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시에 뜨는 달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26
데보라 엘리스 지음, 김미선 옮김 / 내인생의책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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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멀리서 떠오르는 이야기

 

  동성애에 사형까지 구형되는 이란, 사랑에 빠지는 두 소녀의 이야기.

 

  내게 그랬듯이 당신에게도 충분할 것이다. 데보라 엘리스의 청소년 소설을 읽어볼 이유로서는 말이다.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사랑과 죽음이 샴처럼 붙은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화를 소재로 한 소설들, 억압적인 현대사를 다룬 소설들이 으레 그렇듯 독자들을 유사 죽음까지 몰아붙일 것 같았다. 과연 소설은 “사랑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박해에 맞서 춤추고 기뻐하며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라는 이란 시인 하피즈의 말로 시작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소설만이 아니었다. <아홉 시에 뜨는 달>은 무엇보다, 용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출판사 소개글[1]에서처럼 이 소설은 이란의 현대사, 더 정확하게는 1979년의 이란 혁명에 깊이 기대어 있다. 불친절하여 미안하지만 나는 여기서 역사를 읊어댈 생각이 없다. <아홉 시>에 등장하는 소녀들이 특정 시공간의 이야기로만 소비되는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숨 쉬기 힘들어도 눈만 내놓는 옷을 입어야 하는 소녀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키스에 ‘부자연스럽고 추한 일’이라는 혐의가 붙는 소녀들의 이야기는 슬프도록 낯익다. 우리에게는 이 소녀들의 풍경을 연민어린 거리감으로 관망할 사치가 없다. 억압적인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는 사랑의 이야기는, 아무리 멀리서 떠오르더라도 여전히 눈이 아플 만큼 선명한 빛으로 우리를 관통한다.

 

 

  낮: 정확히 예고된 죽음들

 

  소녀들의 낮에는 부고가 이어진다. 폭탄이 떨어져서 죽고, 혁명군의 뜻에 반역하다 죽고, 영문 모를 정치범으로 몰려서 죽는다. 사람들이 자꾸 죽는다. 그렇게 많이 죽는데도 스펙터클로 소비될 틈이 없다. 이것이 소녀들의 분명한 현실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 이란 여성과 대화를 나누고서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책은 잘 작동하는 전화기가 되어야 [한다]”(프리모 레비)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 책은 받지 않을 수 없는 전화가 되어 계속 울려댄다. 주인공 파린이 체포 감금된 이후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정확하게 잔혹해서, 청소년 소설이란 장르로서는 드물 정도로 힘겹게 느껴진다.

 

  잔혹함이라면 소설의 결말에 대해서도 언급할 수밖에 없겠다. 나의 짧은 독서 경험 중에서도 단연 비극적인 결말 중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가 라는 오만한 투정은 접어두기로 한다. 등장인물들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책은 어떤 누군가가 탁자를 가로질러 돌진해서는 독자를 움켜쥐고 한 대 후려갈기는 것과 같아야 한다”(스티븐 킹)는 격언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에 중점을 둔 서사의 아쉬움에 대해서도 길게 불평하지 않겠다. 작가는 발신의 의무감을 느끼고 쓴 것이 분명하니까. 수신자로서 나는 그저 받아든 부고들을 책임감 있게 곱씹기로 한다. 나에게 그랬듯 이 책이 당신에게도 용서 없는 불편함을 주기를. 더 읽고 싶지 않아질 때까지 밀어붙이고, 그 때조차 지치지 않고 다시 밀어붙이는 이 책과의 통화를 당신이 끝까지 참아내기를.

 

 

  밤: 저기 달빛을 향해, 계속

 

  달이 뜬다. 소녀들에게 달은 아주 특별하다.

 

  “아홉 시가 다 되어 가는데. 우리 약속 하나 더 하자. 매일 밤 아홉 시가 되면 달을 보는 거야. 그렇게 하면, 함께 있지 않아도 영혼은 함께 있는 셈이니까.”

  “아홉 시에 뜨는 달.”

  파린이 동의했다. 그대로 멈춰 서 있었지만 속으로는 온 광장을 돌아 빙글빙글 춤을 추고 싶었다. (104쪽)

 

  죽음의 낮을 더듬듯 위로하는 달빛 아래 소녀들은 사랑을 한다. 비밀같고 꿈같기도 한, 은은하면서도 강한 사랑을 한다. 이 소녀들의 사랑은 용기를 가득 먹었다. 파린은 사디라와 빠진 사랑에 한치의 의심도 부끄러움도 없다. 신기할 정도로 용기 있게 세상에 맞선다. 죽음도 불사하려는 파린의 용기는 나를 멍하게 한다. 나는 그런 사랑을 잘 모른다.

 

  무책임할 정도로 용기 있는 소녀들은 소설 곳곳에 가득하다. 사디라는 파린이 취미로 쓰는 악마 이야기를 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냐고 묻더니 자기를 이야기에 넣어 달라고 부탁한다. 남자들이 세상을 망쳐놨으니 여자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이란에는 정말 똑똑한 여자들이 잔뜩 필요하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파린이 동경했던 학생회장 라비아는 여성 인권 신장을 요구하는 전단지를 뿌렸다가 체포된다. 다시금 멍해진다.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용기도, 나는 본 적이 거의 없다.

 

  “자유를 얻는 능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자유롭게 존재하는 능력이다.”(앙드레 지드) 가장 자유롭지 못한 곳에서 <아홉 시>의 소녀들은 이토록 자유롭게 존재한다. 이들은 언뜻, 나의 유년을 거머쥐었던 소녀 전사들마저 떠올리게 한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 아름다워야 하는 것, 내가 아름답게 만들 것, 바로 너와 함께. 사랑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싸우는 용기. 나는 그들에 매혹되었었다. 같은 매혹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아홉 시>의 소녀들을 경이롭게 바라볼 수 있겠다. 적어도 청소년 소설에서는, 문학에서는 이런 주인공들이 넘쳐나도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 사디라의 말처럼, “두 소녀가 서로 사랑하는 일이 혁명에 위협이 된다면, 혁명이 그 정도 가치밖에 없는 셈”(172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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