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세계사 - 전면개정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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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6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돌베개


인간의 나이는 세 자릿수를 넘기기 어렵다존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과학자 집단의 고군분투는 경이롭고 치열하지만단기간에 노화를 저지하는 혁명적 도구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초신성의 폭발에서 기원한 인간은 100년 남짓한 시간을 지구행성에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사랑하고 미워하고 헌신하고 배신하고 한껏 교만을 떨다가. 남보다 일찍 세상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건방을 떨었던 나는 이 사실이 죽도록 미웠다. 어릴 때부터 쭉 그랬다! 

  

무언가를 이토록 증오하면좋아하는 것도 생긴다. 일종의 반발심리랄까. 내겐 역사가 좋은 화풀이 상대였다물리적 제약을 초월해 전승되는 영웅의 서사인간의 아름다움과 어리석음전쟁과 패망인간의 성취와 오류좌절과 실패바람과 소망과 죄의식 따위가 나를 위로했다역사는 내가 세상에 외롭게 떨어진 여행객이 아니라수많은 사람의 삶과 죽음 위에 발 딛고 살아있는 실체임을 알려줬다. "봐! 인간은 나약하지만 그래도 이런 역사를 만들 수 있어!" 같은. 


호모 사피엔스의 지혜와 슬기가 담긴, 수신자를 알 수 없는 편지들시간과 공간의 바다 위를 유영하는 편지들책이라고 불리는 그 내밀한 과거의 이야기를 제멋대로 집어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것이 그래서 즐거웠다.

  

그런 맥락에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여전히 훌륭한 먹을거리이고뛰어난 편지다암흑과 영광전쟁과 살육이 지배하던 시대의 결정적 장면을 들춰내 독자에게 전송하는 유시민의 솜씨는 그대로다. 히틀러와 러시아 혁명과 대장정을 경유하고 21세기로 귀환하는 독자를 예우하는 작가의 태도 역시 성실하다. 독자는 역사의 격변 안에서 거칠게 숨을 쉬되, 독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식소매상이 이미 30년이 지난 책의 묵은 때와 먼지를 털어낸 이유를 새삼 고민한다어쩌면 이 짧은 문장에 대한 논증 하나가 필요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인간을 긍정하는 것역사를 공부하는 것분명 외롭고 괴로운 일이다그러나 억겁의 시간에서 찰나의 순간을 가치 있게 사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리 나쁘지 않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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