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
서정홍 지음 / 보리 / 199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58년 개띠'를 읽고...
양력으로는 어린이날, 음력으로는 단옷날인 5월 5일, 58년 개띠해에 태어난 한 성실하고 정직한 아저씨의 솔직하고 아름다운 시.
솔직히 엄마의 반 강요에 의해서 읽은 책이었지만 이 책을 잡은 순간부터 난 아저씨가 살고있는, 가난하지만 사랑이 있는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아저씨의 옆집에 사는 학생이 된 것처럼 아저씨 가족의 모습, 그리고 아저씨의 동네와 그 이웃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그려졌으니 말이다.

이 시집은 저자인 서정홍 아저씨와 같은 노동자의 일상적인 삶과, 열심히 사는데도 사회에서는 외면 받는 억울함이 드러나 있다. 아저씨는 넓은 아파트도, 멋진 자가용도 없고, 아들 공부할 책상 하나 사주지 못하는 가난함 속에 살지만, 돈 많은 여느 사장님, 사모님들보다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오셨다.
'김씨 이야기'라는 시를 읽었을 때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가슴이 찡했다.
그렇게 정직하고 열심히 살려고 애쓴 사람들은 왜 단칸방 한켠에서 죽어가야만 하고, 부모 잘 만나서 놀고먹는 사람들이 대접받고 떵떵거려야만 하는 걸까.
정말 그래야만 우리가 항상 말하는 선진국의 대열에 끼어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또, 70초에 한 명 꼴로 늘어난다는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쓰라린 경험이 담겨있는 부분을 읽을 때는 그제서야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이란 사람은 밤새도록 노름판에서 날려먹을 돈은 있고, 손가락 절단 사고 방지할 안전장치 설치해줄 돈은 없는 걸까?
참 웃긴다. 아저씨 말씀처럼 사장이란 사람은 노동자들이 '노름판에서 날려먹을 돈 대주는 기계'로 밖에 보이지 않나 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한국의 전형적인 습성, '돈'이면 다 해결되는 현실이 정말 치욕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화가 났다. 여기저기서 올바른 소리는 많이 들려오지만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말을 지키고나 있는 것인지, 그게 말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알고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돈이 부자들 주머니를 벗어나 가난한 사람들 주머니를 채워줄 때, 그 때 비로소 돈과 웃으며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 것인지 또 의문이다.
내 생각인데, 아저씨는 평생 돈과 웃으며 만날 날을 맞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부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돈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사랑이 있고, 땀이 있다. 열심히 땀흘려 번 돈은 부자들의 그 하얗고 거품 같은 돈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아저씨는 누구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오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다. 하늘에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아저씨의 삶이 존경스럽다.

나도 이제 노동자들의 값진 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그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지 못해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형편이 된다면 정말 끝없이 베풀다가 가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값진 땀 흘리는 노동자가 되지는 못할 망정, 흥청망청 돈 쓰는 속없는 사람은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정말 인간의 삶이며, 돈 많은 사람들이 결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훌륭한 생각을 갖게 해주신 서정홍 아저씨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 시집이 많이많이 팔려서 아저씨가 아들 영교에게 했던 약속을 더 이상 미루지 않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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