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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정식으로 책이 출간되기 전에 읽을 수 있는 가제본은 왠지 설레고 각별한 느낌이 들죠.
아직 일부 오탈자가 그대로 남아있지만,
새침하게 새 옷 입고 꽃단장하고 나오기 전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소박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신간이 나오면 거의 빼놓지 않고 읽고 있는 손원평 작가님의 따끈따끈한 신간입니다.
지금은 일본에서 한국문학과 에세이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시발점이 된 책이 손원평 작가님의 <아몬드>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일본 서점대상 발표일에는 유튜브로 생중계를 보는 편인데
몇 년 전에도 생중계를 보고 있다가 잠깐 주방에 갔다가
작가님이 번역 부문 수상자로 발표되었던 순간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작품은 노년 생활에 관한 근미래 디스토피아 SF소설이에요.
이 작품은 주인공 스물아홉 살 여성 유나라의 일기문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유나라는 지상 낙원인 시카모어섬에서 연극 배우를 하는 것이 꿈입니다.
시카모어섬은 30%의 부유한 노인들과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60%의 청년들로 구성된 곳이에요.
시카모리아라는 시카모어섬의 메타버스를 VR 장비를 이용하여 맛볼 수 있어요.
유나라는 AI와 더 젊은 노동자들에 의해 떠밀려 실직자가 되었는데
시카모어섬과 MOU가 체결된 노인요양시설 유카시엘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유카시엘은 등급제 노인요양시설인데 이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면
시카모어섬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유나라에게는 다시 없는 기회입니다.
유나라가 살아가는 근미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칼처럼 휘두르는 일부 이민자들과
이미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해버린 노인들, 저렴하고 효율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AI로 인해
청년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유나라는 어렸을 때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느꼈던 민아 이모를 늘 그리워하며
민아 이모의 흔적이 느껴지는 시카모어섬의 창립자 한국계 억만장자 여성 카밀리아가
민아 이모가 아닐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살죠.
밝혀지는 현실은 씁쓸하고
유나라는 시카모어섬 대신 AI 로봇과 함께 거리 청소를 하게 되죠.
리얼하게 타산적인 사람들의 모습은 현재나 미래나 마찬가지 같습니다.
요양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룸메이트 엘리야는 노인을 혐오하고 노인을 규탄하는 집회에도 나가면서
시카모어섬 입도자 모집에서는 발톱을 숨기고 영악하게 온건하고 노인 친화적인 청년의 모습을 연기합니다.
그리고 은퇴 전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대접받고 싶어하는 노인들,
자랑과 허세를 마지막 생명줄처럼 잡고 있는 모습에 착잡함을 느낍니다.
젊음의 나라가 무엇일까?
유나라는 뜻밖에 어린 시절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민아 이모,
어쩌면 대부호인 카밀리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가장 허름한 유닛의 생기 없는 피부, 초점 잃은 눈빛으로 유나라에게
선택사(안락사)를 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원을 말합니다.
그러나 젊었을 때 소원해졌던 유나라의 어머니와 민아 이모의 화해가 일어나고
그들은 다시 그때처럼 연대합니다. 강릉에서 어깨를 맞대고 함께 살아갑니다.
이 디스토피아 현실에서 진정한 유토피아는 시카모어섬이 아니라,
사랑과 연대, 서로에 대한 돌봄이 살아있는 그들이 공존하는 곳이 유토피아가 아닐까?
유나라도 허공에 뜬 구름 같았던 시카모어섬 입도보다 이곳에 뿌리박고 살기를 택합니다.
그런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 젊음의 나라가 아닐까?
SF소설을 잘 이해하는 편이 아니어서인지
작품 속 세계(요즘 흔히들 '세계관'이라고 하는)가 잘 그려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유나라의 어머니가 강릉 바닷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산다는 걸 보면
현재와 같은 삶도 가능한 것 같고,
모두가 의무적으로 유닛이라는 노인요양시설에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부유한 노인들은 애초에 누가 만들어놓은 요양시설에 들어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명품 회사 펜디에서 만든 고급 아파트가 실패했던 것도 그 이유죠.
그들은 프라이버시를 원하고 재력으로 남들이 자기를 위해 일하게 하지,
그렇게 마련해 놓은 관리되는 공간에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미처 읽기 못한 행간에 설정이 담겨있을지도 모릅니다.
한편으로, 내가 원하는 노년의 삶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역시 유나라와 유나라의 어머니, 그리고 민아 언니를 묶어주는 신뢰와 애정이라는 끈,
그 연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