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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굴레 - 경성탐정록 두 번째 이야기 ㅣ 경성탐정록 2
한동진 지음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추리소설은 경성탐정록의 후속으로 4작품을 한곳에 담은 일종의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편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었는데, 이번 작품을 한번 살펴보면서 각 단편에 대해서 제가 생각한 점들을 이곳에
풀어 써봅니다.
외과의 편
현대 한국형 추리소설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품 내에서는 설화 체와 대화체가 적절하게 섞여 있고, 사건이 현재진행형으로 범인의 범죄가 지속하는 동안 이야기가 전개되며 탐정이 사건추리를 종료하는 순간 범죄가
종료되는 실시간성의 특이성이 가장 큰 특징으로 보입니다. 서사적 구조에 1인칭 주인공인 범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따라서 범인의
직접적인 심리 변화묘사가 탁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p. 16 “두려움이 없어졌다. 자신감이 되살아났다.”
p. 31 “온몸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목덜미가 으스스해졌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3인칭의 전지적 시점이 개입되면서 전개되기 시작하고, 범인의 내면
혼란과 또 다른 주인공인 탐정의 대결적 구도가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외과의
편에서 큰 특징 중 하나가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장치인 증거를 사용하지 않고, 탐정이 직접 만들어낸 함정을
통한 이야기 전개로 직접 개입함으로써 인과적 서술의 체계를 기존 추리소설과 전혀 다른 형태로써 해결적 역전이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으로 서사적 구조를 논리적 구조가 침범하는 것으로, 범인에 입장으로 트릭이 서술되어 있는데
전형적인 탐정이 트릭을 파헤치는 과정이 전개될 필요 없이 직접 범인에 독자가 융화되어 그것을 전지적 독자시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섬뜩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상당히 빠른 전개로써 소설 몰입에 스트레스가 덜한 구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전개에서 특별한 반전이 없는 상황이 되는데, 이를 탐정의 직접적인 함정을 구현함으로써 극 중 반전을
꾀하고, 소설 내에서 최고조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상황전개가 이루어진 작품이고, 범인과 피해자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반면, 주인공인 탐정의
모습이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고, 있는 모습은 이를 알기 위해 다음 장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끝에 보도관제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몰입되었던 상황에서 아! 1930년대의 서울이라는 시간 감각이 회복되고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범인인 이와테 의 특이한
행적인 일기가 나중에 등장함으로써, 이 소설이 시간상으로 일자와 함께 배열되었는지를 알려 주고, 범인의 교만함을 상징하는 메타포로써 남게 됩니다.
안개 낀 거리 편
도입부 사건이 객관적으로 묘사되고, 제3자인 왕도손은 주인공의 주변인으로서 관찰자적 시선을 가지고 소설에서
등장하며, 전지적이면서도 제3자의 눈을 통한 상황묘사로 복합적인
시점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제목의 안개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1930년대 서울의 우울함이나, 주인공 설홍주가 처리하는 사건들이
살인사건들로 이에 따른 분위기 극대화의 장치로써, 또는 사건 해결의 어려움 등을 나타낸다고 생각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특별한 트릭이 없이 주인공의
추리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읽어보고 나면 가해자가 다른 의도를 품지 않은 복수를 위해 그 뒤를
생각하지 않고 사건을 일으켰다는 점으로써 굳이 이런 트릭을 마련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가 설명되고, 비가
와서 지워진 현장 등은 분위기생성에만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의도된 장치로써 보입니다. 곳곳에 깔린, 복선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는데, 두 번째 읽을 때, 그 장치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몇 가지 의도된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
그것들이 이 이야기의 말미에서 모두 연결된 고리로 나타나면서, 완벽하게 만들어진 한편의 서사가 완성됩니다.
이편에서는 설홍주의 인물에 대해 묘사가
탁월한데,
p. 86 “하지만 설홍주의 발걸음은 느긋하기만 했다”에서
볼 수 있듯이,
위협이 있는 상황임에도 침착하게 자신의 논리를 생각하는 것이 우선인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범인의 심리상태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구절도 보이는데
p. 106 “김성일은 입을 벌렸다. 멍청한 얼굴이다. 아니, 어쩌면 당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활짝 열린 미닫이문 너머, 허연 안개와 어둠이
뒤섞인 모호한 세상을 멀거니 바라볼 뿐이다.”
에서, 범인의 당황스러운 심리상태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인 설홍주는 외과의
편에서 정의의 사도처럼 나오지만 안개 낀 거리 편에서는 현실의 정의를 부정하면서, 자신의 신념에 따른
행동 이였음을 말미에 강조하고 있는데, 암울한 1930년대
시대상에서 전편과 다른 행동은 범인과 피해자가 조선인임을, 그리고 피해자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까? 정도의 행동을 보여준 것, 당시 시대의 조선인에 대한 경찰의 무관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당시 사회의 모습과 사건의 우울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피의 굴레
이번 판의 제목이자, 가장 많은 분량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선행사건인 허장남의 자살로 기록된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는 직접적인 묘사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묘사까지 세부적으로 진행되며, 뒤에
밝혀지지만, 독립적인 사건인 김명수 사장의 죽음과 류금환의 횡령사건을 엮어놓음으로써 독자와의 줄다리기를
진행하는 구조로, 임의적인 장치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유서를
다다이즘과 관련시킨다든가, 왼손잡이라는 특징이라던가 하는 일종의 거짓장치가 많이 존재하고 있어, 읽는 내내 생각을 지속하게 됩니다.
유서뿐만 아니라 용의자라고 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도 여러 장치를 선보이는데 그 중 하나가 수위에 대한 묘사로, “눈꺼플을
쉴새 없이 깜빡이며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라는 대목에서는 이 사람이 혹시 범인인가? 하는 의구심을 독자로부터 유도하는 장치로써 사용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장치로써는 윤심덕. 김우진 이야기가 중간에 존재하는데 이것은 결말을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주요 내용이 수학 이라는 것도 다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수학을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 구조를 가진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 사건의 시작도 경부가 아닌, 월광이라는 잡지 사장의 의문으로 시작되고, 여러 부분에서 앞서 나온
작품들과 다른 구조로 전개됩니다. 이 사건에서는 실제 사건의 중요한 단서인 은색 가루가 상당히 빨리
등장하지만 전개상으로 느려진다거나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는 점도 특징인데 결말 즈음 가서 단서이긴 하지만 정체불명의 은색가루가 밝혀지면서 아! 하고 독자는 감탄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임마리아 라는 특이한 여성이
등장하는데, 당시 시대상황에서의 여성에 대한 인식, 겉모습은
물론 실제로는 화려하지만은 않은 모습들도 보여줌으로써 더욱더 사실성을 부여하는 하나의 요소로 보입니다.
여기서는
주인공이 수학과였다는 우연이 교수님과 만나는 필연을 통해서 허장남 사건의 열쇠를 풀게 되고 처음 등장했던 시가 다시 등장하면서, 탐정 설홍주가 이것에 대해 해독을 하는데 기호학적인 해석으로 추리소설에서 가장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나타납니다. 단순하게 푸는 것이 아니라 한자와 한글 혼용에서 이진법으로 다시 십진법으로 전환되고, 문자로 전환되는데 영어를 사용하게 되는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마련해내고 있습니다.
이후에 특이한 전개는 바로 사건이 종료된 이후에 범인의 독백을 통해 사건의 경과와 미스터리가 걷히는 것인데, 이미 사건은 종결되었음에도 범인의 독백은 몰입감 을 유지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비참한 현실 속 탈출방법이 그것
뿐이였던 상황들, 그리고 사실을 알고도 충격조차 받지 않았던 범인들의 불안정한 상태는 1930년대가 아닌 지금의 현대인들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 이였습니다.
날개 없는 추락
이편은 경부의 조사로부터 시작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가 시작되는데 여기서 왜 일본인 경부가 탐정 설홍주에게 어느 정도 관례를 베푸는지에
대해 내용이 나와 궁금했던 설홍주와 경부 간의 관계에 대해서 의문이 풀리고, 경부와 함께 일하는 야마모토라는
사람의 시점으로도 이야기가 전개되어 입체적인 사건 조명이 되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독자의 시선 분산을 위한 사건이 배치되는데 볼꽃 놀이가 그 중 하나고 현준건 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이 다른 하나라고 보입니다. 경부의 조사에서는 현준건이 매우 유력한 용의자로 등장하지만, 의례
그렇듯이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용의자는 자연스럽게 독자가 소설을 읽으면서 선상에서 배제 시키게 됩니다. 이후에
여러 가지 증거들을 탐색하는데 사실 이것들도 거짓증거- 일종의 잉여적 서사 도구로써 존재하는 것으로
작가-독자 간의 팽팽한 관계를 조성하는데 큰 몫을 합니다.
손다익
박사의 직접적인 성격묘사도 등장하는데 “그에게 거짓말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행동 양식 이였다.” 라는 내용이 그것이겠습니다. 여기에 특고라는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면서
긴장감은 배가되는데, 특고 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포의 대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도 피해자는 평이 좋지 않은 사람 이였으며, 무술 사범과
백청만이 연결되는 고리로써 사무실에서의 행패가 연결요소로써 급진전 되는데, 이러한 갑작스러운 연결도
자연스럽게 진행함으로써, 작가의 능력을 가늠해볼 수 있겠다고 봅니다.
중간에 장면이 넘어가면서 과감하게 생략되는 부분이 있는데, 설홍주가 경부에게 이야기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어느 정도 내용이 존재해야 함에도 과감히 생략하여 그 부분에 대해서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하는 틀을 놔둠으로써 좀더 자유스러운 독자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부분으로 생각됩니다. 이후에 용의자들을
잡아놓고 취조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죄수의딜레마’라는 것을
사용하여 추리소설에 적용하는 게임이론으로써의 심리학적 접근도 한층 작품의 완성도를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치며
이상의 경성 탐정록 두 번째 이야기 피의
굴레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각각의 단편들은 시점이나 서사적 구조가 각각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고, 화자의
전지적 시점이 아닌 사건을 관찰해서 전달해주는 점, 추적과 체포는 생략하고 증거를 증명하는데 주안점을
준다는 점등은 기존 한국의 근대 추리소설과는 다른 장르를 보여주는데, 이는 서구적 추리소설의 틀을 가져가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추리소설에서 화자는 1인칭의
신빙성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소설 내에서 전환되는 관찰자적 시점은 인물이 소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도 주인공인 탐정 설홍주를 관찰하고 있는듯한 독특한 느낌을 들게 되고, 다른 작품들과 다른 피의
굴레만의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전등이 자주 등장하는데 보통은
긍정적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전등이 어둠을 현실화 시켜주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강하게 등장하는 것 같고 내용상으로는 역할이 없어 보이는 요소지만, 계속적인 등장으로 분리된 각 편이 등장인물들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전등- 이라는 특이한 요소로 묶어져 있다는 점을 들겠습니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이 피의굴레가 주 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독자에게 새로운 추리소설의 경험을 선사한
것으로는 날개 없는 추락 편을 이 책의 최고로 꼽겠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설홍주가 경부에게 전달하는 장면을 생략하는 것이라던가, 1930년대
서울의 상황과 민족의 상황을 적절하게 혼합하여 현실감을 높이었다는 것, 이야기가 진행되기 위한 연속
장치 등 은 독자로 하여금 속도감 있는 전개와 집중을 선사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 세 번 읽어봐야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구나 하고 책을 덮을 수 있는 사골과 같은 소설이라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