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편애
김용선 지음 / 고두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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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의 자신감 (김용선 님의 ‘그늘의 편애’를 읽고)
그는 문학소녀였다.
글은 살피는 데서 나오는 것이기에, 문학을 꿈꿨던 그에게 세상은 허투루 지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가 보는 바깥 세계, 아니 그의 안쪽 세계에서도, 대상에 언어의 옷을 입히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을 것이다. 40년 안팎 이어온 그런 노력이 찬란한 언어의 유희를 만들어내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그의 눈길, 마음길을 거치면 유려한 문장으로 다시 태어난다.
“잎이 흔들리니 나무가 출렁이고, 나무가 출렁이니 숲이 물결친다. 숲의 파도가 토해내는 싱그러운 풋내가 녹색 그늘로 일렁인다.” (168쪽)
그는, 옆집과의 경계인 철망 울타리를 타고 올라간 나팔꽃을 바라보면서,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여 옥에 갇힌 아내를 그리워하다 죽은 남자의 애틋한 사랑을 떠올리고, 철망 끝을 넘어 위로 올라간 넝쿨들이 서로 엉키는 것까지 속 깊게 눈에 담는데, 이웃집 여자는 ‘지저분해 죽겠다’며 무참히 나팔꽃 넝쿨을 잡아 뜯는다. 뜯긴 나팔꽃 넝쿨이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잎을 말며 그를 바라본다. (215, 216쪽) 버려진 넝쿨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에게는 오빠가 있었는데, 엄마와 함께 외가에 갔다가, 외할머니가 달인 약을 잘못 먹고 생을 달리했다. 그 충격으로 엄마는 몹시 앓았다. 몸이 허약해진 엄마는 병원에 자주 가 집에 없는 날이 많았는데, 그는 집앞에서 엄마를 무척이나 그리며 기다렸다.
‘그늘의 편애’는 드러내지 않고 뭇 생명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이끼를 소재로 한 글인데, 그에게 엄마는 이끼와 같은 존재다. 양지바른 곳은 아버지에게 양보하고, 엄마는 그늘로 물러난다.
“축축한 뒤치다꺼리는 어머니 손이 그늘 덮듯 다녀가면, 그늘 걷듯 거두어졌다.” (99쪽)
어느 오월, 그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사가 ‘제대로 걸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큰 사고였다. 그때부터 오월의 신록은 예전의 신록이 아니었다. 얼마 되지 않던 재산도 무너졌다.
“눈앞에 내려진 암흑의 휘장은 나의, 아니 우리 가족의 일상을 송두리째 정지시켰다. 하얀 꽃이 흐드러진 오월은 긴 수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124쪽)
그러나 그는 ‘살을 찢어 새살을 밀어 올리는 13번의 고통을 견디며’(125쪽), 막막하지만 한 줄기 빛을 찾는 간절한 재활의 노력 끝에 다시 두 발로 걷게 되었다. 문학소녀 때부터 세상사를 차별을 두지 않고 바라보며 터득하였던, 생명의 힘에 대한 믿음이, 다시 걷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남편은 도공이고, 아들도 아버지를 이어 도공이다(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 그 때문에 그의 글에는 그릇, 찻잔, 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릇을 만드는 과정, 차를 우리고 마시는 과정이 그의 섬세한 필치로 눈에 보이듯 그려진다.
“조선시대 국보 백자 청화 병은 긴 목선부터 타고 흐른 유려한 곡선미가 동그랗게 배부른 몸체와 어울려 균형 잡힌 몸체다. 목을 쭉 뽑아 올리다 뚝 자른 파격미가 돋보인다.” (27쪽)
“아들이 만든 백자병으로 찻물을 따르고, 남편이 만든 화병에 다화를 즐길 수 있는 특권은 빈자가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호사다.” (26쪽)
그는 정선, 김홍도 등이 그린 옛 그림도 실감나게 풀어내고, 산과 들에서 제멋대로 자라는 나무와 풀, 해안 등대 등 그가 부딪히는 모든 것을 애정을 담아 섬세하게 풀어내면서 대상과 하나가 된다. 어찌보면, 그것은 구도의 과정일 것이다.
‘그늘의 편애’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단을 소개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나무는 자리를 탓하지 않는다. 어느 곳이든지 주어진 자리에서 명당을 넘보지 않는다. 게으르지 않으면 제 가지 식솔들을 건사할 수 있다는 적응의 자신감이다.”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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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이야기 - 다여적화(多餘的話)
구추백 지음, 조현국 옮김 / 썰물과밀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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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빚 (조현국이 번역한 부질없는 이야기를 읽고)


구추백(瞿秋白, 1899~1935)은 중국 공산당 초기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어를 공부하게 된 것을 계기로, 21살 때 러시아로 가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고, 23살에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이후 초기 중국 공산당의 조직과 이론의 기초를 닦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28살에는 공산당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32살에 공산당 정치국 중앙위원직에서 해임된 후, 노신(魯迅, 1881~1936)을 만나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하였다. 36살인 19352월 국민당에 체포된 후 4개월도 되지 않은 618일 사형집행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부질없는 이야기는 구추백이 감옥에 있으면서 처형을 받아들이고(국민당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음)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돌아보며 쓴 글이다. 중국 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를 감당하였던 혁명가의 마지막 글 치고는 나약하게 보이는 글이다. 그러나 엄청 솔직하다. 이렇게 솔직한 글을 본 적이 있는가 싶다. 책 뒷표지에 있는 서평에서, 전리군 북경대교수는 구추백은 햄릿 기질을 가지고 있으나 돈키호테 배역을 맡았다고 말한다.


구추백은 정치적 오해로 인해 정치(혁명)에 가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와 맞지 않는(아니 맞을 수 없는) 역할임을 모르고 뛰어들었다는 표현으로 읽힌다. 그는 이런 오해의 바탕으로 그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는 신사(紳士)의식을 들고 있다. 그는 몰락한 사대부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머니는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였다. 그런 가난에도 그는 (월급을 못 주더라도) 여종을 거느렸고, 지금껏 직접 빨래를 하거나 밥을 짓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신사의식 때문에 그는 프롤레타리아 의식이 자신의 내면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공산당에 가입한 후 십수년간 정치활동을 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의식과 신사 의식으로 이원화된 이중적 인격 때문에 항상 내부적으로 갈등하면서도 외부로는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 그를 바깥사람들은 훌륭한 혁명가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는 그런 평가를 두려워하며 말한다.


나는 지금 감옥에서 열사인 체하면서 비분강개하며 죽을 수도 있지만, 감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역사는 속일 수도 없고 속여서도 안 된다. 나 한 사람을 속이면서 죽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혁명 동지들이 배신자를 열사로 오인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나는 열사인 체하며 죽기를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이 책의 백미다. 이렇게 솔직하고 진실 되게 죽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책은 진실 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나 또한 내 안의 이중성을 아프게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구추백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면서 그의 정치활동을 깎아내렸지만, 그는 현실 정치세계에서 비겁하게 물러난 적은 없다. 내적인 갈등을 감수하면서 그가 해야 할 일을 다하고자 하였다. 그가 말하는 신사의식 같은 것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는 제대로 잠도 못자고 끙끙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자 하였다. 그것이 그에게 신경쇠약을 가져오고 질병도 악화시켰지만, 마지막에는 모든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으며 그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솔직한 모습도, 그에 앞서 진실 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일 게다.


이 책을 번역한 조현국은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다.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구추백에 집착하며 여러 논문을 써왔다. 그는 왜 그렇게 구추백에 집착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조현국이 지금 두꺼비신문의 편집장을 하고 있는 것에서 찾고자 한다. 그 또한 지식인으로서, 내부적으로 구추백과 비슷한 이중적 갈등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현국은 오래 전부터 두꺼비 생명공동체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이런 갈등을 해소해 왔고, 그런 노력이 산남동에서 전국적으로 유래없는 도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냈다. 8년 전 그를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의 노력을 존경한다.

조현국은 내게 그의 논문 구추백 문학사상 형성에 있어서 보살행의 영향을 주었고, 내가 2011검사 그만뒀습니다라는 책을 냈을 때는 분에 넘치는 독후감까지 써 주었다.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 그의 번역서에 대해 독후감을 썼으니, 그에 대한 글빚은 어느 정도 갚은 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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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이야기 - 다여적화(多餘的話)
구추백 지음, 조현국 옮김 / 썰물과밀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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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빚 (조현국이 번역한 부질없는 이야기를 읽고)


구추백(瞿秋白, 1899~1935)은 중국 공산당 초기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러시아어를 공부하게 된 것을 계기로, 21살 때 러시아로 가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고, 23살에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이후 초기 중국 공산당의 조직과 이론의 기초를 닦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28살에는 공산당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32살에 공산당 정치국 중앙위원직에서 해임된 후, 노신(魯迅, 1881~1936)을 만나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하였다. 36살인 19352월 국민당에 체포된 후 4개월도 되지 않은 618일 사형집행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부질없는 이야기는 구추백이 감옥에 있으면서 처형을 받아들이고(국민당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음)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돌아보며 쓴 글이다. 중국 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를 감당하였던 혁명가의 마지막 글 치고는 나약하게 보이는 글이다. 그러나 엄청 솔직하다. 이렇게 솔직한 글을 본 적이 있는가 싶다. 책 뒷표지에 있는 서평에서, 전리군 북경대교수는 구추백은 햄릿 기질을 가지고 있으나 돈키호테 배역을 맡았다고 말한다.


구추백은 정치적 오해로 인해 정치(혁명)에 가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와 맞지 않는(아니 맞을 수 없는) 역할임을 모르고 뛰어들었다는 표현으로 읽힌다. 그는 이런 오해의 바탕으로 그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는 신사(紳士)의식을 들고 있다. 그는 몰락한 사대부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머니는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였다. 그런 가난에도 그는 (월급을 못 주더라도) 여종을 거느렸고, 지금껏 직접 빨래를 하거나 밥을 짓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이런 신사의식 때문에 그는 프롤레타리아 의식이 자신의 내면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공산당에 가입한 후 십수년간 정치활동을 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의식과 신사 의식으로 이원화된 이중적 인격 때문에 항상 내부적으로 갈등하면서도 외부로는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 그를 바깥사람들은 훌륭한 혁명가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는 그런 평가를 두려워하며 말한다.


나는 지금 감옥에서 열사인 체하면서 비분강개하며 죽을 수도 있지만, 감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역사는 속일 수도 없고 속여서도 안 된다. 나 한 사람을 속이면서 죽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혁명 동지들이 배신자를 열사로 오인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나는 열사인 체하며 죽기를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이 책의 백미다. 이렇게 솔직하고 진실 되게 죽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책은 진실 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나 또한 내 안의 이중성을 아프게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구추백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면서 그의 정치활동을 깎아내렸지만, 그는 현실 정치세계에서 비겁하게 물러난 적은 없다. 내적인 갈등을 감수하면서 그가 해야 할 일을 다하고자 하였다. 그가 말하는 신사의식 같은 것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는 제대로 잠도 못자고 끙끙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자 하였다. 그것이 그에게 신경쇠약을 가져오고 질병도 악화시켰지만, 마지막에는 모든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으며 그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솔직한 모습도, 그에 앞서 진실 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일 게다.


이 책을 번역한 조현국은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다.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구추백에 집착하며 여러 논문을 써왔다. 그는 왜 그렇게 구추백에 집착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조현국이 지금 두꺼비신문의 편집장을 하고 있는 것에서 찾고자 한다. 그 또한 지식인으로서, 내부적으로 구추백과 비슷한 이중적 갈등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현국은 오래 전부터 두꺼비 생명공동체활동을 하면서 나름대로 이런 갈등을 해소해 왔고, 그런 노력이 산남동에서 전국적으로 유래없는 도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냈다. 8년 전 그를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의 노력을 존경한다.

조현국은 내게 그의 논문 구추백 문학사상 형성에 있어서 보살행의 영향을 주었고, 내가 2011검사 그만뒀습니다라는 책을 냈을 때는 분에 넘치는 독후감까지 써 주었다.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 그의 번역서에 대해 독후감을 썼으니, 그에 대한 글빚은 어느 정도 갚은 셈이 될까.

(2018. 7. 16. 발행, 썰물과 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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