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기획회의 612호 - 로컬은 잡지로 통한다 기획회의 612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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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한나 작가의 《드라마》를 읽고 서한나 작가가 편집장으로 있는 대전 지역 잡지 《보슈(BOSHU)》를 알게 됐다. 저자 인터뷰를 몇 가지 찾아보면서 《보슈》가 잡지로서 지역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여성 축구팀이나 주짓수 클래스를 운영하고 비혼 여성 커뮤니티를 만드는 등 다양한 활동을 기획해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보슈》가 단지 ‘잡지’가 아니라 ‘문화기획자그룹’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서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기획회의 612호 INTRO에서는 최근의 미디어가 사실상 사람이나 공간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포스트매스미디어’ 개념을 설명하며 지역 잡지 역시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보슈》도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홍대의 이야기를 담은 《스트리트H》, 익산 전통시장인 ‘중앙시장’을 취재한 《비마이크(Be mike)》,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브리크brique》, 지역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방식을 다룬 일본의 로컬 잡지 《턴즈》 등 도시와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지면 밖에서 사람들과의 연결을 만드는 잡지들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었다. 


  612호에 실린 로컬 잡지 이야기에서 돋보인 건 지역에 대한 애정이다. 《스트리트H》 편집장은 홍대를 15년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로 그만 둘 이유를 찾지 않는 관성을 꼽지만 사실 그 바탕에는 홍대만의 개성있는 문화 자산이 지속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있었다. 《비마이크》를 창간한 로잇스페이스 대표는 고향인 익산에 돌아와 지역 재생의 주도자를 자처하고 할 일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위 사례처럼 지역을 아끼는 마음이 바탕이 될 때 잡지가 지면을 넘어 사람들을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 형태가 될 수 있는 듯하다. 《스트리트H》가 쌓아 온 기록은 과거의 홍대 주민, 예술인들과 현재의 홍대 사람들을 연결하며 홍대의 변화 과정과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비춘다. 《비마이크》의 기록은 단순 인터뷰어로서가 아니라 지역 주민으로서 익산 중앙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브리크brique》가 공간에 대한 관심을 사람들의 삶으로 확장해 온 시도 역시 로컬 잡지로서 그들이 만들어 갈 연결을 기대하게 한다. 지역 이주를 고려하는 20~40대 독자를 위한 일본의 로컬 잡지 《턴즈》는 지역의 여러 크리에이터와 함께 이벤트를 기획하고 온라인으로 지역 제품을 소개하거나 지역 비즈니스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앞서 언급한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함께 소개된 ‘지역부흥협력대’나 ‘다거점 주거’ 등 일본의 로컬 정책이나 사업 키워드도 흥미롭다.


  로잇스페이스 대표는 잡지가 사양산업(!)인 출판 중에서도 좁은 영역에 속하지 않냐는 걱정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브리크brique》 발행인은 잡지 다섯 권을 내고 6개월간 휴간을 거쳤다고 하니 괜한 걱정이라며 쉽게 넘길 수 있는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레거시 미디어의 주간지가 폐간된 반면 독립 잡지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잡지라는 매체의 미래가 전부 불투명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치다 다쓰루는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잡지의 특징을 분야의 전문성과 콘텐츠 스타일의 명확성으로 분석했다(p.25). 《브리크brique》 발행인 역시 창간 당시 《여성중앙》 등 대표적인 잡지가 폐간되고 오히려 개성 있는 콘텐츠를 다루는 독립 잡지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핵심 독자를 뾰족하게 설정하는 대신 독자 일반이 좋아하는 이야기로 지면을 채우다 보면 엇비슷한 잡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일까? 뚜렷한 개성을 지닌 콘텐츠와 매체를 원하는 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역 잡지를 비롯한 여러 독립 잡지가 지속할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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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기획회의 611호 - 지속 가능한 로컬 브랜딩 기획회의 611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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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호를 읽으며 '로컬' 개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기획회의》에서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로컬’을 다뤘는데 초기에 나온 로컬호의 경우 다소 수도권 중심적인 시각의 내용이 포함되었다면, 608호에서 관점이 전환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로컬을 서울의 관점이 아니라 지역의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는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611호 역시 전반적으로 그 연장선상에서 ‘로컬 브랜딩’에 앞서 지금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많아서 로컬 특집호가 추가될수록 로컬에 관한 논의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로컬 브랜딩의 현재와 미래〉에서는 인문학과 IT에서 정의되는 ‘로컬리티’를 소개하며 서두를 여는데, 두 영역 모두 로컬리티가 지니는 핵심적인 의미를 공유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문학의 '로컬리티'가 근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편성된 세계 질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탈식민성이나 다양성을 내걸었다면, IT 영역의 '로컬' 역시 독립적인 성격이 강조되는 개념이다. 즉 로컬은 중심에 종속되지 않는 고유성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로컬 브랜딩 역시 지역의 고유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브랜딩 과정에서 사업 이후에도 지속될 지역 주민의 삶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역 주민들의 삶과 지역이 이미 지닌 고유성에서 의미를 찾는 브랜딩이 지속 가능하고, 오히려 타 지역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데 집중하는 것보다 지역 주민의 삶에 집중할 때 효과적으로 유입을 촉진할 수 있다.


  얼마 전 읽은 《압축 소멸 사회》의 저자 역시 지역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나는 청년을 붙잡는 정책보다 현재 지방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려면 지역에 사는 청년을 ‘실패자’로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정책 결정자들부터 서울이라는 중앙에 종속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우치다 다쓰루는 《로컬로 턴!》(이숲)에서 청년이 도시를 떠나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탈출로 분석했다. 이들은 도시 사회의 한계를 일찍 자각하고 생존을 위해 탈출한 사람이지,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지역 주민의 삶을 강조했듯, ‘로컬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몰아내서는 안 될 일이다. 〈로컬은 브랜드가 아니라 삶의 터전〉에서는 지역민을 배제한 도시 재생 사업이 투기 바람과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부작용을 만든다는 점을 꼬집으며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도시 재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의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는 100년의 계획을 가지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며, 독일의 하펜시티 항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은 10년 이상의 전문가 토론을 거친 후 25년 이상 재생을 한다고 한다. 반면 한국은 5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주민이 스스로 결정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로컬 브랜딩이 단지 잠깐 사라질 유행을 만들어 내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관점 자체를 전환해야 할 듯하다. 또한 일본에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차지차가법이나 독일에서 지가상승을 막기 위해 지자체가 개인의 토지나 주택을 매입하는 선매권 제도 등 기사에 소개된 해외 사례를 보며 관련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기획회의 621호-로컬은 새로운 기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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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기획회의 610호 - 콘텐츠 시장의 도둑들 기획회의 610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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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해적판 콘텐츠가 난무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 저작권 인식이 향상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불법 유통 콘텐츠를 즐기거나 콘텐츠를 무단으로 복제·공유하는 사례가 흔하다. 610호  인트로 〈우물 밖에선 불법으로 책을 본다〉 내용 중 가족 모임에서 불법 다운로드 얘기를 들을 때 혼미한 정신을 붙잡아야 한다고 말한 부분에 특히 공감한 까닭이다. 콘텐츠 불법 복제를 일삼는 웹사이트를 당연한 듯 이용하는 주변인의 저작권 인식도 그렇지만, 불법 복제물에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놀랍다. 디지털 기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손쉽게 불법 복제물을 생산하고 유포할 수 있게 되었꼬, 동시에 접근성도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 무단으로 학술서를 스캔하고 유포하는 문제가 늘고 있다고 한다.  전자책 72만권이 유출된 작년 알라딘 전자책 해킹 사태 역시 한 명의 개인이 일으킨 사건이었다.


《기획회의》 610호에서는 알라딘 전자책 해킹 사태로 대두된 콘텐츠 불법 유통 문제의 국내 현황부터 해외 사례, 대응 방안을 폭넓게 다룬다. 첫 번째 글 〈‘전자책 해킹’ 사태가 출판계에 남긴 질문들〉은 제목 그대로 이번 사태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며 출판계가 고민해야 할 향후 과제를 제시한다. 사태 이후 출판계 이익단체를 중심으로 알라딘과의 협상이 이루어졌으나, 한국출판인회의나 대한출판문화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출판사의 경우 협상이 어려웠다는 점과 대책위원회의 다양성이 부족했다는 필자의 지적은 비단 이번 사태뿐만 아니라 향후 출판 관련 이슈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도 새겨 들을 지점이다.


이 글에서 특히 눈에 띈 부분은 전자책 보안과 관한 문제가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했단 점이다. 알라딘 사태를 비롯해 이전의 전자책 관련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DRM 시스템 난립과 디지털 콘텐츠 관련 이슈를 다루는 별도 기구가 부재하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콘텐츠 해외 유통 촉진 기구인 CODA의 사례에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 콘텐츠 불법 유통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많은 만큼, CODA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 수사 공조 프로세스를 우리나라도 도입해 볼 수 있을 테다. 나아가 출판사, 유통사부터 독자의 저작권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전자책 활성화를 위한 제작, 유통, 감상 환경이 제대로 마련되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중요하다. 카카오 피콕이나 네이버웹툰 툰레이더 인터뷰를 통해 웹툰계의 불법 콘텐츠 대응 방안을 알 수 있었는데, 최근 문제시되는 학술서 불법 유통에 대응해 벌인 캠페인이나 반값 대여 서비스가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볼 때 출판계에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면 불법 유통을 방지하는 데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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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621호 : 2024.12.05 - #2024 출판계 키워드 30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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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독서모임 멤버들과 올해 베스트셀러 트렌드를 정리했다. 서점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트렌드 보고서나 관련 이벤트 페이지, 언론 보도 등을 쭉 살펴 보며 어떤 책이 인기를 끌었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번 《기획회의》 621호에서는 베스트셀러뿐만 아니라 한 해 동안 출판계에서 화제가 된 이슈를 한 번에 볼 수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올해는 ‘텍스트힙’ 트렌드를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독서가 ‘있어 보이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도서전이나 출판사 팝업스토어 등 책 관련 행사가 특히 인기를 끌었다. 작년 성인 종합독서율이 43%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하지만, 정작 도서전에 가 보면 책 읽는 사람이 없단 얘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성인 중 20대, 30대 독서율이 각각 74.5%, 68%로 가장 높은데, 도서전 주요 관람객이 20~30대라는 점이 그 이유인 듯싶다. ‘책꾸’ 에디션으로 나온 책이 인기를 끈 것도 젊은 층의 커스터마이징 트렌드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시집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올해 상반기 교보문고의 전체 시집 판매량에서 2030 구매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47%였다. 숏폼 콘텐츠처럼 시집도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인기의 이유라고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이어진 문학 독서의 열기와 텍스트힙 현상이 지속되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수다. 노벨상 발표 이후 젊은 세대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해외에서도 한국 여성 작가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2025년 국가 전체 예산안 중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의 비중은 1.05%에 불과하다. 올해보다도 0.01% 줄어든 수치라고 한다. 실제로 집 근처 도서관에서 일찌감치 희망도서 신청을 마감했단 소식을 듣고 예산 축소를 피부로 느꼈다. 올해 3월에 보도된 한겨레 기사에서도 예산 삭감으로 지역서점이나 도서관이 문화행사 운영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독서문화와 출판산업에 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예산 확충은 물론이고, 이왕이면 ‘전자책 해킹 사태’로 불거진 콘텐츠 불법 유통 문제를 근절할 수 있는 정책도 함께 마련되길 바라야 할 것 같다.


  이 외에도 올해 기획회의에서 꾸준히 다룬 ‘로컬’ 이슈나 창작 플랫폼의 동향, 영상 콘텐츠와 웹툰 관련 이슈, 고전과 과학책, 스포츠, 요리 등 올해 주목받은 화제나 콘텐츠를 출판과 연관지어 살펴볼 수 있었다. 서른 개의 키워드 중 특히 관심이 가는 키워드가 있다면 관련 주제를 다룬 《기획회의》 과월호를 추가로 더 찾아 봐도 좋을 것 같다. 


*“책 읽지 말란 얘기”...정부 예산 줄삭감에 출판·서점계 비명 (한겨레, 202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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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
이관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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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사이만큼 집착에 가깝게 정치 뉴스에 몰입한 적이 없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전까지 나에게 정치 뉴스란 챙겨보려고 노력하는 영역에 있었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뉴스와 SNS를 보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는 주변 반응을 보며, 이것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정치 뉴스에 피로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민생이 걸린 현안이나 우리나라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보다는 가십성 이슈에 더 많은 지면이 할애되었기 때문이다. 정치 뉴스를 보려고 굳이 ‘노력’을 해야 했던 이유다. 물론 언론이 가십에 중점을 둔 이유는 일차적으로 정치가 그러한 사안에 주목했기 때문일 테다. 지난달 경향신문에서 미류 역시 산적한 현안을 무시하는 정치를 문제 삼은 바 있다. 이 책이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압축 소멸 사회》의 저자는 최근 한국 사회가 소멸 위기에 처한 원인을 정치 소멸로 진단하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를 비판한다. 독자는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는 글을 읽으며 근본적 문제 해결의 방향성을 세워 볼 수 있다.


  지금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시의성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마주한 일련의 사태는 ‘정치 소멸’로 볼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정부가 보수의 결집만을 꾀하고 자신과는 다른 입장을 보이는 정치 세력이나 민의를 무시하게 된 것이 분명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검찰국가의 배신》(한겨레출판, 2024)은 윤 정부 이전부터 두드러졌던 검찰의 폐쇄적 조직문화를 해부했으며 《불온한 공익》(한겨레출판, 2024)은 사회가 강자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공익을 인정해 왔다는 점을 짚었다. 이 책의 저자는 변질된 계파 정치나 정부의 사법 관료 포퓰리즘, 대통령의 우경화된 이념과 역사 인식을 지적하며 정치가 내부에서 어떻게 실패해 왔는가를 보여준다. 여당은 가치와 비전을 뒤로한 채 권력에만 눈독 들였으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정치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고 사법적 논란만을 부각했고,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전 정부나 야당을 ‘반국가세력’이라고 명명했다. 독자는 이러한 정치적 실패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와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사회 문제 자체도 시의적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저출생과 자살, 지방 소멸과 기후위기는 시급한 대처를 요하기 때문이다. 저출생 문제는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보다 자극적인 이슈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외국 교수가 한국의 출생률을 듣고 머리를 감싸 쥐며 놀라는 사진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한국에서 출생률이 감소하는 속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의 소멸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한다. 그 원인으로는 자산 양극화와 가계 부채, 여성의 육아 부담이 계속되는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희망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점이 지목된다. 그러나 저출생 예산 지출은 생색내기식에 불과했다. 지방 소멸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정치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성화’를 하라며 오히려 소멸을 가속화했다. 세계 여러 나라가 기후위기에 대응해 RE100이나 기후공시 의무화를 추진하는 데 반해 한국 정부는 기후공시 의무화 조치를 무기한 연기했다. 한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증명하는 얄타 체제의 해체나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 9·19 남북 군사 합의의 효력 정지 등은 전쟁 위협으로 한반도가 우발적 소멸에 직면할 가능성을 보여주며 간담을 더욱 서늘하게 한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6일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를 오직 ‘정부’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저자는 정치가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의 역할에도 기대고 있음을 되새기며 여러 당 사이의 경쟁뿐 아니라 당 내부의 여러 정치 세력 간 경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이때 경쟁이 뜻하는 바는 권력 투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놓고 경합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현 여당뿐 아니라 야당과 소수 정당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정책 마련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지는 일도 중요하다. 저자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사실상 정치 탄압을 받은 것은 맞지만, 당 대표의 생존을 이야기했을 뿐 실제 우리 사회가 마주한 자살률이나 출생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점을 꼬집는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정치에 참여하는 주체로서 시민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4·19, 광주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1987년 민주화, 2016년 촛불 등 위기 때마다 시민이 있었다는 저자의 말대로 2024년 여의도에는 형형색색의 불빛을 밝힌 시민들이 있었다. 시민들에게서 탄핵 이후 정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까닭이다. 시민들은 주권자로서 소멸하는 정치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촉구하고, 숙의와 토론이 가능한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 ‘나중에’라며 뒤로 밀려났던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규정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성차별 타파, 장애인 이동권 보장,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을 비롯해 무분별한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법안을 다시 불러와야 할 때다. 한국이 세계를 통틀어 처음으로 고민하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르는 지금, 이 책을 읽으며 동료 시민들과 정치 및 사회 각 분야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싶다. 저자가 말했듯, 침몰하는 배에서 백 명 중 열 명을 가려 구명정에 태우는 기준을 따지는 식의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면 구명정이 왜 그렇게 작을 수밖에 없는지,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묻고 싶다.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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