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 인생의 파도를 대하는 마흔의 유연한 시선
제인 수 지음, 임정아 옮김 / 라이프앤페이지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각했던 미래와는 다르지만, 이대로도 좋다!'



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마흔.

불혹의 나이라고 한다.

어느 덧 살다보니 마흔이라는 나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여자에게 앞자리 수가 바뀌게 되는 것은 조금 특별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앞자리 4를 맞이하는 해에는

나홀로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ㅋㄹㄴ 를 맞이하고 어디도 갈 수 없는 상황에 억울한 마음이 슬쩍...

내 나이 3으로 진입할 때에는 인도에 두달 정도 여행을 했었기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한 해, 한 해가 중요한 것이지

앞자리 수에 굳이 연연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유연한 사고를 하게 되는 것 역시 나이를 먹어서 일까?



p.47 늦여름의 아이스크림

내 지갑에는 열 개든 스무 개든 살 수 있는 돈이 들어 있지만,

위장 걱정을 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선택할 수 있는 그 아이 쪽이 나보다 훨씬 풍요롭게 느껴졌다.

위장이 받아주는 아이스크림.

원없이 먹어도 속이 편안했던 어린 시절에 비해

지금은 신중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나이.

생각없이 손에 잡히는대로 먹어도 다 맛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지금은 고르고 골라서 후회가 남지 않을 아이스크림을 먹기위해 머리를 굴려본다.

내 몸이 받아들이는데 예전같지 않기에...


p.91 자유의 날을 허하노라

P씨와 나 사이에 새로운 규칙이 탄생했다.

이름하여 '올 프리 추즈 데이 All Free Choose Day.'

끝도 없는 집안 일에는 퇴근 시간이라는 것이 없다.

무시하고 쉬고 싶지만, 쉬는 중간에도 눈에 밟히는 집안 일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P씨와의 규칙은 나도 무척이나 필요하다.

하지만...조건이 다르다.

우리집엔 뒤돌면 어지르고 보살핌이 필요한 꼬마들이 있기에...

대신, 다른 대안이 생길 수 있긴하다.

물건을 줄이기.

이건 수 년 전부터 바램인데 실행이 참으로 어렵다.

난제일세.....


P.108 100년을 살게 된다면

아버지의 씩씩함을 보고 있으면 나도 배워야 한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때는 좋았지"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에 몸과 뇌를 점점 적응 시켜간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언제까지나 인생을 즐기는 비결이라고 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해 가르쳐주신다.

우리 아버지도 늘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이 많으신 편이다.

70대 중반을 훌쩍 지났어도 궁금한 것들이 참 많으시다.

'난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그러니 네가 해줘'가 아니라

'이건 어떻게 하는거니? 좀 가르쳐줘' 가 일상이신 분이다.

매번 가르쳐드리는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가르쳐 드리면 열심히 배우시고 스스로 하시려고 하니, 장기적으로 본다면 훨씬 낫다.



p.115 "죄송합니다"와 유모차, 도대체 왜

내 주변에 한정된 일일지도 모르지만, 기혼인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아이가 없는 여성이 사소한 일로 사과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사과 화법을 구사하는 것은 엄마들로 정해져 있다. 왠지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일본은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특히 예의에 어긋난다고 한다지만

'유모차 약자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었을터인데 언제부터 인가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 같다.

'노키즈' 가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아이에게 바른 가르침을 주고, 부모로써 당연히 해야할 것들을 하지 않아 생기는 민페들로 인한 것이지만(중요)

아이는 어른들과 함께 살아가는법을 배워야만 하는 아직 많은 배움이 필요한 존재이다.

아이를 키우는 한 사람으로써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기에,

나부터 잘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p.147 '성격이 좋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어떤 때라도 남의 기쁨을 솔직하게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쓰여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거절을 잘 하지 못해서...

'No' 보다는 'Yes'의 삶을 살아왔더랬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늘 참고 살다가 내 속이 곪아버릴 것만 같았다.

내 기분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후련했다.

'성격이 좋다'라는 것은 친절함과 함께 뭔가 유쾌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성격이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친절한 편이기는 하다.

어떤 때라도 남의 기쁨을 솔직하게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되어가고 있다.

남의 기쁨에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욕심을 버리면 어렵지 않다.

애초에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을 내려두면 남의 기쁨을 조금은 더 순수하게 함께 해줄 수 있지 않을까?



p.225 뇌의 기억과 스마트폰의 메모리

보잘것 없을 수도 있지만 막상 보니 잊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작은 추억까지 되살아나 즐거운 기분을 한껏 맛보았다.

나에게는 256기가의 메모리를 가진 휴대폰이 있다.

영상 하나 찍으려면 저장공간 부족 알람이 자꾸만 뜨지만 정작 확인하면 지울 파일은 거의 없다.

옮기는 일이 번거로워서 날 잡아서 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진들이 가득하다.

바로 어제의 일도 가물가물 해지는 나이가 되었는데(나만 이런가?)

사진으로 남겨두면 그나마 새록새록 기억이 떠오른다.

그러기에 나는 계속 기억을 저장해두게 되는 것 같다.



p.247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거다.

아내가 되었거나 엄마가 되었거나, 또는 다시 싱글로 돌아왔거나, 친구들은 나와 달리 제각각 바쁘다.

육아도 부모님 간호도 아직은 여자 손을 필요로 하는 현실에 지긋지긋해하면서 그래도 모두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잠정적인 착지점을 발견하는 것이 훌떡 능숙해졌다.

...

앞으로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하며 나아가는 중에 내가 틀릴 것은 확실하겠지. 지금도 아주 잘못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나는 틀려도 괜찮다. 거기서부터 회복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고 자신을 설득해보는 건 어떨까. 오늘까지 무사히 살아왔으니 당신은 괜찮은 것이다.

우리는 소녀였고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다르지 않고 한 사람, 한 여자가 겪게 될 수순이다.

우리는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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