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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 ㅣ 세계사 시인선 81
박정대 지음 / 세계사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그곳에 가면 네가 있을 것만 같다
- 至難한 길찾기, 후기산업사회에서의
박정대의 <단편들>이라는 시집은 90년대의 인간의 자기소외, 소통의 부재, 단절을 향한, 힘겹지만 설레이는 편지의 모음이다. 그의 편지는 사뭇 다양한 전략을 지닌다. 황지우 式으로 말하면, 詩란, 진실을 알려야 할 상황을 無化시키고 있는 매스컴에 대한 강력한 항체로서 존재하는 것인데(황지우, <사람과 사람 사이의 信號>에서 인용) 90년대, 매스컴의 전략이 교묘해질수록 시의 전략도 더욱 견고하고 다양해졌다.
박정대의 시는 다양한 시적 전략으로, 매스컴으로 대변되는 후기산업사회를 교란한다. 그는 시집 <楚辭>의 뒷표지에 그려진 굴원(屈原)의 모습을 자기자신과 동일시하는 전략으로(<SADANG 가는 길>) 지하철이라는 거대 문명 속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면서, 능청스럽게 '담배나 피우고 있는 필자'를 시속에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시를 포함한 예술 그 자체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처연한 몸부림이라고 해석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박정대의 시선을 따라가는 일은 참 힘겨운 일이다. <아스펜 익스트림> <동사서독> <타락천사> <아비정전> 등의 영화 뿐만 아니라, 기형도, 진이정, 앨런 긴스버그, 볼프 본드라체크, 세사르 바예호 등의 시인과 무라카미 하루키, 이자벨 라캉, 르 끌레지오 등의 외국작가와 빅토르 최, 록그룹 너바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문화형태와 접속한다. 이러한 접속의 시도는 점차 광폭해지는 파시스트적인 속도의 시대에 맞불을 놓는 또 하나의 시적 전략으로 읽힌다. 그의 시도는 도시적이다. 그의 시도는 도시적이서 무지하게 빠른 시대의 속도 속에서 무지하게 살아가는 생활인들에게 자극적인 접속을 시도한다. 점차로 삶의 진실에 둔감해지는 우리 시대의 생활인들에게.
박정대의 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 중의 또 하나는 패러디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쓴 것이 몸에는 좋다네'(<아이다호>)에서 기형도의 시를 재생산해내는 것이 그렇고, 동사서독의 양조위(<거울 속에 빠진 양조위>)를, 타락천사의 이가흔(<이가흔; 내 책상 위의 타락천사>)을 시 속에 고스란히 끌어들인 것도 메타언어적인 현대시의 해체경향을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이러한 패러디는 복제시대, 그러니까 후기산업사회의 재생산방식에 대응하는 문학적 양식이다. 이것은 과거 원전들의 고유성과 관습적 규범들을 고의적으로 파괴하는 문학적 전략이며 문제적 복제형식이다.
패러디는 전통적 예술가 개념을 뿌리째 전복시키면서 현대시의 근본적 변화를 야기시켰다. 패러디가 과거의 반복, 복사이면서 과거와 항상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반권위주의적이다(<김준오, 시와 패러디>에서 인용). 기존의 시적문법을 거부하는 이러한 일련의 시도는 작가는 단지 새로운 것을 생산해낸다는 전통적인 예술가의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작가는 새로운 것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예술적 텍스트들(ready-made)을 수집하고, 재생산해내는 작업을 한다. 이러한 탈권위적인 작가의 개념은 우리시에서 황지우에게서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시인은 시집의 1부에 해당하는 '단편들'에서 이러한 해체주의적 경향의 90년대적인 양태를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박정대의 시가 위에서 지적한 재기발랄한, 다분히 키취적인 문학적 토양에만 발 디디고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詩의 튼실한 토양은 '옛날처럼 늙어갔다'(<短篇들>의 백석이나, '꿀벌처럼 닝닝거리며 내리는 눈발'(<이가흔, 내 책상 위의 타락천사>)의 정지용처럼 한국 서정시의 든든한 황토흙이다. 이 시집의 2부에 해당되는 '두 달 정선'에서 시인의 이러한 면모가 드러나는데, 그의 문학적 토양의 뿌리는 '슬픈 유곽의 사랑을 지나서 이 시대의 청춘들을' 노래하는(<라라를 위하여>) 이성복에게까지 가 닿아 있다. 이러한 튼실한 서정적 토양이 그의 시들을 한층 더 풍요롭게 한다. 그것이 설령 詩的인 방황의 한 모습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