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심플리시티 - 카오스, 복잡성 그리고 생명체의 출현
존 그리빈 지음, 김영태 옮김 / 한승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질서의 한 복판에 카오스가 있지만 카오스의 한 복판에도 질서가 있다.”

 아마도 이 문구만큼 카오스를 잘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카오스란 고전적으로나 일상적으로 완전히 무질서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회자되어 왔다. 하지만 여기서의 카오스란 반복과 자기 유사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인과관계를 가진 연결된 네트워크 고리 안에서 질서를 갖는 복잡성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그 무엇이다. 단순한 법칙, 비선형성,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과 피드백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빈은 이 책을 통해 물리학, 천문학, 수학, 기상학, 화학, 생물학, 그리고 진화를 넘어서 하나의 계로서의 지구, 그리고 은하에까지 이를 적용하는데 성공한다. 이의 흐름을 간단히 도식화시켜 나타내어보면 다음과 같다.

 케플러, 갈릴레오 – 뉴턴, 라이프니쯔 – 맥스웰 – 아인슈타인 – 푸앵카레 – 리처드슨 – 로렌츠 – 튜링 – 벨루소프 – 박 – 카우프먼 – 러브록

이 흐름을 통해 어떻게 저자가 기본적으로는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각계의 학자들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카오스란 의미를 재정립해나가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얼마 전, 경제학을 공부하는 와중에 Kremer의 O-ring 모델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모델도 결국에는 카오스 이론이 적용에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모델에서 설정하고 있는 생산함수는 다음과 같다.

B*F(qi, qj) = qi*qj

이는 곧, 한 기업의 생산성은 기술수준 q를 갖는 노동자 I와 J로 결정되는데 이 때의 각기 다른 기술수준 q를 지닌 노동자들 간의 곱으로 생산함수는 결정지어진다. 이는 아담 스미스의 분업의 효율성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노동자 한 명의 기술수준의 결함은 곧 전체 생산 능력에의 결함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는 마치 챌린저 호 대참사에서처럼 작은 기대하지 못한 결함 하나가 불러일으키게 될 시스템적인 카오스를 의미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은 채, 조금 더 확장시켜볼 수 있었다. 경제학에는 참 재미있는 가설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이는 시카고 대학의 Gary Becker의 ‘marriage market’ 가설이다. 이 가설 또한 O-ring에 대한 논의의 연장 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잠시 O-ring으로 돌아가 좀 더 논의해보면, qi와 qj에서 이들의 생산능력은 이들이 지닌 기술수준q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데 만일 시장이 완전경쟁 상태에 놓여있다면 생산성은 임금과 비선형관계이지만 정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 즉, 생산함수가 B*F(qi,qj) = g(qi) + h(qj) 였다면 한 노동자의 기술 수준과 다른 노동자의 기술 수준 간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으므로 임금과 생산성은 선형관계를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둘 간의 complementarity가 존재할 경우에는 둘의 기술 수준이 서로의 생산성에 영향을 주므로 이는 임금과 생산성의 경우에도 선형관계를 갖게 한다. 예를 들어, 두 개의 기업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한 기업이 노동자 두 명에 의해 생산되어지고 있으며 이들의 기술 수준이 0.2라고 하면 생산함수는 0.2*0.2=0.04가 되며 이 때의 임금 수준을 4라고 하면 또 다른 기업의 노동자의 기술 수준이 0.4라고 하면 생산함수는 0.4*0.4=0.16이 된다. 기술 수준에서는 두 배 차이가 났으나 생산능력에서는 4배 차이가 나며 이는 그대로 임금 수준을 4배 차이가 나도록 만든다. 마찬가지로 기술수준이 0.9인 기업이라면 0.81의 생산능력을 갖게 되고 이 노동자는 81의 임금 수준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느 높은 기술 수준을 지닌 노동자라도 (아니 낮은 기술 수준을 가졌더라도 적어도 시도만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 높은 기술 수준을 지닌 노동자를 동료로 구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문제를 가지고 marriage market에 적용시켜보면 결국 가장 높은 매력을 지니고 있는 남자가 마찬가지인 여자를 배우자로 맞이하는데 성공하며 두 번째의 매력을 지닌 남자는 완전경쟁 시장에서 두 번째로 매력 있는 여자를 배우자로 받아들이게 되며 이는 가장 매력 없는 남자가 가장 비매력적인 여자를 배우자로 받아들이게 되는 market clear상황까지 계속된다. 이 가설은 물론 비논리적인 측면과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가설의 전반적인 논리가 다윈의 가장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선택된다는 적자생존의 원칙의 그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시장도 결국에는 이 논리 어디엔가 1/f 잡음과 지수함수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즉, 대한민국 남자들의 평균키가 50년 전에 비추어볼 때 20센티나 커졌다는 것은 단순히 건강상태의 호전을 벗어나 (키가 매력을 높게 판단하는 척도 중 하나라 가정한다면) 키가 더 큰 사람들이 환경에 더 적합하게 적응하는 것으로 보아 유전자에 카오스적인 메커니즘이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을 전개시켜보았으나 책을 읽는 과정에 있어서도 프렉탈과 같은 수학적 부분은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기에 도저히 더 이상 전개시키기에는 무리가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명절의 교통 대란 때, 고속도로에서 10시간이 넘는 정체를 보면서 항상 생각했던 것은 모든 차들이 동일하게 10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다면 정체가 있을 수 없을 텐데, 마치 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해답이 이 책을 통해서 확실히 해소되는 듯 하여 기쁘다. 단순히 차들이 더 빨리 달리거나 혹은 인터체인지나 톨게이트로 빠져나가려는 반복들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교통지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카오스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수학적인 부분에서 흥미로웠던 사실은 노드의 뜻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십만 개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면 이에 따른 형질은 10의 3만 제곱승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사람의 수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고 해도283,824,000,000,000명을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인구 수 60억의 평균 인구증가율이 1.5%이므로 매년 9000만 명이 새로 태어난다. 이는 매 초 3명이 태어나는 것으로 계산하여 60*60*24*365*300만 년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280조 명에 불과하고 이를 백 조 단위에서 올림을 하여 천 조 명이라고 하더라도 겨우 10의 15 제곱승에 불과한데 사람이 그 형질을 다 나타내려면 적어도 10의 3만 승에 해당하는 사람이 태어나야 한 번은 순환될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으며 계속 읽어나가는 과정에 호기심이 생기고 가끔은 해결하는 모습도 보이고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가기도 하지만 이 와중에 발견하는 즐거움이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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