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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도 - 영원한 이방인 사백 년의 기록
김충식 지음 / 효형출판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시마구니 곤조, 즉 섬나라 근성 이라는 말은 가장 일본적인 유전자를 투사하는
어휘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슬픈열도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이 괴물같은 단어, 시마구니 곤조로 인하여
일본속에서 정체성 불명의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백성들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엇습니다.
섬나라 라는 지역적인 특성 속에 자신들의 비합리적이고 배타적인 특성을 가두어 놓고,
이것이 우리의 자랑스런 자화상 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시마구니 곤조 라는 괴물의 피해자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리민족 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과 일제 강점기에 열도로 건너 가거나 끌려간
조센진 들이 어떻게 시마구니 곤조와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투쟁의 역사를 써왔는지
책을 읽는 동안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그들과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4046167561476.jpg)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많이 들어온, 김옥균과 같은 비운의 혁명가의 이야기에서부터
노구의 우국지사 최익현, 그리고 잘 알지는 못했지만 이진영과 같은 조선의 선비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이렇게 혁명가 에게는 망명을 지사에게는 유배를 그리고 선비 에게는 피랍 이라는
고통을 주는 땅 이었습니다.
부산에서 50 km도 안되는 거리에 있는 대마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일본의 대륙침략을 위해
가장 최전선에 위치한 침략적 기지 였습니다.
노구를 이끌고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이 넋이 잠들어있는 대마도.
그 대마도를 거쳐서 일본의 본토와 섬으로 끌려간 조선 혼령들의 울부짖음이 부산진 앞바다에
운무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일본땅에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조선의 선비 이진영도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지만,
그들이 가르친 조선의 기개와 정신은 아직도 일본땅에 살아있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얕은 지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이들의 질곡의 삶을 따라 가는 여정은 힘겹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김옥균의 개혁도, 혁명도, 절망도, 그리고 비명에 죽어간 사실도, 부관참시를 당했던
사실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4046167561477.jpg)
박무덕 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일본인 도고 시게노리로 살았던 한국인.
한국인 이었지만 배척의 땅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본인이 되어야 했던 사람.
일본제국의 외무대신 까지 올라서 결국에는 패전 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천황의 존속을 주
장했던 포츠담 선언의 주역.
여섯개의 이름으로 자신의 조국을 감추고 살아야했던 대문호 다치하라 세이슈,
일본에서 살기위해 일본인 보다 더 일본인 처럼 살았던 작가 김윤규,
그리고 성공을 위해,명예를 위해 일본 최고의 영웅으로 군림했던 역도산의 이야기는
일본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시대적인 아픔을 안고 살아야만 했던 힘없는 역사가 만들어 낸
아이러니 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국인 이었지만 애써 한국인 임을 감추고 살아야만 했던 이들이기에 그 괴로움과
노력은 누구보다도 컸을 것입니다.
전쟁광이 득실대는 일본의 내각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었던
도고 시게노리와 일본의 격투기를 부흥시킨 역도산 그리고 일본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고
‘하얀 양귀비’란 작품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다치하라 세이슈의 행적은
비록 한국인 임을 감추고 살았지만, 우리나라의 훌륭한 인재였음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전후 일본의 전범재판에서 20년 징역형을 받고 감옥에서 죽어간 도고 시네노리도
야쿠자의 칼에 찔려서 허무하게 죽어간 역도산도 힘없는 국민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가시밭길 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산하 시마즈 요시히로 등의 부대에 피랍되어 일본땅에 던져진
우리나라의 도공들의 슬픈 역사도 함께 소개 되고 있습니다.
정권을 잡은 히데요시의 그칠줄 모르는 정복욕은 조선반도를 향하여 고니시 유끼나가와
가토 기요마사, 시마즈 요시히로 같은 악명 높은 부대를 파견하여 조선을 침탈합니다.
그들은 조선의 강토를 유린하고 부녀자를 겁탈하고 도륙하는 한편,
본토로 귀환할 때는 가벼운 배가 파도에 뒤집히지 않도록
조선의 백성들을 납치하여 배에 무조건 태우고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기술적인 약탈도 감행하여 조선의 이름난 도공들을 납치하게 됩니다.
조선의 도기에 반한 왜적의 수장들은 그들을 찾아내기에 혈안이 되고,.
피랍된 도공들은 척박한 일본땅에 내버려지고 맙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박해에 이리저리 옯겨 다니면서 가마를 굽고 도기를 구우면서 생활의
터전을 잡으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심수관 가와 이삼평 가가 일본에 내린 도기와 자기의 뿌리는
그들의 눈물과 고향을 향한 사무침이 만들어낸 결정이었습니다.
400년을 이어온 심수관 가의 대물림 그리고 일본 아리타 도자기의 시조가 된 이삼평 가의 대물림은
어쩌면 조국을 향한 그리움의 대물림이며,
자신들이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이었을지 모릅니다.
400년 동안 아들과 딸들이 고통 받고, 또 그 아들과 딸들의 아들과 딸들이 고통 받았던 역사를
누가 보상해주고,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4046167561478.jpg)
한국인 임을 거부했던 다치하라 세이슈와는 다른 정면대결의 삶을 헤쳐나갔던
작가들도 있었습니다.
재일 한국인으로 일본문단에서 존경받는 작가 김달수와 작가가 되기위해 조국과 일본의 정체성에서
몸부림쳤던이회성과 같이 작가가 그들이었습니다.
김달수는“일본 열도에 흐르는 한국 혼” 이라는 답사기와 한,일 고대사와 문화교류사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또한 “현해탄”과 “박달의 재판; 등의 소설을 쓰면서 재일한국인으로서
일본문학의 일인자가 됩니다..
그리고 사할린 태생의 청년, 홋카이도 에서 자라고 나가사키 수용서 출신 청년의 작품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써내려간 고향의 산천이 등장하고 어머니의 향기가 묻어납니다.
일본의 권위적인 문학상 아쿠타카와상에 다섯번 후보로 오르면서도 말도 안돼는 일본의 텃새에
밀려나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다듬이질 하는 여인’ 이란 작품은 어떤 트집도 잡을 수 없는 작품이었기에
결국은 이 작품으로 1972년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하면서 권위있는 재일 작가로 우뚝 서게 됩니다.
다치하라 세이슈는 말합니다 ‘당신들은 정면돌파를 했지만 나는 빙 에둘러서 왔다’고 말입니다.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당하는 불평등과 따돌림을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으로
견뎌오면서 일본 최고의 문단에 오른 이들이기에 우리가 그들의 정체성과 친일의 행적을 논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그러한 시대착오적인 전쟁의 희생양으로 살아간다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 일 것입니다.
그리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희로애락의 족적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김충식
작가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봅니다.
거대한 역사의 강물에 떠밀려 동으로 남으로 흩어지고 죽어간 백성들과
현해탄을 건너지 못하고 바다의 넋이되어 스러진 동포들의 죽음이 헛되이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Oztoto's Cook n Book
http://blog.naver.com/oneyefishl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