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필요해
이파람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직원이든 여자든 누구든 떠나겠다는 사람, 붙잡아 본 적 없다.
늘 너 아니어도 괜찮다 흔쾌히 보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잡으려 했다.
하나를 지시하면 셋을 해 오는 비서를 놓칠 순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했고, 수단과 방법이 없으면 만들려고도 했다.
그녀의 의지를 비틀어 꺾고 무릎을 꿇려서라도
떠나지 못하게 잡아두려 했다.

말갛게 웃으며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행복하고 싶다고도 했다.
일방적인 지시에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따르기만 하던 홍 비서가
처음으로 저가 원하는 것을 말했다.

차문후 인생 처음으로 욕심을 접었다.
지금까지 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
존중과 배려라는 걸 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생에 한 번쯤은 착한 일을 해도 괜찮으니까.
그 상대가 홍 비서이기에 기꺼이 그럴 수 있었다.

연필꽂이의 펜들조차 가지런히 정리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가
개차반 같은 자신의 더러운 성질과 욕을 감내한 시간들을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기 바랐다.

밤낮없이 두더지처럼 땅만 파헤치고 한 층 한 층 높아지는 빌딩을 보며
섹스의 오르가즘보다 더 짜릿한 흥분에 몸을 떠는 변태인 자신을
3년이나 꿋꿋이 견뎌낸 홍 비서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반듯한 성품의 다정한 남자와 결혼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기분이 왜 이렇게 엿 같은지.

 

 

 

그녀, 홍연지...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 열심히 선을 보러 다닌다.
남들 다 챙기는 휴일, 휴가도 반납하고 오로지 일에만 매달리길 4년.
업무비서이기에 결혼후 일과 가정 모두에 충실할 수 없어 사표를 냈는데 거절당했다.
그러면서 연애, 결혼, 아이 등등 필요한 건 티비로 만족하란다.

 

그, 차문후...
비서실 근무 4년중 자신의 업무비서로 3년을 꿋꿋하게 버텨준 홍 비서.
정석의 표본같은, 정도에서 벗어남 없는 항상 반듯한 그런 비서였다.
사생활이 있을까 싶을만큼 자신의 페이스에 항상 따라줬고
말을 할 필요도 없게 항상 먼저 알아서 보필을 해왔던 홍 비서가 사표를 냈다.
결혼을 할 계획이란다. 선을 보러 다닌단다.

연지는 초등학교 입학을 얼마 앞두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3학년때 새엄마가 생겼다.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였는데 3개월만에 차사고로 아빠도 같이 잃고 고아가 됐다.
친척집을 오가다 고아원으로 가겠구나 했을 때 새엄마의 부모님이 오셨다.
그렇게 연지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겼다. 핏줄은 섞이지 않았지만 진짜 가족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선을 보러 다니던 중
사표를 먼저 냈는데 사장은 화를 내며 티비로 만족하란다.
퇴사를 위한 변명이 아니라 정말 결혼을 하려는 건데 말이다.
맞선보는 자리까지 쫒아와 연봉협상을 하려 하고 연지는 진심으로 화를 내지만
차문후 사장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고 되려 남자 차문후를 묻는다.
결혼은 싫다던 남자가 결혼까지 들먹이며 자신을 잡는 걸 보니,
좋아하는 남자에게 여자로서가 아닌 비서로서의 뛰어남을 인정받으니 씁쓸하기만하다.

 

문후의 학력은 초졸.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먹고살기도 빠듯했고 아버지의 일을 돕다보니 어느새 학교보단 공사판을 누비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았더니 건실한 회사의 대표가 됐다.
성격 드럽고 개차반같은 회사의 대표가 됐다.
외모, 몸도 좋고, 돈도 잘 버니 여자들은 줄을 섰지만 그저 욕구분출이였을 뿐 의미는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는 사표어택에 단 한 번도 여자로 생각지도 않았던 홍 비서가 여자로 보인다.
사장 차문후말고 남자 차문후로 생각해보라니 싫단다.
업무인계를 끝내고 인사를 온 홍 비서에게 알았다 했지만 그건 그저 잠시 유예를 줬을 뿐.
절대 놓아줄 수 없는 홍 비서를 영원히 옆에 묶어두기 위한 계획일뿐이다.

 

27살, 이제 막 꽃피우기 시작한 젊은 여선생은 10살 된 딸이있는 홀아비에 마음을 뺏겨
반대하는 부모를 뒤로 하고 도둑결혼을 하더니 그마저 3개월을 살고 사고사를 당했죠.
꿈도 희망도 빼앗긴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연지는 항상 착하고 반듯한 아이였어요.
새엄마는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드리려 결혼도 서두르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죠.
그러던와중에 맞선을 본 남자는 개차반이였고 우연히 보게 된 문후는 쫓아내주기까지 해주죠.
굳이 말을 안 해도 눈빛, 손짓만으로도 필요한 것을 착착 내주던 홍 비서가 결혼을 한다니
그동안 자신의 밑에서 열심을 다한걸 아는데 아쉽고 필요하지만
자신의 욕심을 접고 놓아주려 하지만 그동안은 생각지도 않았던 홍 비서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하죠.
여자 홍연지도 잡고 홍 비서도 잡으려 남자 차문후로 생각하라고 몰아붙이지만
여자를 위해본 적이 없는 문후인지라 연지는 싫다고 자꾸 도망을 가려 하죠.
연지가 업무인계를 마치고 퇴사를 한지 한달.
문후는 계속된 연지생각에 보고 싶어 연락을 하게 되고
둘은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시작해보려 하지만 이내 성적차이에 부딪치죠.
기승..섹스인 문후와 아기자기한 데이트를 꿈꾸는 연지.
성격보다 큰 성적차이. 삐그덕삐그덕거리는 둘의 연애관.

 

연지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마음이 참 아렸어요.
핏줄도 아닌 아이를 데려다 귀하게 키운 조부모님의 마음도 참 애틋했구요.
그걸 아는 문후도 연지모르게 조부모님께 참 잘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참 듬직하더라구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연지걱정을 하던 할아버지는 문후에게 당부를 하시고서야 눈을 감을 수 있었죠.

사장과 비서의 오피스물.
흔하다면 흔한 소재인데 정말 몰입해서 읽었어요.
어설프게 비서일 좀 하다가 연애한다며 상황판단도 못하고 물고빠는 흔한 오피스물이 아니였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오피스물을 본 느낌이였어요.
19금이 붙어있어 조금은 흔한 오피스물의 19금 상황들을 예상했는데 예상외였네요.
직장내.외를 구분할줄 아는 홍 비서와 차문후 사장님 되시겠습니다.
절대 금욕적이지 않은 이 남자 연지에 의해 금욕적인 상황에 놓이는데 어찌나 심쿵하던지.
사장과 비서, 갑과 을의 입장이 문후가 마음에 연지를 품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바뀌게 되죠.
을의 눈치를 살피는 갑, 여전히 갑의 안중을 살피면서도 따박따박 할 말 다 하는 을.
남주의 지난 연애를 다 지켜본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비서인 여주의 고민과 흔들림,
여자에게 연애감정을 처음 품어 어떻게 풀어야할지 몰라 허둥대는 남주.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순진한 여자를 대해본 적이 없으니
질투하는 것조차 자신이 겪어온 대로 거칠게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남주.
겪어온 환경들이 달라 표출하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던 그들이였죠.
N극과 S극처럼 완벽하게 다른 환경에서 자란 그들이 연애를 하며 융합되는 그런 모습들이
너무 잘 표현되고 군더더기 없이 소소한 감정선들까지 잘 살려서 더 몰입이 되고 좋았어요.
책의 시작부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정말 너무 만족이였어요.
일과 사랑 다 제대로 잡고 곳곳에 웃음 포인트까지 넣어주는 작가님 센스!
다음 작품도 손꼽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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