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층의 하이쎈스
김멜라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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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김멜라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 기대감을 갖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전 단편들과는 느낌이 다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없는 존재들. 정확히는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겠죠.
없다고 여겨지게 만드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왜 한 존재를 ‘없음’의 상태로 내모는 걸까요? 그런 질문이 생기는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질문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겠죠. 하이쎈스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읽었는데
소설을 덮고 나면 아세로라가 많이 생각납니다.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그래서 스스로를 세상에서 없애고 싶었던 아세로라가 다시금 삶을 회복하는 과정. 그 과정 속에는 하이쎈스만이 아니라 빌리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빌리지에서의 시간이,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아세로라를 살아가게 했고, 그래서 아세로라도 그곳을 지키고 싶어했던 것 아닐까요.
삶은 지속적으로 변형된다는 것. 그것이 하이쎈스와 아세로라, 그리고 빌리지가 전해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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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곁에서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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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경숙 작가의 신작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책을 읽었.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작별의 과정을 담은 소설은 화자가 어떻게 '작별을 견디는지' 그리고 '작별을 통과하는지'를 담고 있다. 그 과정은 지독하리만큼 힘겹다. 서글픔, 그리움, 괴로움, 좌절감. 고통받는 화자의 마음이 너무나 섬세해서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 몰입은 단순히 책의 서술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작별의 순간을 겪여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 편의 소설은 모두 편지 형식으로, 그 편지의 수신인은 없다. 화자들은 그 편지를 통해 '너'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쓰는 시간을 통해 작별을 이해하려고 한다. 물론 그 이해는 성공하지 못한다. 작별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작별에서 어떻게 '인과'를 발견하겠는가.

  그러나 화자가 그 과정을 통해 절망만을 습득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작별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깊숙이 파고듦으로써, 그것을 온전히 감내함으로써 화자는 작별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다음 시간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 화자들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있다. 그것은 서로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연작소설로 구성된 이유를 마지막 소설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그래, 삶은 이어져 있구나. 내가 당신을 살게 하고, 당신이 나를 살게 하는구나, 라고 말이다.

  그 사실이 우리를 살게 만들지 않을까. 소중한 사람을 잃어 삶이 흔들리는 '나'를 당신이 지켜준다. 당신이 나를 돌본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된다. 우리는 작별을 조금 덜 아프게 통과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편지를 읽는 내내 마음이 요동쳤으나, 그 요동침이 괴롭지 않았다. 그로써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느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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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숲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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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선란 작가의 연작소설 『이끼숲』​은 총 세 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말을 통해 소설의 순서가 「이끼숲」 - 「바다눈」 - 「우주늪」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왜 「이끼숲」이 소설집의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었는지도, 왜 소설의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런' 모험을 시도하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 이번 소설집은 '닫힌 세계'를 그린다. 지상이 멸망한 이후, 인류는 지하 도시로 이동한다. 탄생(출생)이 통제되고, 인간은 노동을 하기 위한,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만 존재된다. 다음 세대를 위한 '유지' '존손'의 도구로 말이다.

그렇기에 노동하지 못하는, 태어나지 못하는 인간은 불필요하다.
공동체가 형성될수 없는 세계에서 그럼에도 '연대'하는 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다.

서로를 사랑하는, 서로를 위하는 그 마음이 이들이 모험을 떠나게 만든다.
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던 천선란. 그녀가 구한 것은 무엇일까.

​ 소설을 읽고 '구하고 싶다'라고 느꼈다. 구원을 바라는 만큼 구원하고 싶었다. 어쩌면 천선란이 구한 것은 잊고 있었던, 외면하고 있던 마음이 아닐까. 구원을 향한 욕망을 다시 되찾아준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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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1 얼음 SF 보다 1
곽재식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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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라는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분명 우리 현실에서 시작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기발한 상상력(혹은 냉혹한 상상력)은 지금 우리 사회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미래의 세계 뿐 아니라 지금의 세계도 위태로울 수 있음을 명확히 알려준다.

  그러나 소설은 '결말'을 짓지 않는다. 닫힌 결말을 쓰기 위해 소설을 쓰지 않았으리라. 우리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수록된 소설들은 모두 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지금과 같은 '인간'을 유지한다면, '인간'은 유지될 수 있을까? 인간은 정말 인간을 위해 사는 걸까? 아니, 인간은 '나'를 위해서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소설은 그 '나'만을 위한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가늠케 한다.

  읽는 내내 버거웠지만, 읽는 즐거움은 분명 있었다. SF소설이라고 해서 재미만 있다면 어떡하지, 란 고민을 했는데 전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작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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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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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감추고 덮어가며,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두 사람 모두 한번씩은 아픔을 겪었고, 그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자신을 속일 틈도 없이 툭, 튀어나오는 날것의 감정들도 있었지만요." (69쪽)


  "돌아가고 싶은 순간, 그 물음에 왜 중국 냉면이 생겨났던 것일까요. 입안에 감돌던 독특하지만 시원한 식감. 땅콩 소스의 묵직하고도 복잡다단한 맛. 새아버지와 처음 만난 중식당의 생경하면서도 포근한 공기. 자기 몫의 땅콩 소스를 덜어 나의 그릇에 듬뿍 얹어주던 기하 형." (87쪽)



  가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여전히 가족을 '혈연 중심'으로 생각한다. 한국은 한민족국가로서의 의식도 강한데, 그 기원에는 결국 '혈연'을 중요시하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가족은 신성시되고,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관계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재혼 가정은, 가족이 될 수 없는 걸까? 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흔들릴 수 있는 것일까?

  <두고 온 여름>의 재하와 기하는 부모의 재혼으로 모이게 된 형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형제. 닮은 것이라고는 이름의 한 글자 밖에 없는 두 사람. 그런데 소설을 읽다보면 두 사람이 비슷해보인다. 그건 두 사람이 모두 한 시절을 '버텼기' 때문이 아닐까. 비록 그 방식이 달랐을지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라도.


  두고 온 여름에 남아 있는 누군가. 그 사람을 곱씹으며 전하는 편지.

  편지는 마지막 장면에만 나오지만, 나는 이 책이 한 편의 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고 온 인연에게, 두고 온 시절에게, 그리고 그 시절에 남겨둔 나의 마음에게 솔직하게 전하는 어떤 문장들.

  소설로 하여금 인물들은, 독자는 잃어버렸던 시절에, 외면했던 순간에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것은 그 시절에 있는 '너'이지만 동시에 그 시절에 남은 '나'이기도 하다.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소설을 덮는 순간까지 이들이 형제라고 믿었다. 비록 저자는 이 둘은 앞으로 만난 일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책을 끝냈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형제가,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음을 준 작품. 가족이 꼭 정해진 형태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감추고 덮어가며,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두 사람 모두 한번씩은 아픔을 겪었고, 그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자신을 속일 틈도 없이 툭, 튀어나오는 날것의 감정들도 있었지만요.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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