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종에 대하여 외 - 수상록 선집 고전의세계 리커버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고봉만 옮김 / 책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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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모두가 독립적인 개별 인간으로서 판단되었으면 하며, 세상 일반의 사례에 따라 취급되지 않기를 바란다.

본문 81쪽.









이 책은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사상가이자 수필가였던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6개의 글을 선별해 엮은 것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쏟아져 들어온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는 유럽인들의 지리적 지식을 넓힘과 동시에 혼란과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야만’이라 이름 붙이고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경멸하고 무시하고 있을 때 몽테뉴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여기서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몽테뉴에겐 여행을 갈 여유가 있었다. 반면 21세기 사람에겐 인터넷이 있다. 몽테뉴 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지구 반대편의 사람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혹자는 지금을 '혐오의 시대'라고 평가한다. 적극적으로 바깥 세계와 접촉하고 문화와 사회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걸까.




타인과의 대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짐에도 독단과 아집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몽테뉴의 글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인터넷이 "타인을 대화의 대등한 상대로 인정하고 선입관이나 편견 없이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13쪽),열린 마음을 만들어 주진 않기 때문이다.




몽테뉴의 시각에도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유럽인의 시각으로 '신대륙' 문화를 자신에게 익숙한 서구 문화와 견주어 비등하다고 판단하며 그들 문명의 비야만성을 역설한다. 몽테뉴가 루앙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던 브라질 원주민들은 몽테뉴가 적은 것과는 달리 '교류를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끌려온' 것이었다. 또한 그가 우려했던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의 '교류'는 사실 '전쟁과 일방적인 침략'의 결과물이었다.




나는 우리의 지식이 모든 면에서 미약한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우리는 앞을 멀리 내다보지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우리의 지식은 아주 작은 영역을 다루고, 오래 지속하지도 못한다. 내용의 폭도, 시간의 폭도 좁은 것이다.

본문 62쪽.




몽테뉴는 이런 자기 지식의 미약함을 알고 있었다. 몽테뉴의 의견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서 다름을 이해하려면 차이점을 적대시하기 보다 공통점을 찾는 노력부터 했다는 점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내 삶은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아무 의미 없는 선과 점이 모여 뜻을 상징하는 문자가 놀랍다. 몇 개의 단어만으로 서로를 재고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약과 오만의 탄생 또한 놀랍다. 그러나 몽테뉴의 글이야말로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탄의 연속이었다. 그의 문장이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혐오와 편견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6세기 철학자의 눈에도 확연했던 문제를 두고 왜 우리는 둘 이상 편을 짜고 들들 볶고 싸우고 있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몽테뉴의 문장은 정곡을 찌르면서도 우아하고 가벼웠다.




이해를 돕는 주석과 고봉만 교수의 해제 덕분에 책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의 맨 끝자락에는 몽테뉴를 더 알아볼 수 있는 참고 도서도 소개되어 있다. 그중에 솔 프램튼의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가 있어서 반가웠다. 어떤 경로로 추천받아 철학서 위시리스트에 올려둔 책인데 몽테뉴에 관한 내용이라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는 없다. 나와는 다른 그들과의 "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붕대감기』)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몽테뉴는 신대륙 발견이 불러온 충격과 혼란 속에서 ‘타인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새로운 고민에 천착했다. - P9

자연은 우리를 자유로운 존재이자 얽매이지 않는 존재로 이 세상에 내놓았는데, 우리가 스스로를 좁은 곳에 가두어버리는 것이다. - P14

사물은 자체의 무게와 치수, 그 밖의 여러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사물이 일단 우리 내부로 들어오면 정신은 그 사물을 자신이 이해하는 바에 따라 마름질한다. - P93

사람들의 정신에는 저마다의 양식, 규준, 본보기가 있기 때문에 결코 똑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 그러므로 사물의 외적인 성질을 탓하며 우리 자신을 변명하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자. 오히려 사물에 성질을 부여한 우리 자신에게 설명을 요구하기로 하자. - P94

몽테뉴를 상징하는 ‘크세주Que sais-je‘라는 말은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뜻이다. 그것은 일종의 방법으로서의 의심, 다시 말해 자유로운 검토를 위한 의심이다. 그 성과는 자유로운 정신이다. 몽테뉴의 회의주의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회의를 통해 어떤 확실성을 자유롭게 추구하려는 노력이다. 몽테뉴에게 그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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