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철학 - 실체 없는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사는 법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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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에서 뭔가 괴로운 경험을 한 사람은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대인관계를 회피하려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이유로 불안을 내세운다.

 

불안을 외면하기 위해, 혹은 불안해져도 바로 잊을 수 있도록,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자면 위락에 몰입한다. ‘위락은 현실에서 주의를 돌리는 일로, 이에 대해 미키 기요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위락에 공통하는 이유는 우리가 처해 있는 비참한 상태에서 눈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려는 삶의 충동에 있다.”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마찰이 생기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토록 골치 아프고 힘든 대인관계를 피하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괴로운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를 피하기 위해 불안을 만들어 낸다. 불안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 그 구실로서 불안을 내세우며, 대인관계의 어려움은 대인관계를 피하는 계기가 된다.

 

게다가 보통 질투는 질투 받는 자의 위치로 자신을 끌어 올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상대를 자신의 위치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미키 기요시)

아들러는 이런 심리를 가치 저감경향이라고 부른다. 현실적으로 노력해서 목표로 하는 사람과 동등하게 되거나 뛰어넘으려 하기보다 도리어 상대를 자신과 같은 위치로, 혹은 이하로 끌어내리려 한다. 그렇게 해서 상대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은 특정한 누군가의 성공을 질투하지만, 그 질투하는 상대를 개성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소문의 근원이 불안이라는 말은 진리를 담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불안해서 소문을 만들고 받아들이고 또한 전달한다. 불안은 정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오히려 온갖 정념을 움직이는 것, 정념의 정념이라고도 해야 하며, 그렇기에 정념을 넘어선 것이다.”

 

병에 걸리면 그때까지 죽음에 대해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던 사람도 죽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다만 병에 걸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 알면 불안이 조금은 줄어들지 모른다.

 

신체의 상처나 병이 완전히 낫는 것, 즉 치유나 완치 상태가 아닌, 증상이 거의 없어지고 스스로 제어할 수 있으며 별다른 문제가 없을 정도까지 좋아진 상태를 완화라고 한다.

 

살아 있는데 자신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병이 걸리기 전에는 가치 있다고 여겼던 일들이 조금도 가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가치는 살아 있는데 있다. 살아 있는 것이 그대로 타인의 기쁨이며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늙음도 질병과 마찬가지로 퇴화가 아닌 변화다 늙은 현재는 젊었을 때에 비해 열등한 것이 아니다. 단지 늙은 상태에 있을 뿐이다.

 

나이가 들면 분명히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니다. 예전에 갖고 있던 것이 지금은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젊을 때도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젊었을 때난 나이 들었을 때나 그 무엇을 소유한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한다.

 

비교적 꽃이 피는 기간이 긴 매화와 달리, 벚꽃이나 모란은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또 언제 질까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하지만 꽃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다. 꽃이 피기 무섭게 바로 지더라도 그건 자연 현상일 뿐이며, 빨리 지고 마는 자신의 운명을 슬퍼할 일은 아닌 것이다.

 

미래는 무엇 하나 정해져 있지 않다는 현실을 알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이 불안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이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앞날이 보인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레일이 없다는 건, 상식적인 방식대로 살아갈 필요가 없으며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도록 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다. 인생은 색다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다 보면 때때로 심연을 맞닥뜨리게 되는 데 그때는 심연에서 눈을 돌리지 말고 심연으로 뛰어들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불안하겠지만, 이때의 불안은 다른 사람에게 맞춰가며 남들이 하는 대로가 아니라,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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