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비밀로 무지개 반사 3
줄리 앤 피터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이매진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을 비밀로 감춰두고 있나요? 나를 진짜 나로 만들어주는 그 사랑을, ‘나중에’ ‘언젠가는’ 밝히겠지만 지금은 안 된다며 몰래 숨겨두었나요?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소설을 몇 편이고 써온 줄리 앤 피터스가, 이번엔 레즈비언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 커밍아웃 지침서를 써냈습니다. (라고 말하면 신작인 것 같아서 죄송해요. 원작보다 무려 12년 이후에 번역 출간됐네요.)

 

우리의 주인공은 전부 다 가진듯한 고3 학생회장 ‘홀란드’입니다. 예쁘고 똑똑하고 수영도 공부도 잘하고 잘생긴 남자친구도 있지만 홀란드는 늘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좋아하거나 열광하는 것 없이 다른 사람들(특히 엄마)의 기대에 맞춰 무채색으로 살아왔죠. 그러다가 우연히 거울 속에서 ‘시시’라는 전학생과 눈이 마주치면서 모든 것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바뀝니다. 시시는 ‘2QT2BSTR8(too cute to be straight, 이성애자이기엔 너무 귀여워)’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무지개 역삼각형 스티커를 가방에 붙이고 다니는 오픈리(openly)-레즈비언입니다. 언뜻 매우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은 초급 드로잉 수업에서 만나게 됩니다. 드로잉은 아무런 가치판단 없이, 그저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 그 방법을 배워가면서 홀란드는 자신의 시선이 가장 많이 가는 곳에 시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조금씩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홀란드는 성소수자 동아리를 만들려는 시시의 계획을 도와주게 되죠.

 

사실 시선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심지어 이 학교에는 커밍아웃한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시시가 내 눈을 바라봤다.

“글세, 동성애자가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 애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홀란드. 눈을 떠.” (91쪽)

 

그렇게 처음에 무지하기만 했던 홀란드의 시선은 시시를 만나면서 조금씩 바뀌어갑니다.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어있는 동성애혐오적인 괴롭힘이 보이고, 영 괴짜 같기만 했던 이복 여동생의 진국 같은 면이 보이고, 스스로의 차별적인 언행도 보입니다. 이제 홀란드는 바깥세상에서 원하는 대로만 바라보지 않고, 자기 안에서부터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성소수자에게 작동하는 가장 일상적인 혐오의 방식이 ‘시선’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대놓고 얘기하진 않더라도 마치 나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듯한 느낌. 나를 심판하고 추방하려는 것 같은 느낌. “최악은 내가 나 자신을 방어할 수도 없다는” 그 은근한 시선의 폭력 말이죠.(231쪽)

 

온갖 시선들을 깨닫고 발굴하고 바꿔가는 와중에 홀란드는 시시와 열렬한 사랑에 빠집니다. 이제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 사랑을 누구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전 학교에서의 트라우마 때문에 시시는 홀란드에게 ‘벽장 연애’를 제안합니다. 졸업이 몇 달 남지 않았으니 비밀로 하자는 것이죠. 슬프게도 이 계획은 뜻대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결국 고통스러운 일련의 일들(이건 비밀로)을 겪은 후에 홀란드는 벽장에 있는 것이 너무나 괴롭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자신만의 방식대로 커밍아웃을 진행합니다. 주위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거나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순서대로,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방식이죠.

 

“이런 일, 뭘 비밀로 하는 일 자체가 내가 뭔가 잘못을 했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져.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만 같아. 나도, 너도, 우리가 서로 갖는 감정도 부끄럽지 않아. 온 세상이 다 알았으면 좋겠어. (중략) 나는 나 자신이고 싶어.”(277쪽)

 

그러나 이 소설은 무조건 커밍아웃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커밍아웃하면 너도 세상도 모두 다 행복하다고 거짓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아주 솔직히 하나하나 보여줄 뿐입니다. 커밍아웃은 아주 어렵고도 지난한 과정이며, 그렇기에 ‘용기’일 수밖에 없다고. 그럼에도 해야 할 이유가 있긴 하다고. 실제로 홀란드의 커밍아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소중한 인연을 만들기도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 중에 많은 수를 잃거나 살아가는 환경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이처럼 커밍아웃으로 인해 얻고 잃는 것을 최대한 솔직히 보여주면서 실제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더없이 효과적인 지침서가 되어줍니다.

 

무책임해서 미안하지만,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우선 ‘너를 비밀로’ 하겠다는 분들은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고민하거나 주인공의 커밍아웃을 보며 대리만족(?)할 수도 있고, 커밍아웃을 선택하는 분들에게는 온 마음을 다해 응원과 지지를 보낼 뿐입니다. 줄리 앤 피터스의 말처럼 커밍아웃은 분명 “길을 이끄는 불빛”이니까요.

 

 

작성자: 보배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무지개책갈피>
www.rainbowbookmark.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운영 작 <포옹>은 소설집 <바늘>에 가장 마지막으로 실린 작품이다.

 일종의 고해로 시작한다. 나는 이 작품에 어떤 퀴어적 시선을 적용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으며, 완독 후 좋은 작품이었다는 느낌 이상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대놓고 말하자면 이 처연한 이야기에 주인공들이 여성이다, 라는 것 외에 퀴어로써 감히 어떤 모호한 해석을 들이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너무 컸다는 얘기다. 나는 깔끔하게 포기했고, 작품을 부러진 자아의 이야기로 보게 되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음과 돌아가지 못함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포옹>의 시작을 여는 인경은 ‘맹신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의 귀가가 늦어지거나 셔츠에 립스틱 자국이 발견된다고 해서 오해를 하거나 그릇된 상상으로 피로에 지친 남편을 닦달하는 아내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너그럽고 사려 깊은 아내가 될 것이다. (217p)

 

 인경은 자신이 원하는, 원해야만 하는, 원하므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미래를 추측하고 확언한다. 마치 스스로를 완벽하게 도망치도록 도와주려는 듯이. 인경은 말한다. “그래야만 했다”라고.

 반면 인경의 뒤를 이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나’는 ‘외면하는 사람’이다.

 

 자, 아무 걱정 할 것 없어, 이젠 너와 나 둘뿐이다. 나 청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너를 청도로 돌려보내지 않으마. 두 마리 소가 내 얼굴과 가슴을 미친 듯이 핥아댔다. 그리고 어둠의 소가 내 몸을 뚫고 들어왔다. 나는 선선히 다리를 벌렸다. 눈을 뜨자 내 몸에 올라탔던 검은 소는 작고 작아져 쥐새끼처럼 날렵하게 달아났다. 이불에서 독한 향수냄새가 났다. 그리고 다음날 머리맡에서는 십만원권 다섯 장이 든 흰 봉투가 발견되었다. (232p)

 

 ‘나’는 악착같이 도망치고 싶다. 깨부수고 나가고 싶다. 하지만 체념하고 싶다. 그래서 말한다. “그래야만 했다”라고.

 결국 인경도 ‘나’도 현실을 자신에게 맞춰 비틀어버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와 인경은 특이할 만큼 정서적인 유대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굳이 어떤 공감도 하지 않고 동정에 갇히지도 않는다. 둘이 함께인 것이 지나치게 낯설기까지 하다.

 그런 그들이 최후의 포옹을 한 까닭을, 나는 “그래야만 했다”에서 찾았다. 깊어져만 가는, 나 자신과 현실 사이의 어마어마한 괴리를 거울에 비춰보듯 서로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괴리와 괴리가 겹쳐지는 순간 그들은 하나가 된다. 어떤 문장의 중의성처럼, 그들은 같은 말을 두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오다가 조각난 뜻을 만나 이윽고 하나로 합쳐진다.

 그렇게 그들은 인경이 바랐듯 진실로 죽는다. 그리고 ‘나’가 원했듯 말끔하게 기억을 지운 채 바닷속 푸른 섬-해방에 도착할 것이다.

 

 그들은 결단코 서로를 이해하고 품으려 들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감정은 차가울 만큼 절제된 채, 마치 거세의 흔적처럼 문득문득 드러날 뿐이었다.

 그것까지 일종의 사랑이다. 애잔하고 척박하다고 해도.

 나는 그들이 다른 자신을 만난 후에야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고 자신에 대한 최후의 연민이며, 동시에 상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되어...... 서로를 포옹하는, 합일하는 절정을 맞는다.

 인경의 굽은 등과 ‘나’의 손길, 그리고 다시 그 손을 거부하지 않는 인경.

 그것은 지친 영혼의 아픈 파편들이 알맞게 만났음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포옹이 있다.

 나는 깊은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나를 안아 달랬다. 나를 온전히 안을 수 있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나 자신이므로.

 

 멀리서 그녀가 내게 손을 내민다. 내가 그녀의 손을 잡자 시간이 멈춘 듯 사방이 고요해진다. 파도소리도 엔진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집어등 불빛만이 환하게 빛난다. 발끝이 살짝 들린다. 나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녀와 나는 손을 마주 쥐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불빛을 돌며 춤을 춘다. (247p)

 

 

작성자: 김칠월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무지개책갈피>
www.rainbowbookmark.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출 -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장을 넘기고 있던 일요일 오후 다섯 시, 열어둔 창문 너머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신음소리와 헷갈릴 만큼 가녀린 흐느낌은 점점 굵어지다가 갈라진 비명으로 바뀌었고 나는 그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 마침 주인공이 자기 손을 망치로 내려친 부분을 읽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무슨 일인지 서럽게 울음을 토해내는 동안 책 속의 인물은 하얗게 드러난 뼈라느니 뭉개진 살갗에 대해 건조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습게도 살짝 왼손 손가락을 구부려봤다. 잘 있나 싶어서.

  김영하의 소설 <손>은 화자 ‘나’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내용으로 한, 이십 페이지 남짓의 단편소설이다. 편지글답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흘러나오는데 전부 손에 관한 이야기다. 라 보엠 <그대의 찬 손>부터 시작해서 반지, 로댕의 조각, 손에 관한 역사적인 일화 등 손이라는 표제어를 중심으로 마인드맵처럼 가지가 곳곳으로 뻗는 느낌이다. 방향성 없이 튀는 이야기들은 마지막 순간에야 의미가 한 줄기로 관통하는데 그 중심선을 잇는 키워드가 바로 그 사람의 손, 당신의 손 그리고 나의 손이다.

 

생각해보세요. 제가 그토록 좋아하는 베토벤을 그이의 시선 아래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그런데 그때 그의 손이 제 목덜미에 와 닿는 것이었어요. 음이 흐트러졌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다잡고 연주에 열중하려고 애썼습니다. 제 목덜미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그이는 제 귀에 속삭였습니다. 계속 연주해줘. 멈추지 마.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요. 멈추지 않을게요. 그 사람의 손은 천천히 목덜미를 지나 쇄골을 더듬다가 제 젖무덤으로 내려왔어요.  p.96

 

베토벤을 연주하던 나, 그리고 나를 연주하던 그. 그러나 그 사람의 손은 믿어달라고 했던 눈과는 달리 다른 여자도 연주하고 있었고 이제 ‘나’는 더 이상 눈을 믿지 않는다. 손을 믿는다. 그에 비해 눈을 보라는 말을 하지 않는 당신의 손은 혼란스러운 온도로 ‘나’를 위안해주었다고 말한다. 의장대의 총검술처럼 담배를 뽑아들던 손, 우아하고 색정적으로 ‘나’를 부르던 당신의 손짓을 화자는 기억한다.

  이처럼 사람이나 상황을 묘사할 때도 온통 손에 관한 이야기뿐이라 장면들은 감각적이지만 어쩐지 모호하고 이 손이 그 손이었던가 싶게 정보들이 뭉텅뭉텅 잘려있다. 손 페티시처럼 줄곧 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화자의 손과 관련된 ‘그 사건’에서 드러난다.

  연극이 막을 내리던 날-비로소 당신의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나게 된 그날 밤- 화자는 ‘나’를 연주했던,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던 그 여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난생 처음 자신의 손을 골똘히 들여다보다가 왼손 약지를 조이는 반지를 발견하고 빼보려 하지만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망치를 들어 자신의 손을 부숴버린다.

  그렇다. 줄곧 그 사람(혹은 그이), 당신이라고 지칭했던 인물들이 여자임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나 당신이라는 지칭에서 가볍게 남성이라고 넘겨짚었던 독자의 추론이 깨져버린다. 손 말고는 외모에 대한 묘사가 없었다는 사실이 반전으로 다가온다. 성적 지향을 판별하는 방법 중 하나로 손톱을 꼽을 만큼 레즈비언에게 있어서 손이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고 몸을 쓸어내리고. 어쩌면 눈보다 손이 더 깊은 곳까지 연인에 대해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가 자신의 손을 망치로 짓뭉갠 후 모든 관계의 끝을 선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손을 내리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은 화자가 조각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종말이 아닌 완성의 의미를 갖게 된다.

 

저는 두 손가락이 뭉그러진 제 왼손을 조각할 거예요. 그 속에는 제가 그동안 탐해왔던 모든 손들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을 거라고 믿어요.  p.107

 

자신이 겪었던 관계를 부정하거나 파괴하는 것처럼 보였던 행위는 사실 일련의 모든 상황, 감정을 수렴하는 폭발적인 자기표현의 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확대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오페라 라 보엠에서 <그대의 찬 손>은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이며 망치로 부숴버린 손은 관계의 끝, 그리고 다시 완벽한 손을 조각하려는 행동은 재탄생과 완성을 의미하는 듯 느껴진다. 짧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다각도로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p.s. 퀴어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 일종의 반전이기 때문에 퀴어소설로 소개하는 것이 어쩐지 미안하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 라고 얘기해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작성자: 모글토리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무지개책갈피>
www.rainbowbookmark.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자는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종교에 퀴어가 얽혀 있다면 더 그렇다. 일단 좀 질척하고, 또 좀 신파 냄새가 나고, 또… 어쨌거나 내 취향은 아닐 거야. 그런 선입견이 있다. 종교와 퀴어라니. 퀴어 퍼레이드를 막아섰던 일부 종교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필자는 종교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건 편견이고, 혐오이며, 사실은 매우 피곤한 요소다. 혐오하는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스트레스는 때때로 위벽을 긁는다. 때문에 윤이형의 <루카>를, 그 첫 장을 들여다보며, 필자의 안에서는 두 개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에는 좀 편견 없이 봐. 좋은 소설이랬어.

 야, 이걸 보면 넌 분명히 심경이 복잡해지고 피곤해질 거야.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두 목소리 모두 따를 수 있게 되었다. <루카>에는 종교인인 게이가 나오고, 그 둘의 사랑 얘기가 나오고, 헤어짐이 나오고, 헤어진 이후 '나'를 찾아온 전 애인의 아버지가 나오지만, 놀랍게도 이 소설은 필자의 마음에 딱 들어 맞았다. 언젠가 잃어버리고는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작은 퍼즐 조각 하나를 찾아 끼워 맞춘 듯한 기분이었다. 어떠한 해답을 얻은 것은 아니었으나 생각의 지평은 넓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다.

 

 <루카>의 표현은 덤덤하면서도 섬세하다. 딸기가 루카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다음에 혼자 방에 누워서 음, 하고 소리를 내는 그 장면. 필자는 그 장면을 어렵지 않게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명확하게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소설은 흔치 않다. 대개는 유령처럼 머릿속을 부유하기 마련인데, 루카는 선명했다. 그러면서도 쾅쾅 들이박는 그런 종류의 소설은 아니었다. 너무나 형체가 공고하여 그 세계를 유영하다 보면 이리저리 부딪혀 멍들게 되는, 그런 소설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헤어진 것을 사실은 알고 있지만, 함께 교회에 간 연인과도 같은 사이라고나 할까? 헤어진 연인에게만 내보일 수 있는 특유의 다정함이라든가? 당연하게도, 구질구질하단 뜻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너무나도 잘 아는, 그래서 헤어져야 할 이유까지도 알게 된 사이에 가깝다. 어쩌면 그렇게 딱딱 잘 맞추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줄 수가 있는지. 그러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불편한 지점을 딱딱 잘 맞추어 긁어줄 수가 있는지.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채 살아간다. 어떤 일들은 그저 어쩔 수 없고 어떤 일들은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으며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 그저, 그럴 수 없다. (225p)

 

 '그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필자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딸기가 끝내 자신의 믿음, 삶이라는 이름의 그 완고한 종교를 지켜낸 것도, 루카가 자신을 배척하는 교회를 다시 찾게 된 것도, 루카의 아버지가 믿음을 잃었음에도 계속 설교를 해야 했던 것도. 모두 그저,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은 무언가를 놓고 무언가를 잡는다거나, 무언가를 포기하고 무언가를 얻는다는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사람은 때로 그저 그런 선택을 하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줄 필요성이 있다. 그 사람의 시선과 그 사람의 생각에서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필자에게 퀴어가 당연하듯,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당연하고, 누군가에게는 두 가지 모두 당연할 수 있다는 걸 조금 늦게 깨달았다. 필자가 머리로 이해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혐오하고 배척하던 그 사실을, <루카>는 헤어진 연인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다정함으로 이야기한다.

 

 매주 일요일에 교회를 가는 애인을 보며, '종교는 기도와 믿음이 아니라 네 주머니의 푼돈으로 유지되는 거야.'라고 생각했었던 조금 미안한 과거가 있음을 고백한다. 누군가의 세계는 이해하거나 좋아할 수 없지만, 충분히 유의미한 범위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때때로 상충하는 세계가 서로 부딪혀 깨져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때 <루카>를 떠올린다면 조금은 '그저, 그럴 수 없는 것' 혹은 '그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전혀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때가 있으니.

 

 어쨌거나 <루카>는 질척하지도 않고 신파도 아니지만, 읽고 난 후에 조금 마음이 먹먹해질 수는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작성자: 숙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무지개책갈피>
www.rainbowbookmark.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네트집 - 윌리엄 셰익스피어 연작시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19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롤로그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20번을 소개합니다.

 

"저기, 있잖아..." 옛날에 한 양성애자 국문학도 선배님께서 말을 건네왔습니다.

무슨 일이냐는 제 말에, 선배는 남성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을 더 많이 보고싶다면서 제게 도움을 요청하셨지요.

그때 머리가 어떻게 파바박 돌아갔는지, 저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가운데서 남성 동성애를 다룬 소네트가 있음을 바로 떠올리고는 문제의 20번 소네트를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그 국문학도 선배님께서 동성애와 여성스러움을 엮었던 옛날 발상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소네트였다고 말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배경지식 - 소네트(A sonnet)란?

 

소네트는 '작은 노래'란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 단어 소네토(Sonnetto)에서 유래한 영단어입니다. 지금의 이탈리아 지방에서 처음 생겨난 소네트는 서정시의 일종인데, 처음 생겨날때만해도 소규모의 서정시를 아우르던 소네트는 점차 남자와 여자의 낭만적인 사랑(특히 궁정 연애), 여성을 향한 남성의 찬사, 여자에게 배반당하고 멸시당하는 남자의 좌절과 분노등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문학 이론을 꺼내자면, 소네트는 정형시의 일종으로 엄격한 형식과 각운(각 행 끝에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놓아 운율등을 자아내는 기법)을 지켜가며 쓰는 시였습니다. 페트라르칸, 즉 이탈리아식 소네트의 경우는 총 14줄로써 4-4-3-3의 연으로 나눠지며, 각 행 끝마다 발음이 비슷하거나 같은 단어에 알파벳을 매기자면, abba abba cde cde의 각운을 띄었습니다. 하지만 이 페트라르칸 소네트가 영국에 전해졌을때, 영어는 이탈리아어와 많은 차이가 있던 언어였던만큼 형식이 바뀌게 되는데, 종래의 14줄 형식은 지켜졌지만 행이 4-4-4-2행으로 나뉘어졌으며 각운은 abab cdcd efef gg를 띄게 됩니다. 이를 셰익스피어리언 소네트라 부르며, 나머지 2행은 지금까지 노래한것을 정리하거나 예상치못한 반전카드를 꺼내고, 읽는 이들에게 기분좋은 통수를 치는데 할애됩니다.

 

배경지식 2 -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집

 

셰익스피어는 극작가이자 배우로서 열심히 활동하지만, 중간에 자신이 소속된 극장이 문을 닫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그의 154편짜리 소네트집은 이때 쓰였으며, 이 소네트집에는 사실 두 가지 떡밥이 있습니다.

 

1. 이 소네트들의 유일한 아버지인 Mr. W.H는 누구인가?(어떤 평민이거나 Mr. W.S의 오자로 추정됨)

2. 시에 나오는 궁정 시인, 후원자이자 동성 애인인 젊은 귀족, 그리고 무엇보다 검은 여인은 누구인가?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셰익스피어 자신이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로 결론지어지는 상태입니다.)

 

떡밥 문제는 여기서 접고, 셰익스피어가 소네트를 쓰던 당시에는 자본주의가 막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시대의 변화가 일던 때였습니다. 소네트는 이제 일종의 '실험도구'가 되었으며, 셰익스피어는 사랑하는 여인을 여신처럼 비유하던 종래의 시풍을 비웃기도하고(소네트 130번) 심지어는 20번에서와같이 동성애까지 다루는, 그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인 소네트들을 써냈습니다. 당연히 이 소네트집은 셰익스피어 생전에는 큰 호응을 얻지도 못했고 인정을 받지도 못했지만, 셰익스피어 사후 재평가되면서 현대에 이르러 '뛰어난 감각의 성찬'이라는 평가까지 얻습니다. 이제 문제의 셰익스피어 소네트 20번을 소개합니다.

 

본문 1 - 원문과 번역

 

 [이미지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셰익스피어 소네트 20번의 원문입니다. 소리내어 읽으면 나름의 재미가 있겠지요.

이제 박우수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번역본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끊어 읽으실때는 4-4-4-2로 끊어 읽으시면 됩니다.

 

시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던 아주 불평등한 시절에, 남성이자 한 궁정 시인이 있었습니다. 이 시인을 후원하는 젊은 남성 귀족이 있었는데, 시인과 귀족은 서로 애인사이입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정체를 알 길 없는 검은 여인을 흠모하는 양성애 기질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소네트 20번은 이 궁정 시인이 자신의 후원자이자 애인인 젊은 귀족에게 바치는 소네트입니다.

 

본문 2 - 20번 소네트 분석 - 여기서 으뜸가는 연인 그대는, 물론 자신을 후원하는 젊은 남성 귀족이요, 자신의 동성 애인입니다. 자연이 그 손으로 치장한 여인의 얼굴을 지녔다는것은, 그가 화장으로 여인처럼 꾸몄다는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여성스런 용모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대 빚어내던 자연이 그대에게 매료되어 한 가지 더했다는 부분은, 자연이 자신의 창조물에 반하여, 특혜를 베풀어 남성의 성기를 덧붙여줬다는 뜻입니다. 정리하자면, 마치 여성스런 용모와 마음으로, 그러나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와 여자를 모두 놀라게 하고 반하게 하는 자신의 후원자이자 애인에게 찬사를 바치면서 시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만약 자연이 자신의 후원자에게 반하여 특혜를 베풀어서 남성의 성기를 덧붙이지 않았더라면 여인으로 태어나 자신과 정식으로 맺어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나머지 두 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차피 후원자는 시인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여인들과도 관계를 가질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관계는 어디까지나 사랑 없는 관계이며, 사랑이 부재하는 즐거움만이 존재할뿐입니다. 지금 이 후원자의 마음이자 사랑을 차지하고있는 사람은 결국 이 시를 쓰는 궁정 시인 자신입니다.

 

결론과 정리

 

이번 리뷰에서 저는 남성 동성애를 다룬 셰익스피어 소네트 20번이자 유명 작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다뤘습니다. 소네트는 작은 노래를 뜻하는 이탈리아단어 소네토에서 유래한 영단어이며, 처음에는 소규모 서정시 전반을 아우르다 상류층들의 궁정 연애, 여성을 향한 남성의 찬사, 배반당하고 버려진 남자의 좌절등을 다루는 시를 뜻하게 되었지만, 후에는 '형식이자 장치'의 일종으로서 점차 다양한 내용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이때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형식을 통해 여인을 향한 찬사가 아닌 악담을 퍼붓기도하고(130번), 그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주제인 남성 동성애(이 문제의 20번)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시에서 남자인 궁정 시인은 자신을 후원해주는 젊은 남자 귀족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이 남자 귀족은 아름답고 여성스런 용모와 마음씨로 남자와 여자를 모두 놀라게하며,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애인이 여자로 태어났으면 정식으로 맺어졌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어차피 그의 마음과 사랑은 자신의 것이고 그가 여인들과 관계를 갖는다한들 남는것은 사랑이 부재하는 관계와 즐거움뿐이라는 문구로 자신을 달랩니다.

 

 

작성자: 환상의식스맨
한국퀴어문학종합플랫폼 <무지개책갈피>
www.rainbowbookmark.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