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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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를 읽고

은희경 작가는 1995년에 쓴 <새의 선물>을 읽고서 반해 다른 소설들도 몇 권 찾아서 읽었었다. 오랜 만에 소설읽기 모임에서 3월의 책으로 <새의 선물>로 선정한 까닭에 다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때의 감동을 재현하는 즐거움을 맛보았고, 다시 읽으면서도 참 잘 썼다 생각했다. 이왕에 다른 소설도 찾아 읽어보자 싶어서 짧은 소설들로 엮은 <타인에게 말걸기>도 읽었다. 그리고 <소년을 위로해줘>란 장편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의 은희경 작가의 최고의 소설은 여전히 <새의 선물>이다. 몇 권의 소설도 읽어보고 또 그 나름대로의 재미도 있지만 역시 첫 장편소설인 <새의 선물>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첫 사랑, 첫 감동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는 열일 곱 살의 연우라는 소년의 시선으로 쓴 성장소설로 힙합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어 나가는 성장소설이다. 우연히 힙합 음악을 듣다가(‘소년을 위로해줘’) 착상했다는 소설이다. ‘무엇다워야 한다는 가르침에 난 또 놀라. 습관적으로 모든 일들에 익숙한 척 가슴을 펴지만 그 속에서 곪은 상처는 아주 천천히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어. 우리는 진짜보다 더 강한 척해야 하므로.’(‘소년을 위로해줘’가사)

처음부터 흥미로웠던 건 아니다.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한 장 두 장 넘기는데, 읽다 보면 계속 읽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작가가 처음부터 많은 정보를 주지 않고 마치 양파껍질을 하나씩 벗겨가듯이 조금씩 던져주고 천천히 알려주는데 처음엔 주인공 ‘나’가 누구이고 몇살인지, 뭘하는 사람인지…아무런 정보가 없다가 한. 겹 한 겹씩 벗겨가는 느낌이다. 이름은 연우, 그리고 연우 엄마의 이름, ‘나’의 나이’ 이렇게 조금씩 툭툭 던진다. 독자들이 궁금하게 하면서 독자가 소설속으로 발을 들여놓게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주인공 연우와 연우 엄마 신민아다. 아들 연우를 방목하며 여느 엄마들하고는 조금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가는 이혼녀다. 연우 엄마 신민아씨는 허세가 없다. 그녀의 툭툭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톡 쏘는 탄산음료처럼, 혹은 박하사탕처럼 상쾌 유쾌해진다.

“주변의 위험한 물건 다 치워놓고 마음껏 놀게 해주는 것. 그게 방목이야. 대부분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지만 결정적일 때는 개입을 해야 해. 그러니까, 멀리 있더라도 연결은 끊어지면 안된다 이거야. 그런 걸 방목의 기술이라고 하지.”(251)라고 하는 말이나,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연우를 깨우며 하는 말, “연우야, 빨리 일어나. 빨리. 어서 옷 입어! 다급한 엄마가 나를 마구 흔들었다. 벌떡 일어나 창밖을 보니 성난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비바람과 싸우듯 난폭하게 가지를 흔들어대고 흙탕물 줄기가 흙길을 쓸어내리며 거칠게 휩쓸려가고 있었다. 거의 재난 수준인데…’바람 보러 가자. 바람? 응, 빨리 챙겨. 고작 바람을 보려고 이런 폭우를 뚫고 밖으로 나간다고?...지금 숲에 가면 숲 전체가 미친 듯이 흔들리는 걸 볼 수 있어. 쉽게 못 보는 그림이야. 네 감수성 훈련을 위해 교육적 목적으로 데려가는 거라니까. 남자는 날씨와 장소에 섬세하게 반응할 줄 알아야 해.” 또 “폭풍우 몰아치는 날 카페에 앉아 창밖 경치를 봐야 했고, 어떤 새벽에는 취해 돌아와 마구 깨우는 바람에 공원에 나가서 탠덤바이크를 태워줘야 했고, 극장에서는 반드시 캐러멜 향 팝콘과 다이어트 콜라를 나눠 먹어야 했고, 핑크색과 초록색 가발로 바꿔 써가며 스티커 사진을 찍어야 했고, 각기 다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거리를 걷다가 반쯤 남았을 때 바꿔 먹어야 했고, 집 앞 놀이터에 불려나가 캔맥주가 두 개쯤 비는 동안 스프라이트 한 캔을 마셔줘야 했고, 그네까지 밀어줘야 했고…이 모든 게 본인의 주장으로는 신 육아법이라고 한다.”(p351) 등등 라고 하는 흔한 상투성을 깨는 유쾌함이 있다.

“나는 또 생각했다. 이렇게 달리는 거다. 달리고 달리다보면 언젠가 모든 거리의 모든 밤을 가로질러 결국 불이 켜진 집에 가 닿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도둑이 들까봐 불을 켜놓은 빈집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가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불 켜진 집. 그리고 그것은 이 밤의 끝까지라도 달려 도망쳐야 할 것만 같던 내가 마침내 지칠 대로 지친 발을 멈춰도 되는..이 세상의 가장 멋진 풍경.”(p216)

이 대목에선 마음이 짠~해졌다. 열일곱 살의 고민과 방황으로 힘들어하고 방황하며 잠시 떠돌다가도 내가 돌아가 쉴 수 있는 따뜻한 불빛 새어나오는 집, 나를 기다리는 집,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가족, 그 누군가가 항상 기다리고 있는 집…’정말 누군가가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불 켜진 집’…지칠대로 지친 발을 멈춰도 되는 …비빌 언덕. 그것이 있어서 방황도 언젠가 그칠 수도 있고, 또 안심할 수도 있는 것이리라.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불 켜진 집’이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고, 또 그런 시절을 보낸 사람은 또 그 시절의 허공을 무엇으로 채우며 또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문득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남의 생각을 필터 없이 그대로 주입하고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또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소설 속의 소년 소녀들처럼 열일곱 살의 ‘연우’가 되고 태수가 되고 채영이가 되어 보는 것…그것만으로도 경직된 가치관과 상투성, 고정관념의 근육이완제가 되고 우리의 굳어진 사고가 말랑말랑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낯선 우주의 고독한 떠돌이 소년”과 같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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