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도 좋아
김병년 지음 / IVP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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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었던 책을 1년이 넘어서야 읽었다. 마음은 읽고 싶다는 쪽으로 굴뚝인데 막상 구매해서 보려니 다른 책이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지난주에 이 책을 손에 넣었다. 갑자기 쓰러진 아내를 간병하며 지내온 8년의 삶, 그 삶을 통해 고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는

김병년 목사님의 자전적 이야기는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죄송스러운 마음까지도 느끼게 만들었다.
세상 모든 책이 다 해당되진 않겠다만은 적어도 신앙서적은 읽을 시기가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 그 타이밍에 나는 이 책을 만났다.

김병년 목사님의 지나치리만큼 솔직한 글에 위로를, 그런 목사님의 삶을 인도하고 계신 하나님을 통해 감사를 절로 느꼈으니깐.
내 버거운 삶에 탈출구만을 찾았는데 버거움이라 부르던 그 고통이 실은 나를 살게 만드는 희망이 된다는 말에, 주어지는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이유는 다 깃들어 있다는 말에 갑갑했던 마음이 많이 느슨해졌다. 책 55쪽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밑줄을 진하게 그어 둔 부분이었다.


너무나 약해서 이리저리 흔들리더라도, 역설적이게도 그 흔들림이 나를 온전하게 하고 세상으로부터 때 묻지 않게 한다.


내가 흔들리기 때문에 지금껏 온전할 수 있었다는 말. 내가 자주 넘어지고 낙심했기 때문에 더럽고 추악한 것으로부터 때 묻지 않았다는 말. 물론, 그렇게 연약한 삶으로 살았기에 지금 내가 정결하고 착한, 바른 사람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고통이 나를 온전하게 만드는 갈대 위에 불어대는 바람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니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한마디가 어려움을 견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누군가가 쓴 한 줄의 문장이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는 역할을 하다니. 감사하고 놀라운 문장의 힘. 간증의 힘. 하나님의 힘이라고 밖에는 표현한 길이 없다.
고통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매서운 바람이 오늘도 불었고 앞으로의 내 삶에도 수없이 불어올 테다. 대답하지 않으시고 묵묵하게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그래도 경외하며, 아픔 속에서 이겨내고 일어설 힘을 깨달아야 할테다. 그래도 좋다. 그 고통 너머의 의미를 기억하며 나를 단련시키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매 순간순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만난 문장

 

 

그렇다. 우리의 아픔은 신비다. 하나님의 신비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을 머리로 이해하려는 부질없는 집착으로부터 안식을 얻는다. 신비를 받아들이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인생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
22~23쪽

 

 

소설가 유영갑의 산문집 「갈대 위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를 보면, “흔들리는 갈대에 눈이 쌓이지 않듯 그들 마음의 거울에 때가 낄 틈이 없을 것이다.”라는 설명이 덧붙은 사진이 나온다. 그는 흔들리는 갈대를 선방에서 도를 닦는 남자들의 마음으로 표현한다. 흔들리기에 눈이 쌓일 수 없고, 흔들리기에 무엇이든지 머물지 못한다. 흔들리기에 깨끗하다. 너무나 약해서 이리저리 흔들리더라도, 역설적이게도 그 흔들림이 나를 온전하게 하고 세상으로부터 때 묻지 않게 한다.
55쪽

 

 

눈은 거의 실명하고 다리 부상으로 휠체어를 타고 유방암으로 고생했던 마르바 던은 이렇게 말했다. “일상의 삶에서 멀어질 때 우리는 엄청난 상실을 겪는다. 하지만 다가가는 사랑을 가진 한 사람이 있는 한 그 누구도 장애인으로 살지 않는다.” 내 아내도 그렇게 다가가는 사랑, 임마누엘 사랑을 받을 때, 비로소 환자가 아닌 인간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임마누엘 사랑을 온전히 실천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그 사랑이 몸에 배어들어 완전함에 이를 것을 기대할 뿐이다.
71쪽

 

 

생명을 살렸으나 인생의 짐은 너무도 무거웠다. 인생은 참 냉정하다. 선한 선택을 했다고 고통이 줄어들지 않는다. 바른 선택을 했다고 칭찬해 주지 않는다. 무엇을 선택했든 그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한다.
79쪽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라고 하시는 장모님은 밤새 자고 깨고를 반복하며 딸을 간호하신다. 중간 중간 “으!”하고 탄식하면서도 다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면, ‘감사합니다’는 감사의 고백이 아닌 삶의 버거움에 지친 깊은 탄식으로 들린다. 그 말은 밤이 되면 멈출 수 없는 눈물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인생의 밑바닥에는 고통, 무질서, 혼란, 당혹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감사란 결코 생각처럼 쉽게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다.
115쪽

 

 

감사는 비교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
사람들은 이런 식의 감사가 폭력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비교를 통한 감사는 쉽게 좌절하게 한다. 남과의 비교를 통한 감사는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부실하다. 순식간에 무너진다. 자신의 삶을 허구 위에 세우기 때문이다. 억지 감사는 위선이다. 비교하는 삶은 결코 만족을 모른다. 만족 없이 어떻게 감사가 가능할까. ~
감사가 솟을 때까지 기다리자. 잘 견디기 위해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각자의 삶은 너무나도 다르다.
119쪽

 

 

감사의 제사는 이전에 드리지 못한 것을 일시불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회복해야 할 삶의 태도와 방식을 우선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감사의 제사’는 말의 반복이 아니라 옳은 행위로 돌이키는 것이다.(시 50:23)
129쪽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한 것처럼 “고통받지 않는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에서 구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약해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함 가운데로 오신 것이다.
159~160쪽

 

 

구원하는 능력의 거대함을 실제로 깨닫게 되는 것은, 바로 죄의 거대함과 깊이를 깨달을 때다. 미움과 분노, 음란과 외로움, 그리고 정죄와 무례함, 낙심과 허무함 등 숱한 죄악들이 내 영혼 깊숙이 박혀 있다. 사실, 질병이 가져다주는 고통보다 죄로 인한 고통이 더 괴롭다. 죄는 양심을 부패하게 하고 영원토록 사람을 병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내 죄로 인해 깊이 상처받고 고통받으시기 때문이다.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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