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말하고 있었어 문학의 즐거움 60
문경민 지음, 레지나 그림 / 개암나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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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표지부터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으시나요? 맑은 표정의 아이가 동물들과 함께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소녀가 바로 혜나인데요.



혜나는 7살 때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트라우마로 7살 이전의 기억도 없고 말도 하지 못하는 5학년 소녀입니다. 혜나를 사랑하며 보살펴주시는 할아버지와 함께 조그만 시골마을에 살고 있죠.



이야기의 시작은 혜나 할아버지와 혜나가 새로 오신 정도현 선생님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할아버지는 정도현 선생님께 혜나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하러 온 모양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렵게 말을 꺼내고, 새로 온 정도현 선생은 이해한 듯 아닌 듯 애매한 표정만 짓습니다. 



할아버지와 선생님이 얘기하는 동안 혜나는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이야기, 할아버지 이야기, 학교생활, 친구인 건우 이야기까지 책을 읽는 독자에게 5학년 아이답게 재잘재잘  말이 끝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밖으로 꺼내는 건 혜나조차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놀라운 건 혜나는 동물들과 이야기가 통한다는 겁니다. 모든 동물은 아니지만, 간혹 몇몇 동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혜나는 말을 못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6학년 오빠들보다도 똑똑하고, 자신의 표정만 봐도 마음을 읽어주시는 할아버지가 계시고, 심심할 땐 동물들과 이야기하면 되니까요. 혜나는 행복합니다.



하지만 이 행복이 정도현 선생님이 할아버지와 왕창 술을 먹고 간 뒤, 그리고 아빠 친구가 키우던 새 '와루'가 집으로 온 이후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책의 앞부분은 혜나의 재미난 일상이 그려집니다. 할아버지 건강이나 단짝 친구인 건우와 6학년 오빠들과의 관계 등에 조금씩 문제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혜나(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입담으로 미소를 지으며 책을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딱 5학년 여자아이가 말하는 것 같은 대사들이 소설에 흡입력을 더해 줍니다.



그리고 혜나의 따뜻한 심성에 빠지게 됩니다.





말 한마디를 할 때도 깊게 생각하는 혜나는 대화가 통하는 개 '웅우르'에게 '새 주제에'란 말을 하려다가 얼른 삼킵니다. 웅우르에게는 '개 주제에'라는 말로 바뀌어 붙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얼른 해낸 것이죠. 와루에게 화가 나서 웅우르에게 한탄을 하는 와중에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혜나의 모습은 혜나의 성장을 더욱 응원하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책의 뒤표지에는 '용기 내 트라우마와 맞선 소녀의 회복과 성장을 그린 주니어 소설'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커다란 시련이 있어야겠죠. 그 시련은 '와루'의 등장과 할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시작됩니다. 



'와루'는 혜나가 트라우마와 맞서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로 인해 할아버지와의 사이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회복'과 '성장'의 주니어 소설답게 혜나는 시련을 이겨내고 한 뼘, 아니 세 뼘 정도 더 성장하며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5학년 소녀가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글의 수준은 절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5-6학년부터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혜나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자 할아버지는 '사춘기냐?'라고 묻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혜나의 말은 여러 부모님, 교사들이 꼭 기억해야할 것 같아 남깁니다.



사춘기라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비겁한 느낌이에요. 


우리가 어른들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게 어른들 탓이 아니라 우리가 덜 자라서 그렇다는 거잖아요. 


그런 생각을 사춘기라는 말로 포장해 놓은 거 아닌가요? 우리들도 깜빡 속아 넘어갈 만큼 그럴싸하게 말이죠.


7-8년 전 담임을 맡았던 아이 중에 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대화를 하려면 단짝 친구 한 명을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일상적인 대화도, 수업 중 발표도 한 아이와 귓속말을 통해서만 하던 아이였습니다. 



노력한답시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긴 했었지만, 과연 온 마음을 다해서였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정도현 선생님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전하려고 노력은 했었는지, 아이의 가정에 대한 관심을 쏟기는 했었는지...



어쩌면 그 아이도 혜나처럼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을지도, 속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졸업 즈음에 집에서 가져온 책 한 권을 선물하고 수줍게 도망치던 아이의 모습에서, 빵점짜리 교사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 아이는 그 이후로 와루나 정도현 선생님을 만나 더 성장했는지, <나는 언제나 말하고 있었어>를 보니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입니다.


https://blog.naver.com/chungmyong2/22224203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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