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도 써있듯이, 이제 막 이 책장을 넘기려는, 넘긴 그대가 부럽다.

이 겉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것은 허물어지게 마련이니 그 아름다움을 절망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p7

불모의 땅과 어두운 하늘 사이에서 힘들게 일하며 사는 사람은 하늘과 빵이 가볍게 느껴지는 다른 땅을 꿈꾸게 된다.
짐승은 즐기다가 죽고 인간은 경이에 넘치다 죽는다. p8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란자.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p14

펼쳐놓은 책에서 한 개의 문장이 유난히 두드러져보이고 한 개의 어휘가 아직도 방 안에서 울리고 있다. 문득 적절한 말, 정확한 지적을 에워싸고 모순이 풀려 질서를 찾게 되고 무질서가 멈춰버린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짙어가는 어둠이 그대의 목을 조이려 할 때, 한밤중에 잠깨오 나는 과연 무슨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를 가늠해 볼 때,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생각이 미칠 때, 잠이 그대를 돌처럼 굳어지게 할 때, 대낮은 그대를 속여 위로한다. 그러나 밤은 무대 장치조차 없다. p42

인간들은 남이 자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p45

어렸을 적에 짐승들과 가까이 지내며 자란 사람들에게는 커서 또다시 그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기쁨이다. p55

이른바 불행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라지만 사실은 그 존재의 비참한 모습을 눈으로 보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바라는 것이다. p66

나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왔다. p78

비밀스러운 삶. 고독한 삶이 아니라 비밀스러운 삶 말이다. p79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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