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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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마다 우리가 기대하는 감각이 있다. 스릴러에선 심장 쫄리는 긴장감, 액션에선 눈을 뗄 수 없는 시원함, 미스테리에선 도대체 멈출 수가 없는 궁금함 등. 로맨스라는 이름을 가진 장르의 작품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감각이란 무엇일까.

고등학생 때 뭐에 홀린 듯 친구와 엄청나게 많은 로맨스 소설을 독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친구는 이상하게도 ’사랑이 이루어진 이후‘부턴 왠지 재미가 없어 더는 읽고 싶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서로의 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 설렘이 ’로맨스‘ 장르의 진정한 재미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맘고생이 너무 길면 지쳐서 그들을 더는 응원할 기운을 잃어버리는, 이루어진 성취감을 보고 향하는 독자였다.

하지만 이 소설, <The course of Love>는 이 두 감각 모두를 독자에게 선물하지 않는다. 설렘부터 성취감까지, 로맨스 장르에서 기대했던 싱거운 사랑이야기는 아주 초반을 장식하고 그뒤로부턴 로맨스를 그리거나, 재현하는 게 아니라, 손을 만지고 느낄 수 있게 한다.

어떤 소설이든 100쪽 읽어내리면 학기 지낸 친구마냥 대화하고 이해하는 법을 깨닫게 되는데, 이 소설도 그즈음 지나니 ‘사귈 수 있게 되었다’. 로맨스 소설의 문법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심리를 다룬 인문서로 읽으면 이렇게나 쉽고 재미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긴밀한 관계에서 유아가 되어가고, 본인도 몰랐던 어릴 적 기제가 전이되는 장면을 마주하며, 마치 14강 정도의 심리학 교양 수업의 교안으로 받아들이자니 속도가 나길 시작했다. 맘놓고 바보같아질 수 있는 순간들이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 이 로맨틱하지 않은 로맨스 소설에서 역설적으로 낭만을 느껴버렸다.

나의 사랑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생활이 된 순간 사랑이 끝났다고 겁을 먹고 늘 퇴짜를 고려했다. 패턴처럼 굳어진 나에게 이 책은 ‘생활이 된 사랑이야 말로 진실로 지극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드라마나 소설 속, 천 번의 돌부리에도 넘어져 사랑을 외치는 용기보다 서로의 지독한 모습을 속도에 맞게 들켜가며 삶을 완성할 줄 아는 게 더 커다란 용기라고 일러준다.

그런 다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더래요의 ‘오래오래’를 촉각처럼 생생하게 만질 수 있게 하는 이 소설. 아름다운 은유나 숨막히는 사건은 없었지만, 이 거칠거칠한 서사도 나에겐 새로운 즐거움일 수 있구나 라고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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