들을 돌보아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해주는 뜻에서 한 말이겠지만) 울고 있는 호프를 보고 말한다.
“미안하다. 부모가 되는 것은 자전거를 타면서 넘어지는 것처럼 힘들다는 것을 알았어. 엄마는 ‘좋은 부모 되는 법’ 수업을 듣고 있단다. 내가 너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많이 했다는 걸 알아. 하지만 어떻게 그만두는지를 잘 몰랐어. 술이나 담배를 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처럼 말이지. 넬슨선생님이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 주셨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거야. 네 도움이 필요해”.
호프는 엄마가 상처 주는 말을 할 때마다 참아낼 수 있었던 방법인 희망노트를 주며 상처를 주는 말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참았을 때 점수를 주는 방법을 알려준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듯이 호프의 앞날에 내리막길도 있겠지만 호프리스를 극복한 호프이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잘 이겨 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호프가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과 엄마의 생각이 바뀌어가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짜임새 있게 잘 씌어있고, 쉬운 문장으로 술술 읽히면서도, 학교 교육이나 가정교육, 부모교육, 상담제도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