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굿바이
이다림 지음 / 다향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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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하려는 거면 상대를 잘못 골랐는데.
나 아직 햇병아리 작가라고요.”
스물아홉. 첫사랑을 잃은 여자, 서인희.


“배우로서 잘 보이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어요.”
스물셋. 첫사랑을 앓는 남자, 박정호.


“좋아해요.”
때로는 소년 같고,
“나, 작가님 집에 들어가면 나쁜 짓 할 거예요.”
때로는 남자 같은.


“할래. 나쁜 짓. 하고 싶어, 너랑. 그게 뭐든지.”
그에게 흔들리다.


찬란한 연애의 끝. 그리고 재회.
정호의 시간은 여전히 4년 전에 머물러 있다.


“나를 사랑하면 돼요. 그때가 되면 버려 줄게요.
……그러면 당신도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는 게 뭔지 알 거야.”


우리는 이별하는 중일까,
사랑하는 중일까.



남편의 죽음에 얽힌, 밝힐 수 없는 사인을 꽁꽁 싸매고 고립된 그녀, 서인희.


시궁창 같은 삶에서 손을 내밀어 건져준 그, 태언을 사랑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며 서로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자 했지만
그럼에도 그를 사랑했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그를 사랑했다.
결국 그 여자로 인해 자살로 삶을 끝낸 태언의 마지막을 지켜주고자
온갖 무성한 추문에도 입을 닫았다.
찬란하게 빛날 나이의 여자는 막대한 유산을 가졌지만 세상을 등진 채 스스로 혼자가 되었다.
팬이라고, 좋아한다고 부끄러움 가득한 채 다가오는 소년 같은 그의 미소에 결국
나도, 라는 꿈을 꾸지만 그건 아주 잠깐의 한여름 밤의 꿈이었을 뿐이었다.


아무도 없던 그에게 유일하게 단 하나였던 그녀를 잃게 된 그, 박정호.


다른 남자에게 건넬 핫초코를 주문하며 행복하게 웃던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
잊을 수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내 머릿속에 남겨진 그녀.
결국 그녀를 찾게 되고 그녀의 소식을 접하고 그녀에게 다가갈 준비를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조금 더 가까운 곁에서 보고 싶은 그런 순수함이었다.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점점 커지는 마음과 욕심에 매달리길 수차례.
결국 그녀는 제 연인이 됐고, 행복했지만 불안했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됐다.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그 찬란했던 미소는 사라졌고 세상이 무너졌다.



그저 그들에겐 단 둘뿐인 세상이었어요.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오직 서로뿐이었지만
온갖 소문이 무성한 작가와 이제 막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배우.
그런 그들의 사이가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고 끼어들기 시작하자
어딘가 위태롭던 그들의 믿음엔 금이 가고 결국 겁쟁이로 만들어 버렸죠.
모른 척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고 될 문제가 아님을,
특히나 이미 겪은 인희에겐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죠.


사랑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인희만 보고 있던 정호에게 이별은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이었겠지만,
이미 자신이 겪은 타인의 칼날 같은 말과 경멸의 시선을 정호에게까지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인희는 진실 같은 거짓말로 매정하게 정호를 내칠 수밖에 없었죠.
사랑만으로 모든 게 극복될 수는 없단 걸 알고 있으니까요.


소년처럼 해맑던 그 미소는 헤어지는 순간 사라지고 4년 후,
정호는 만약 재회한다면 봄일거라 막연히 상상했던 것관 다르게 한겨울에 재회를 하죠.
그것도 아주 느닷없이 우연히.
진심 같은 거짓말을 여전히 냉정하게 내뱉는 인희를 몰아붙이고 원망하지만
인희는 곁을 내주기 않아요.
다만 니가 이별할 기회를 주겠노라며 질릴 때까지 갖고 놀라는 식으로 되받아치죠.
아무리 인희가 매서운 말로 상처를 내도 정호는 인희를 놓지 못해요.
인희를 놓는 건 자신이 죽어서도 가능하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요.
혹시나 인희와의 이별을, 인희와의 추억을 잊을까 봐
잔인했던 이별의 순간조차 곱씹는 이 남자가 어떻게 인희를 버릴 수 있겠어요.
자신의 목숨보다, 종교보다 더한 마음을 뿌리 내린 연인인데요.


낯선 작가임에도 주문을 하게 만든 건 시놉에 있는 대사의 한 구절이었어요.


“나를 사랑하면 돼요. 그때가 되면 버려 줄게요.
……그러면 당신도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는 게 뭔지 알 거야.”


제일 많이 패스하는 관계가 연하물이예요.
1살이지만 연하와 살고 있고, 연하에 판타지가 있는 것도 아니라
여태껏 본 수 많은 연하물에서 진짜 재미를 느낀 건 얼마 없기도 하고..
그렇다보니 연하물이기에 그저 시놉이나 보자 했는데 저 대사를 보곤 바로 주문을 했죠.
저런 말을 내뱉는 남자가 어쩐지 너무 궁금했던 거죠.


글이 참... 아렸어요.
세상에 온전히 단 둘일 수밖에 없는 남자와 여자를 너무 잘 표현하셔서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함께 느끼고 눈물짓게 만들고
그들이 내뱉는 대사와 마음과 감정들에 같이 알싸했고 따끔했어요.
소년이 남자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준 인희.
사랑받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진짜 여자로 만들어 준 정호.
정말로 세상에 유일하게 남자와 여자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존재인데
그게 쉽게 끊어지고 놓아지고 버릴 수 있었을까요.
4년이라는 공백이 있음으로써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진 그들.
정말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을 읽으며 어느 드라마 작가와 어느 개그우먼이 생각났어요.
어쩌면, 어쩌면... 하는 그런 생각이 내내 들었죠.
우린 알지 못하는 그들의 못 밝힐 사정이 있을지 모르는데
우린 그저 한낱 기자의 자극적인 기사에 조회수를 올리며 열을 올린 게 아닐까.
연예인인데, 이름이 알려진 사람인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누구도 주지 않은 권리를 의무라고 생각하며 난도질한 건 아닐까.
참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글이었네요.


항상 책을 읽을 때 작가후기부터 보고 시작하는데 없어서 아쉬웠어요.
낯선 작가님이라 어떤 글을 쓰시는 분인지 궁금했는데 말이죠.
다음 작품에선 꼭 후기도 써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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