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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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누군가를 떠나 보내면 그 빈자리가 더 아쉬워 보인다는

수녀님의 말을 따사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덧 수녀님과 함께 울고 웃던 지기들이 한 명 두 명 세상을 등지고 있었습니다.

또 만나자는 약속이 무색하게 갑자기 떠나버린 그들에 대한 수녀님의 가슴 절절한 그리움과

아쉬움들이 글의 전반에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좋은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을 소중히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수녀님의 그리움 한 조각

조각들을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붙여보는 사이 그 그리움들이 마음에

커다란 동굴을 남기고 간 것 같았습니다.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둘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 이해인,(잎사귀 명상) 전문

  

 

매일의 묵상과 누군가를 위한 기도 그리고 시간의 소중함과

그리움이라는 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는

쇠잔해져 가는  육신은 빛을 잃어가면서도 여전히 작은일에 대한 자책과

후회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수녀님의

소녀같은 감성이 페이지 마다 곱게 접혀 있었습니다.

어머니 같은 큰 마음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안아주고 있는 수녀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찌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욕심 한 자락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작은 기쁨들과 친해야 하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기쁨을 부르고

밤에 눈을 감으며 작은 기쁨들을 부르고

자꾸만 부르다 보니

작은 기쁨들은

이제 큰 빛이 되어 나의 내면을 밝히고

커다란 강물이 되어 내 혼을 적시네

내 일생 동안 작은 기쁨이 지어 준

비단 옷을 차려입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고맙다고 말하면서

즐겁다고 말하면서

자꾸만 웃어야지

 

- 이해인.(작은 기쁨) 전문

  

 

항상 작은 것에 기뻐하고, 하루 한 순간도 소중하게 여기며,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

하루 세 끼 굶지않고 먹을 수 있는 은혜와,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있고,

좋은 책과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기뻐한다는 수녀님의 노력하는 마음에서

성서의 한 구절이 절로 떠오릅니다.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라는 결코 쉽지 않은 말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일상에서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시는 수녀님 에게서 청정한 구도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한줄기 신선한 바람이 가슴 한 구석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미사도 참석하지 못하고,냉담자 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다니는 저에게 수녀님의

꽃과 같은 향기와 반짝반짝 빛나는 영성의 기도문들은

구절구절 머리를 옥죄는 가시관이 되기도 하고 못 박힌 상처를 어루만지는

나이팅게일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집이라는 말에선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라는 말은

음악처럼 즐겁다

멀리 밖에 나와 우리 집을 바라보면

잠시 낮설다가

오래 그리운 마음

가족들과 함께한 웃음과 눈물

서로 못마땅해서 언성을 높이던

부끄러운 순간까지 그리워

눈물 글써이는 마음

그래서 집은 고향이 되나 보다

헤어지고 싶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금방 보고 싶은 사람들

주고받은 상처를

서로 다시 위로하며

그래, 그래 고개 끄덕이다

따듯한 눈길로 하나 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언제라도 문을 열어 반기는

우리 집 우리 집

우리 집이라는 말에선

늘 장작 타는 냄새가 난다

고마움 가득한 송진 향기가 난다

 

- 이해인,(우리 집) 전문

 

  

사랑은 가족4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수녀님 역시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서 글과 사로써 역설하고 계십니다.

미소지을 시간과 서로 이야기할 시간도 없는 우리들에게 가정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랑과 헌신 봉사를 실천해야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방황하는 소녀들과 임시로 가정을 꾸리고 부엌일을 하시던 수녀님, 그리고

무의탁 노인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는 수녀님들의 모습에서 가족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속세를 떠난 수녀님 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들에 대한 애정 마저 놓을 수는 없는

인간적인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소설가 고 박완서 선생님과 고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만난적은 없지만

자신의 삶을 바쳐 톤즈의 한 부분이 되어가신 고 이태석 신부를 그리는 마음에서

수녀님이 사람들간의 인간적인 교류와 인연에 대해서

더욱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작은 스침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조그만 인연도 소중히 간직하고 기억해내는

수녀님에게 세상과의 인연은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병상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도하고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아마 모를 것입니다.

비록 책으로 만나는 수녀님 이지만 보석보다 빛나는 글에서 수녀님의

따듯한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순례자

 

강원도의 높은 산과

낮은 호숫가 사이에 태어났으니

나의 여정은 하루하루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았고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았네

 

지금은

내 몸이 많이 아파

삶이 더욱 무거워졌지만

내 마음은

산으로 가는 바람처럼

호수 위를 나르는 흰 새처럼

가볍기만 하네

 

세상 여정 마치기 전

꼭 한 번 말하리라

길 위에서 만났던 모든 이에게

가만히 손 흔들며 말하리라

 

많이 울어야 할 순간들도

사랑으로 받아 안아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아름다웠다고.....

 

-  이해인 2010.7.12 즉흥시(여정)

  

 

별이되어

http://blog.naver.com/oneyefishl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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