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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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소설
 일단 도입부부터, 필자는 난관에 봉착했다. 이런,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서사 중간 중간의 역사적 사실들과 철학자의 이름, 위인들, 그들의 사상, 그런 것들은 상식 없는 필자를 당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당히 인터넷의 힘을 빌리면 겉핥기식으로 맥락은 알아들을 수 있으니. 그러니까 꼭 그래서 '프랑스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일곱살 여자아이인 주인공의 맹랑함과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전쟁이라는 소재에 대한 통찰이 프랑스의 느낌을 주었다. 배경은 분명히 중국이라 했건만. 어디선가 프랑스의 향기가 솔솔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외국인 지구라는 또 다른 이질적인 배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예술적이다. 그리고 필자는 '예술'에 대한 정의가 각자 마음속에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사랑의 파괴'인가?
무지렁이인 필자는 저자의 의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감히 짐작해보건대, 제목은 꽤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먼저, 주인공과 주인공이 맺고 있는 관계와 주변 환경에 대해서 알아보자.

 

일곱 살. 소설의 주인공은 일곱 살 여자애다. 필자는 그때 아마도 콧물이나 흘리며 칠렐레 팔렐레 놀러 다니기 바빴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은 대단히 맹랑하고 허구적이다. 외국 애들은 저 나이 때에 저런 지식을 가지고 있나? 하고 의심케 되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 소설은 1인칭이며, 마치 저자의 자전적 소설인 것처럼 꾸며져 있다. 그래서일까? 시선의 높이는 분명히 일곱 살인데, 지식은 성인의 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적어도 필자보다는 아는 것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서술 방식에서부터 어떠한 기시감을 느낀다면, 아마 '야, 내가 어렸을 땐 말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어른의 잘난 척을 듣고 있는 것 같다는 것. 살면서 숱하게 만나게 되는 '왕년에 내가~'를 여기서도 만나게 된다는 것에서, 약간의 친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주인공은 일곱 살이다. 그리고 중국의 상리툰 외인 지구에서 살고 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와 오빠. ?'말-다그닥, 다그닥!-'을 가지고 있는 제법 대단한 여자애다. 처음에 주인공보다 나이 많은 소년, 소녀들은 주인공을 '전쟁(놀이)'에 끼워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훌륭한 어필을 통해 정찰병으로서 입대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훌륭한 임무 수행을 통해서 아군을 승리로 이끈다. 여기서 잠시 설명을 덧붙이자면, 외인 지구의 아이들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가며 전쟁을 한다. 그 대상은 어른의 '적'과 같다. '독일'은 어른의 세계에서도,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세계의 바깥, 전쟁에서 빗겨나간 이곳에서도 결국 아이들은 어른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첫 번째 '사랑의 파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잔악함과 이기심의 상징인 전쟁을 답습했다. 가장 사랑이 넘치고 가장 사랑 받아야 할 존재들이 내보이는 가학적인 모습과 잔악함으로부터 파괴를 느끼는 것이다.

 

두번째 파괴는 주인공이 제 사랑-엘레나-을 대하는 태도다. 주인공은 엘레나를 곤경에 빠트림으로써 자신이 가지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엘레나를 엘레나가 마음을 열었던 남자아이로부터 떨어트려 놓았다. 주인공은 엘레나를 향한 한 남자아이의 사랑을 파괴한 셈이다. 초록 창에서 제공한 사전에 실린 첫 번째 정의에 따르면,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하였다. 단순한 시선으로 보았을 때, 주인공의 태도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라고 보기엔 힘들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러한 주인공의 태도와 주인공과 엘레나 사이의 밀고 당기기는 작품 후반에 이르러서는 또 다른 파괴를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은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제 사랑이 산산이 부수어질 것을 알면서도, 결국엔 엘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지극히 주인공에게만 의미 있는 방식으로. 그럼으로써 사랑은 파괴되고, 주인공은 사랑이 파괴된 곳을 떠난다. 그리고 자신을 열애하는 소녀들에게 엘레나가 자신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의 지독한 고통을 안겨준다. 매우 즐겁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엘레나의 소식을 듣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되는데, 이 부분의 서술이 인상적이다.

고마운 엘레나, 그 애 덕택에 나는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모두 배우지 않았던가?
고맙고 고마운 엘레나, 그 신화를 줄곧 지키고 있다니. -169p

파괴된 사랑은 복구되지 않았고, 주인공은 줄곧 사랑을 파괴적인 방식으로만 대해왔던 것이 아닐까. 혹은, 필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란 것이 부질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이란 사실은, 끝나는 순간 완벽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맨 끝의 후기에 따르면 이 소설은 실화이며, 엘레나는 저자에게 이 소설에서 수정할 것이 있다는 말을 전해왔다고 한다. 물론 그 요청을 저자는 가볍게 무시해주었다. 이로써 네 번째 파괴, 어린 시절의 우상, 어린 시절의 사랑은 이제 '사실'에 대해서 화를 내는 우스운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어쨌거나 사랑이 파괴되는 그 과정을 알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역사 공부를 하고 읽는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성자: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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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부클래식 Boo Classics 48
토마스 만 지음, 윤순식 옮김 / 부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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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론.

안녕하세요. 환상의식스맨입니다. 저는 남성 동성애나 양성애를 다루는 고전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번 리뷰에서도 본의아니게 남성 동성애나 양성애를 다룬 작품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도 품격있는 문체로, 남성의 동성애나 양성애가 드러나는 품격있는 고전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대상이 되는 작품들은 토마스 만의 소설이며, 작품들을 쉽게 이해하시도록 하기위해 작가의 삶까지 같이 서술해보겠습니다.

* 배경지식 - 양성애적 기질을 안고 살아간 토마스 만.

제가 리뷰 대상으로 삼은 책은 토마스 만의 중단편선인 베네치아(다른 판본에 따라선 베니스라고도 함)에서의 죽음이고, 번역된 원고를 출판한곳은 열린책들입니다. 독일문학이며, 옮긴이는 홍성광 교수님이십니다. 우선 표지 그림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단정히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는 벌거벗은 상을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 이 벌거벗은 상은 남성이 벌거벗은 상으로써, 고개를 돌린 신사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이 표지를 기억하시면서 토마스 만의 삶을 찬찬히 음미해보셨으면 합니다.

토마스 만의 가족들 가운데선 불행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의 두 여동생과 그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이었던 클라우스 만이 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토마스 만과 남매관계였던 모니카 만은 남편을 잃고 정신병에 시달렸으며, 부인은 폐병을 앓았습니다(이때 부인을 위해 다보스 요양원에 문병을 간 그는 그곳에서 느낀 인상들을 토대로 한 장편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이 바로 마의 산입니다. 거기서도 그의 양성애적 경향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토마스 만 자신은 평생동안 동성애적 경향을 느꼈는데, 연년생인 누나 에리카 만에게도 남매가 느낄 수 있는 것 이상의 애착을 느꼈다는것으로 보아 그가 양성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양성애적 경향은 중편 토니오 크뢰거에서도 드러납니다.

토마스 만의 첫사랑은 남자였습니다. 1906년, 젊은 나이에 죽은 학교 친구 아르민 마르텐스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토마스 만은 평생동안 그를 사랑했던 사실, 그때 느낀 감정을 잊거나 부인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아르민은 나중에 토마스 만의 중편 토니오 크뢰거에서 등장하는 한스 한젠이란 인물의 모델이 됩니다. 그렇지만 토마스 만은 결국 한 수학 교수의 딸이었던 카타리나 프링스하임에게 청혼하고, 그들 사이에서 3남 3녀가 태어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석연찮은점이 드러나는데, 토마스 만이 에리카 만에게 남매 이상의 애착을 느낀것은 확실하지만, 카타리나에겐 성애를 느꼈는지, 혹시 자신의 동성애적 경향을 다스리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카타리나와 결혼했는지, 이 점에 대해선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 토니오와 한스, 아센바흐와 타치오.

우선 그의 중단편선에서 먼저 다룰 작품은 중편 토니오 크뢰거입니다. 토니오는 학창 시절, 동성인 한스 한젠을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사랑하지만 그는 토니오의 이름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에게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16세가 되자 잉에라는 여인을 한스보다는 덜, 어쨌든 사랑하게되지만 그녀 역시 그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 중편에서 토니오는 예술 정신을, 한스와 잉에는 독일 시민 사회를 상징하는데, 둘은 서로 화해할 수 없으며 토니오는 그들에게 사랑과 멸시의 감정을 동시에, 함께 느낍니다.

여행을 떠났다가 13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토니오는 햄릿의 고향인 덴마크로 가서 오랜만에 한스와 잉에를 보게 되고, 그들과 자신 사이의 간극을 다시금 실감하는데, 소설의 결말에서 토니오는 자신의 현재 여성 연인인 리자베타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에서 그는 세상과 화해할 수 없는 고독한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밝히며, 자신의 동성애적 감정을 누르고 가정을 꾸리려는 다짐이 드러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토마스 만이 정말로 자신의 아내를 사랑해서 결혼했는지 의문을 품는 독자도 있으며, 자신의 동성애적 경향을 애써 억누르고 이성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동성애자가 아니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만으로 작가의 삶과 심리를 추측 또는 추론하는것은 조심스럽고 위험한 시도이며, 남매에게 남매 이상의 애착을 느꼈으며, 그의 작품 곳곳에서 진실한 이성애와 동성애가 모두 묘사되는것으로 보아, 저는 토마스 만을 양성애자로 보는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편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영화로도 유명한데(역시 동성애적 경향이 있었던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이 배경음악으로 쓰였지요.), 주인공인 거장 아센바흐는 그리스 조각품을 닮은 미소년 타치오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소년때문에 그 당시 치명적이었던 전염병인 콜레레가 떠돎에도 도시를 떠나지 못하며, 폴란드인 부모가 그를 데려간다면 살아갈 의지를 잃으리라 생각합니다. 소년을 쫓아다니며 베네치아 곳곳을 여행하던 그는 죽는 순간 모래톱 위를 걸어가는 미소년의 환상을 봅니다.

* 그 외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동성애와 이성애.

토마스 만의 동성애와 이성애가 드러나는 작품은 한 둘이 아닙니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이란 작품에서는 소년 하노가 학교 친구인 카이(역시 남성입니다.)에게 사랑을 품고, 파우스트 박사에서는 남성인 아드리안이 역시 남성인 조카 네포무크를 사랑합니다. 앞서 잠시 소개한 장편 소설 마의 산에서는 카스토르프가 초등학교 시절 히페라는 소년을 사랑하며, 나중에 사랑하는 여인 쇼샤는 중성적인 여인입니다.

* 덧붙임

독일의 거장급 소설가라 할 수 있는 토마스 만은 평생동안 양성애자로 살아왔으며, 그러한 그의 성향은 작품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생전에 남성과 여성을 모두 사랑했으며, 토니오 크뢰거에서는 동성애적 기질을 억압하려는 시도가 나타나지만 그 외의 작품들에서 계속 동성애에 대한 애착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토마스 만의 일부 작품들을 퀴어 문학으로 간주했으며, 이들을 읽고 홍성광 교수님의 해설을 참고하며 이 리뷰를 썼습니다.

 

 

작성자: 환상의식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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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신춘문예 당선자 새소설 - 둥글게, 둥글게
강성오 외 지음 / 문학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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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을 기억한다. 강화길이 다룬 <방>만큼이나 재앙과도 같았던 방. 내 생에 첫 러브하우스.
필자가 애인과 함께 살고자 처음 구한 집은,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 있었다. 반지하라도 거실 하나에 방이 두 개나 딸린 18평대 연립빌라였으니,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5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듣자마자 (가난한데 마음은 급한 레즈비언 커플은) 집을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덜컥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삿날 재앙은 닥쳤다. 아니, 재앙은 발견되었다. 화장실 한쪽에 떡하니 위치한 ‘똥통’이라는 이름의 재앙 말이다.

정화조. 우리가 발견한 똥통의 정식 명칭은 정화조였다. 변기에 앉아 왼쪽을 바라보면 앉은 자리에서 불과 20cm 떨어진 벽면에 네모난 철문이 있었다. 조임새가 낡아 늘 반 뼘 정도 틈이 벌어져있던 그 철문의 안쪽에, 해당 빌라 전세대의 분뇨, 즉 똥오줌을 저장해놓는 정화조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윗집 사람들의 은밀한 흔적은 ‘정화’시킬지언정 당장 가까이 있는 우리에게는 진하게 발효된 암모니아 가스만을 제공했다. 냄새는 거실은 물론 안방, 작은방까지 스멀스멀 뱀처럼 기어들어와 온 집안을 하나의 거대한 변소로 둔갑시켰다. “하자가 있으니 집값이 싼 것”이라는 주인의 말에 계약을 물릴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곧 단념하고 짐을 풀었다. 주인의 말마따나 서울땅에서 100만원으로 집다운 집을 구하기란 바라는 자가 되려 염치없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당장 방 한 칸이 간절한 상황이었으므로.

그렇게 약 1년 간 똥통 옆에서 씻고, 똥냄새 속에서 밥을 지어 먹고, 사랑한다 말하고, 달라붙어 잠을 잤다. 냄새 때문에 잠을 설치는 날에는 진통제를 삼켜 코의 감각을 무디게 했다. 물론 종종 울며불며 싸우기도 했다. 암모니아 가스는 우리에게 탈모와 피부병, 천식을 안겨주었다. 나는 애인이 잠든 밤이면 몰래 울음을 삼키며 이렇게 되새김질하곤 했다. 탈출하고 싶어. 아무래도 탈출하고 싶어. 그래도, 잠든 애인의 순한 얼굴을 바라보면 한 번 더 읊조리게 됐다. 탈출하고 싶어, 너와 함께.

강화길의 <방>을 읽은 것도 그 똥내 묻은 골방 안이었다. 어느새 겨울이었다. 창을 닫아놓아도 윗니와 아랫니가 절로 딱딱 부딪혔고, 자꾸 손이 얼어 손가락 관절이 굳는 탓에 장갑을 끼고 책장을 넘겼다.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방>은 가상의 재난을 전제로 한다. 한국의 지방 도시 중 한 곳이 (핵폭발 등 어떠한 재난에 의해) 파괴되었고 정부는 해당 도시를 청소 및 재건할 복구인력을 대대적으로 모집한다. <방>의 주인공인 레즈비언 커플은 이 일에 지원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일당이 세기 때문이다. 소위 노가다에 가까운 험한 일이더라도 바짝 돈을 모아 서울에 방 한 칸 마련할 수 있다면, 방다운 방 한 칸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으로 수연과 재인, 두 사람은 재난도시로 향한다. ‘전염과 부패, 부식과 오염 같은 단어들’로 설명되는 도시, 빛이 사라지고 열기가 40도를 웃도는 도시에서 두 사람은 건물의 잔해를 옮기고 부수는 일을 한다. 임시거처로 마련된 옥탑방에서는 석회가 뿌옇게 섞인 수돗물을 받아 마신다. 쉬지 않고 일하지만 도시는 점점 더 부서져가고, 유난히 갈증을 호소하며 수돗물을 들이켜던 수연의 몸도 나날이 부서져간다. 부서져가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도시의 방을 떠날 수 없다. 이 방을 견뎌내야만 서울의 방다운 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골방에 들어앉아 <방>의 그녀들을 지켜보며, 나는 어떠한 기시감을 느꼈다. 소설 속 재난은 분명 가상의 일로 구상된 것인데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햇빛 한 줌 들지 않아 화분 하나 키울 수 없는 방, 사람의 몸을 부서지게 하는 방, 방 자체로 재난인 방. 강화길이 그리는 <방>은 가상의 방인 동시에 내가 있는 골방, 바로 나 자신의 재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방다운 방을 꿈꾸며 <교차로>나 <벼룩시장>을 뒤지다가 한숨 쉬어본 적 있는 우리 모두의 재난에 관한 고백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강화길의 <방>에 매료된 계기는 일상적 재난에 대한 이입과 공감뿐만이 아니다. 내내 잿빛 도시를 묘사하는 이 소설이, 결국에는 무지하게 낭만적이더라. 재인과 수인, 언제나 함께 하려는 두 사람의 경향과 선택은 비극을 낳는다. 이 비극을 확인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다만 밝힐 수 있는 것은, 때때로 어떠한 비극은 우리가 꿈꾸는 낭만을 부른다는 것이다. 방다운 방을 얻는 것보다 더욱 간절한, 당신에 관한 낭만 말이다. 봉쇄령 내려진 도시이든, 똥내 나는 골방이든, 다만 내 '옆에 앉아 있기로' 결정한 당신은 몹시 낭만적이다. 그 낭만이 희망이다.

 

 

작성자: 빅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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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 문지 푸른 문학
박성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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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

박성경, 문학과지성사, 2015.6.5

 

박성경의 <나쁜 엄마>는 예상과는 조금 다른 청소년문학이었습니다. 열여덟 살 주인공 ‘지환과 싱글맘 ‘연옥’의 이야기인데, 상냥하고 희생적인 어머니상과는 조금 다른 ‘나쁜 엄마’를 주요 키워드로 잡고 있습니다. (물론, 작품 내내 아들과 서로 화도 내고 화해도 하고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좋은 엄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지환에게는 세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1) 아빠 2) 쿠키 굽는 엄마 3) 예쁜 여친. 지환 말대로 지극히 ‘평범’한 이 소원들은 이루어질까요?

  전지적 퀴어 시점으로 신간을 탐색하는 필자로서는, 곳곳에 편재한 퀴어한 부분에서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이야기나, 똑같이 하얀 티셔츠를 입고 왔다고 게이 커플로 놀림 받는 선생님들이나, 지환이 좋아하는 유리가 사실 레즈비언이라는 소문 같은 것들. 그러나 <나쁜 엄마>를 (앞서 얘기한) “예상과는 조금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놀랍게도 지환과 연옥 모자가 새로 구성한 대안가족 공동체였습니다. 늘 ‘외롭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연옥은 어느 날 “시 쓰는 공인중개사”란 제목의 블로그를 시작하고 ‘전갈’을 만납니다. 두 사람은 시에 대해 (지환이 보기에는 유치하기만 한 ‘작업성’) 댓글을 주고받다가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는데요, 놀랍게도 전갈은 “머리에 핀을 꽂아도 남자처럼 보일 것 같”은 여자였고 딸 하나를 둔 싱글맘이었던 거죠. 그 후 지환, 연옥, 쿠키를 맛있게 굽는 전갈, 전갈의 귀여운 딸 ‘솔이’는 함께 살게 됩니다. 레즈비언 공동체라고 부르긴 어렵겠지만 예상외의 인연으로 생겨난 이 가족을 힘껏 응원하지 않을 수 없지요. 더불어 전갈은 역시 레즈비언이 아닐까라는 필자의 내멋대로 상상에, 여러분도 힌트를 주워담아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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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 진화론 문학동네 청소년 30
전삼혜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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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소년소녀 진화론> 수록)

전삼혜, 문학동네, 2015.6.8

 

더 이상 지구가 푸르지 않게 된 미래, 한 소녀가 달에 있습니다. 이 열일곱 살 소녀의 이름은 ‘유리아.’ 리아는 달 표면에 지구의 언어를 새기는 구식 메시지 기록계 ‘문라이터’를 보수하는 일을 합니다. 혜성과 충돌한 지구는 회색 잿빛으로 변했고, 이제 리아는 유일한 지구인으로 홀로 달에 서 있습니다. 우주기지의 산소와 식량은 점점 떨어져갑니다.

  리아는 이곳에서, 지구에 있었던 ‘너’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주항공특별교육센터 입학 때부터 칠 년을 같이 살았던 룸메이트 ‘세은’은 학교 최고의 수재이자 천재 엘리트. 그러나 리아에게 세은은 그저 그리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직 사랑이라는 말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평생 곁에 있고 싶다고, 울 때 같이 울어 주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소녀들의 사랑은 비껴가고, 마음은 선명하게 굳어가는데, 홀로 선 시간만 움직입니다. 그래도 리아에겐 언어가 있습니다. 이 마음은 '지구에서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에도 남지 않을', 소녀들의 마지막 언어입니다.

  신은 엿새 동안 세상을 만들고 하루를 쉬었습니다. 달의 시간으로 엿새 동안 달에 머물렀던 리아는 이제 문라이터의 남은 배터리로 마지막 동화 한 편을 쓰려 합니다. 다름아닌 ‘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너는 나의 세계였으니, 나도 너에게 세계를 줄 거야.” 그러고보면 소설의 제목 ‘창세기’는 종교적 근본에 대한 발칙한 패러디라기보다는, 부연 존재감과 아득한 사랑을 붙잡고 살아가는 소녀(들)의 명멸 신화에 가까워 보입니다. 리아와 세은, 문라이트와 달 표면에 새겨질 이야기. 숨이 가쁠 것 같은 달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단편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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