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집이 있던 마을 - 신정판
권정생 지음, 홍성담 그림 / 분도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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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이 있던 마을에.....




과거형 시제의 제목에서 현재에는 과거와 다른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그것도 한 개인이 아니라 마을 전체에 생긴 일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민중운동의 걸개그림에서나 보았음직한 느낌의 표지 그림을 통해 민중의 이야기, 그것도 가난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임을 어렵잖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림을 그린 저자 홍성담은 광주 민주화 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했으며,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 해방 운동사’를 슬라이드로 제작하여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등 각종 사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 예술인이다.

이야기는 경상도 산골 국민학교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함께 놀다 토라지고 다투고 그러다가 다시 어울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없이 정겨운 이 곳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동막골이 연상되는 순박하고 평화로운 탑마을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6.25전쟁으로 인해 유종과 유준이네, 금동이네, 종갑이네는 함께 고단한 피난길을 나선다.  전쟁을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은 난생 처음 가는 피난길이 마치 소풍이라도 되는 양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친구들과 재잘재잘 떠들어 대며 신나게 피난 행렬을 따라 나선다.  그러나 머지않아 고달프고 배고픈 피난길이 이어지면서 아이들은 점차 전쟁의 참상을 온 몸으로 실감해 나가기 시작한다.  밀려오는 수많은 탱크와 비행기가 온 나라를 잿더미로 만들고,  쓰러진 시체와 지뢰밭 속에 살기 위해 짐승처럼 아귀다툼하는 사람들..... 살기 위해서 총을 쏘고 대포를 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바로 전쟁임을 깨닫게 된다.  또, 그 총탄을 피해 살기 위해 달아나면서 남의 것을 빼앗아 가지는 것이 바로 전쟁이라는 것도 생생히 체득해 나간다.    

전쟁의 피해는 초가삼간 집집마다 갖가지 상처를 남겼다.

피난길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가까스로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만 돌아온 종갑이네. 혼자 남은 할배가 불쌍한 종갑이는 할아버지께 과자를 갖다 드릴려고 미군 트럭을 쫓아 다니다가 트럭에 깔려서 죽고 만다.  

“ 네놈들이 네놈들이 우리 종갑이를 죽였구나. 할마씨는 쏘련놈의 탱크에 쫒겨가다가 죽었고, 애비는 왜놈들이 끌고 갔고,,” 피에 얼룩진 종갑이의 시체를 보듬고 절규하던 할아버지는 허허벌판뿐인 세상을 혼자 걸어 종갑이를 땅에 묻은 후 대추나무 가지에 목을 매었다.

그런가 하면 피난 길에 약혼자를 만나 강변에서 혼례식을 올린 금아는 혼례 닷새 만에 새신랑이 모병으로 끌려 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 삼대독자 여덟살 성봉이는 지뢰를 밟아 갈기 갈기 찢겨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피난에서 돌아오니 평화로운 고향마을은 간데 없고 폭격의 잔해 속에서 또다른 처형이 시작되었다. 피난을 못가고 남아 있던 사람들이 반역죄로 처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한쪽 다리를 저는 짝발이 아저씨, 집배원이었던 박씨 아저씨등 모두가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몇 트럭이나 되는 사람들은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묶여서 총살을 당했다.  총살당한 사람 속엔 화순이네 아버지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화순이네 큰아버지는 공산당들에게 맞아 죽었다. 형제가 하나는 인민군에게 죽고, 하나는 국군에게 총살당한 것이다.  그들은 소련군이 좋다고 끌어 들이지 않았다. 미군이 좋다고 끌어 들이지도 않았다. 다만 기나긴 세월 고달프게 이 땅 위에 살아온 한국의 백성들이다.

어느 쪽이고 이긴 쪽이 없는 전쟁. 양쪽 다 손해만 본 전쟁은 휴전으로 끝이 났으나 남은 사람들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과 가혹한 운명은 끝나지 않았다. 복식이 아버지는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가버렸고 집이 이북인 고재식 아저씨는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남한에 남았다.   

공산주의가 싫어서 남한에 남은 거냐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고재식 아저씨는 답한다.

“ 자본주의건 공산주의건 사람은 제 나름대로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그것을 생활화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해... 주의보다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는 거지.. 무슨 무슨 주의 안에 사람을 가두지 않고 사람을 그 주의 위로 올려놓는 거지.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보다 사람이 첫째라는 거야...  ”  

권정생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에게 간절하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어린 독자들을 위한 선생님의 다음 메세지는  복식이의 편지와 유서이다.

“자기 목숨이 귀중하면 남도 귀중할 텐데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무기를 만드는 공장까지 세워 놓고 마구 폭탄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현기증이 난다. 유준아 나는 사람 죽이는 짓은 못할 거야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절대 못 죽일 것이다 ...... ”

“우리는 해방되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를 우리 손으로 벗겨야 한다. 네 눈앞을 가려 버린 덮개를 떼어 버려라. 그래서 눈을 떠라 해방은 누가 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네 손으로, 내 몸으로 해방을 해야 한다. 사람은 해방하지 않고 자유하지 않고는 아무런 가치 없는 썩은 고기와 같다. 아름답고 정다운 우리들의 고향집, 영원히 영원히 지켜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해방되어라 사슬을 끊고 자유를 찾아라 덩실덩실 춤추며 살 수 있는 우리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해방을 ....   ”

 

“ 보이지 않은 올가미를 벗기고 덩실덩실 춤추며 살 수 있는 우리 마을을 만들라 했지”

친구를 잃고 홀로 남은 유준이 친구의 마지막 말을 마음에 새기듯, 이 책을 읽은 어린 독자들의 마음에도 작은 울림이 생겨나리라. 평화를 해치는 전쟁과 기근, 분쟁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기 위해서,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얻을 것이다. 이 책을 내 아이에게 기꺼이 권하게 하는 것은 이렇듯 빛나는 작가 정신에 대한 감동이다.

 

 이 작품이 가지는 또 다른 매력은, 눈으로 보는 듯 귀로 듣는 듯 생생하고 참혹한 전쟁 이야기 속에서도 슬며시 웃음 짓게 하는 동심과 유머이다.  지독한 슬픔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따뜻함과 삶을 바라보는 여유라는 것을 역설 하듯이 『 초가집이 있던 마을 』 은 독자를 울리기도 또 웃기기도 한다. 

한편, 구수한 사투리를 통해 산과 들, 그리고 민중의 삶이 더 가깝게 살아나는 것 또한 이작품이 가지는 재미와 가치이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귓가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 순아 우리 꽃 따가주 손톱 디릴까? ”

“ 내사 송아지보다 삐아리가 더 불쌍타 뭐.”

“ 할매요, 삐아리 다 크그덩 나도 꼭 한 마리 주세이?”

복식아, 금동아, 종갑아, 유종아, 문식아, 화순아, 학분아....

가만히 아이들의 슬프고도 슬픈 이름을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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