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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손톱
아사노 아쓰코 지음, 김난주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이제 곧 열일곱 살을 맞는 루리의 여름이, 평생에 한 번 밖에 없는 열일곱 살의 여름이 눈부심 속에 시작되고 있었다. (p.43)
아사노 아츠코의 장편소설 ‘분홍빛 손톱’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교정에 내려앉은 꽃잎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이야기다. 여름을 시작으로, 가을과 겨울을 지나 새로운 봄을 맞는 두 주인공의 계절들은 그동안의 성장 과정에 따라 점차 변화하고 다른 색깔을 덧입는다.
루리와 슈코 두 사람은 모두 학생들 사이에서 터무니없는 소문에 시달리거나 뚜렷한 개성으로 인해 소외당하고 배제되는 인물들이다. 사람에게서 동물의 이미지를 보거나 까마귀와 대화하고 동식물과 친구인 슈코, 그리고 남자를 몸으로 유혹하고 다닌다는 각종 소문에 시달리는 루리. 주위 아이들은 끊임없이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두 사람을 판단한다. 그러나 루리와 슈코는 다르다. 오직 서로에 대해 진심을 볼 줄 알았던 것, 그것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서로의 독특함이나 남다름이 이상한 것으로 해석되기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매력이자 다른 방식의 소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응. 그래도 휴대 전화 때문에 코가 막히는 건 좀 이상하잖아.”
“이상하지 않아요.”
루리는 이상하지 않다고 다시 한 번 말하고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멋있어요.” (p.73)
약간은 신비롭고 종잡을 수 없는 선배, 슈코를 알게 되면서 루리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일견 두 학생의 풋풋하고 달달한 학창시절 연애이야기로만 읽히기 쉽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루리의 성장담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아 보인다. 작품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산뜻한 분위기와는 또 다르게, ‘분홍빛 손톱’안에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나는 남들과 다르다’라는 고민,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과 가정 문제,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자기방어와 보호막 등에 관한 현실적이고 무거운 주제들이 존재하고 있다.
자신의 성적 취향이 두려웠다.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바람을 피우는 것도, 엄마가 살이 찌기 시작한 것도, 언니가 한숨을 쉬는 것도, 다 아무 상관없었다. 그저 자신이 두려웠다. (p.147)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고 로맨틱한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에는, 약간의 당혹감은 있었으나 감정 자체에 문제를 느끼지는 않았다. ‘이래도 괜찮을까?’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회적으로 답습된 생각일 뿐, 그들은 자신의 감정에 문제를 제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성 지향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기가 과거의 루리에게도 있었고, 슈코는 도모야라는 이전 남자친구를 정말로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과거들이 모여 지금의 슈코와 루리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은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는 감정은 그들을 가끔은 걱정케도 하지만 오히려 더욱 자유롭게 해준다. 이들에게 있어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란 자신을 내보이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고, 이것은 가로막히지 않아도 되는 것에 의해 막혀 있는 것일 뿐이다. 둘의 설레는 마음과 서로를 향한 감정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자유 그 자체였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