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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
김영두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학자의 대명사인 '퇴계와 율곡'
막상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는 모르고 있는 '퇴계와 율곡'
두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어떤 점은 닮았고,
반대로 어떤 점에서는 전혀 달랐는지..
'퇴계와 율곡' 이 살았던 시대 배경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자세히 비교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퇴계는 기대승과 편지로 사단칠정 논쟁을 전개했는데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그것을 따라서 생겨나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그것을 타면서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즉 사람의 감정이 이와 기의 양쪽길로 발현할 수 잇다고 보는 입장으로서
이의 능동적인 활동을 긍정하고 있다.
율곡은 성혼과 사단칠정 노쟁을 벌였는데
인간의 감정은 기가 발하고 이가 타는 한가지 길밖에 없으니
이는 능동적으로 감정을 이끄는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논쟁을 벌인 적이 없고
성리학의 논제를 놓고 주고받은 질문과 대답이 남아있다.
올바른 공부가 무엇인지,
그것을 잘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가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선조 원년에 68세의 퇴계가 임금에게 올린 [무진육조소]에서
국왕이 성군으로서 자격을 갖추어 나가는 것과 아울러
당시의 국정의 문제점을 마지막 조항에서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퇴계는 국왕이 성군으로 성장한다면 그러한 문제는 자연히
해결이 될 거라고 논리이다.
반면에 율곡의 [ 만언봉사] 는 당시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함께
대책이 제시되어 있다.
율곡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시 시행되던 제도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이념의 층위까지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두 사람이 남긴 대표적인 상소문을 통해 보면
퇴계와 율고이 가지고 있던 목표나 이념이 달랐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거기에는 두 사람의 기질 차이도 있었고
살았던 시대 배경도 한몫을 한 것 같다.
현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퇴계와 율곡이 활동하던 시대와는 많이 다르지만
자신의 지식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던
퇴계와 율곡의 정신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