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고 온 여름 ㅣ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감추고 덮어가며,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두 사람 모두 한번씩은 아픔을 겪었고, 그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자신을 속일 틈도 없이 툭, 튀어나오는 날것의 감정들도 있었지만요." (69쪽)
"돌아가고 싶은 순간, 그 물음에 왜 중국 냉면이 생겨났던 것일까요. 입안에 감돌던 독특하지만 시원한 식감. 땅콩 소스의 묵직하고도 복잡다단한 맛. 새아버지와 처음 만난 중식당의 생경하면서도 포근한 공기. 자기 몫의 땅콩 소스를 덜어 나의 그릇에 듬뿍 얹어주던 기하 형." (87쪽)
가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여전히 가족을 '혈연 중심'으로 생각한다. 한국은 한민족국가로서의 의식도 강한데, 그 기원에는 결국 '혈연'을 중요시하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가족은 신성시되고,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관계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재혼 가정은, 가족이 될 수 없는 걸까? 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흔들릴 수 있는 것일까?
<두고 온 여름>의 재하와 기하는 부모의 재혼으로 모이게 된 형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형제. 닮은 것이라고는 이름의 한 글자 밖에 없는 두 사람. 그런데 소설을 읽다보면 두 사람이 비슷해보인다. 그건 두 사람이 모두 한 시절을 '버텼기' 때문이 아닐까. 비록 그 방식이 달랐을지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라도.
두고 온 여름에 남아 있는 누군가. 그 사람을 곱씹으며 전하는 편지.
편지는 마지막 장면에만 나오지만, 나는 이 책이 한 편의 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고 온 인연에게, 두고 온 시절에게, 그리고 그 시절에 남겨둔 나의 마음에게 솔직하게 전하는 어떤 문장들.
소설로 하여금 인물들은, 독자는 잃어버렸던 시절에, 외면했던 순간에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것은 그 시절에 있는 '너'이지만 동시에 그 시절에 남은 '나'이기도 하다.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소설을 덮는 순간까지 이들이 형제라고 믿었다. 비록 저자는 이 둘은 앞으로 만난 일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책을 끝냈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형제가,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음을 준 작품. 가족이 꼭 정해진 형태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감추고 덮어가며,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두 사람 모두 한번씩은 아픔을 겪었고, 그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자신을 속일 틈도 없이 툭, 튀어나오는 날것의 감정들도 있었지만요. - P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