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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 ㅣ 사계절 1318 문고 123
김민경 지음 / 사계절 / 2020년 4월
평점 :
지구라는 행성에서
2020년 4월 우리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불과 3개월전에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디스토피아가 지배하는 사회
그러고 보면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도 일어나기 전에는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그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몇이나 있었을까.
지구 아니 우주 안에 모든 일들은 그런 우연과 필연의 순간에서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고
우리는 그런 현실을 담담히 받아내고 묵묵히 적응하면 살아가는
우주 상에 먼지같은 존재임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6년전 우리 사회는 바다에서 발생한 한 사고로 인해 지독한 집단 우울증을 겪었다.
200년전 1819년 허먼멜빌은 태어났고
170여년전 시대의 고전 <모비딕>을 출판하였다.
<지구행성에서 너와 내가> 이 소설은
모비딕 그리고 세월호사건 두개의 큰 모티브을 얼개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고1 새봄이와 지석이에게
언뜻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삶과 죽음에 대한 화두를 툭 던진다.
청소년들의 순수한 연애 감정선을 두개의 큰 모티브를 통해 따라가보면서
우리에게 설렘이라는 또 다른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의 풀롯은 교과서적이라고 할 정도로 명확해서 수이 읽혀서 좋다.
새봄이의 감정 이야기와 지석이의 모비딕 독서기(?)가 번갈아가며 장을 이루다
둘이 함께하는 마지막(?) 6일간의 순수한 여정이 마지막 부분을 구성한다.
소설의 한부분은 새봄이 일기형식의 이야기.
엄마의 불의의 사고 죽음 이후 4년만에 학교를 다니게 된 새봄이가
"삶이 즉움으로 갑자기 급선회할 때뿐이라는 "문구를 통해 접하게 된 <모비딕>을
또 다른 이야기의 주체인 지석이에게 선물하면서 또 한 부분을 구성한다.
들어본 적은 있어도 완독한 사람은 거의 없는(?) 고전의 특성상
<모비딕>은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만만한 소설이 아니다.(일단 700p가 넘을 정도로 두껍다)
하지만 지석의 새봄에 대한 간절함으로 읽게되는 모비딕은
우리에게 조금은 편하게 고전소설의 난해함을 없애준다.
고1 지석이 시각으로 보는 모비딕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고전에 대한 매력을 또 다른 시각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구행성에서 너와 내가>에서 얻게되는 예상치 못한 소득이었다.
<모비딕>이 단순한 고래잡이 이야기로 알고 있던 이들에게
에이헤브, 이슈메일, 퀴퀘그 그리고 피쿼드호와
거대한 하얀 향유고래 모비딕을 향한 기나긴 집착과 여정.
(솔직히 고백하면 모비딕이 고래 이름인지도 첨 알았다 ㅠㅠ)
인간과 고래의 감정선을 넘나들며 표현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감정묘사는 우리 같은 범인에게는, (책속의 새봄이가 말하듯이)
아름답고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때로는 황홀하고 아련하게
우리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다.
<모비딕>이 주는 가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의미 부여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너무나 뛰어난 가치가 있는 소설.
이 책을 읽고나서 불쑥 모비딕을 읽어봐야겠다는
도전의식이 생겨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힘든 지금 우리에게는 위안이 필요하다.
책읽기가 주는 즐거움은 바로 이런 위안이 아닐까.
새봄이가 느낀 "살아있음" 에 대한 감정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모비딕>은 죽음에 대한 책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 살아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구행성에서 너와 내가>는 그런 감정들을 콕콕 찔러 자극하는
문학과 철학에 대한 호기심, 인간에 대한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다소 낯선 개념이지만 이 책 초반부에 담임선생님을 통해 나오는
"상전이"라는 단어는 어찌보면 김민경작가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키워드이자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상전이 (相轉移, phase transition)
: 원래는 물리학 용어로 기체가 온도에 따라 액체나 고체로 변하면서
새로운 특성이 생겨나는 것처럼 온도나 압력 같은 외부 조건에 의해 "상(相)"이 바뀌는 것 말한다.
이걸 역사에 적용해보면 전쟁을 상전이라고 볼 수 있어.
(중략)
나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의 상전이라고 생각해. 상전이 생기기 전과 후는 달라.
그만큼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어.
한쪽에서는 그만하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상전이가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어.
세월호는 아마 계속해서 우리 사회,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파도칠거야.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과 애써 무시하는 사람이 있을 뿐.
그러면 우린 어떻게 하면 될까?
상전이의 변화를 인식하고 방향을 잘 이끌어 가면 돼, 그러려면 기억해야해 .
<지구행성에서 너와 내가 P 95) 中
조금 뜬금없지만 이 책은 소설이면서도
인간본질의 철학입문서라는 느낌을 갖게된다.
요즘 책을 읽다보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우주의 느낌을 받는다.
크게는 과학과 철학 세계, 현실과 이상이 다양한 이분법론적인 사고에서
결국은 우주라는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는 일원론적인 세계.
상전이는 빅히스토리에서 말하는 일종의 임계국면이다.
138억년전의 빅뱅을 통해 별과 행성이 생겨나고 아주 우연적이고 필연적인 사건(임계국면)으로
우주가 생겨나고 태양계가 생겨나고 지구가 생겨나고 생명체가 생겨나고 인류가 탄생하게 되었다.
새봄이에게 상전이는 엄마의 죽음
우리에게 상전이는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 상전이는
어쩌면 지금일 수도 있고 지나갔었을 수도 있고 다시 올수도 있는 그 순간을 위해
우리는 지금 현실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코로나 19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절실히 느낄 수 있었을까.
<지구행성에서 너와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 머릿속에는 두루두루 생각할 꺼리들이 떠오른다.
이 책 가치는 깊게 사고하고, 사유하는 힘과 책읽기의 깊이를 더해주는데 있다.
이 책을 읽고난 후 읽고 싶은 좋은 책들이 줄줄이 생각난다.
가깝게는 <모비딕>과 이 책에서 인용되고 영향을 받은 책들
(친절하게 책 말미에 책을 쓰면서 인용하고 영감과 도움을 받은 책들 목록이 있다)
책읽기의 장점은 사고와 관심의 확장이다.
다른 책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의 가지를 치게 해준 것이
이 책의 또 따른 매력이다.
와와's 서평 <지구행성에서 너와 내가> (김민경, 사계절출판사) 강추
청소년소설으로 추천드릴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인들에게 지적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책으로 강추드린다.
ps 1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 이름의 유래를 여기 이책에서 알게 될지 상상도 못했다.
포경선 피쿼드호 일등항해사 이름이 스타벅이고
이 책에 깊은 감명을 가진 스타벅스 초기 창업주가 스타벅에 s를 붙여 스타벅스를 창업하였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라고 한다.
책 속 지석이가 검색한 내용들을 나도 모르게 검색해보니 재밌는 사실들이 많다.
책 읽기의 장점은 사과와 관심의 확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모비딕>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 글들도 많다.
모비딕의 주인공(?) 이슈메일과 식인종 퀴퀘그의 우정을 표현한
"마음의 밀월"이라는 단어를 게이소설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흑인도 , 백인도 아닌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고민하던 청소년 시절,
<모비딕>을 읽으며 극복했으며 자신의 인생 3대 애독서라고 한다.
진짜로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 ㅎㅎ
ps 2
이 책을 읽고나서 세월호를 소재로 한 영화 "생일" 을 보았다.
예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왠지 보고나면
극도로 쳐질 감정이 두려워서 keep만 해두었던 영화를 드디어 보고야 말았다.
변화를 인식하고 방향을 잘 잡기 위해서 우린 기억해야한다는 책속의 문구를 보고.
남겨진 그들의 슬픔을 감히 공감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우리들이 세월호 흔적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보았다.
그래도 우리 삶은 계속되야 한다는 명제
우리 삶을 더 단단해지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상이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