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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나카지마 교코 지음, 승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가족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기는 했지만 어쩐지 그 타이틀을 쓰면서도 어딘가 텍스트가 주는 어색함과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소설은 분명 가족 소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이 짐작이 가는지? 대략의 줄거리로 봤을때 뜻하지 않게 모여 살게 된 대가족이 같이 여러 트러블이나 에피소드를 만들어 가며 요절복통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다가 결국엔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고 화목한 대가족이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정도의 주말극 같은 내용을 예상했다. 여기서 틀린 단어는 '같이'와 '함께'이다. 내 또래도 그렇겠지만 요즘 세대는 대가족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 같다. 이 소설은 핵가족을 넘어서 1인 가구가 많이 늘어난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에서도 핵가족화가 이미 사회적으로 흔해졌고 핵가족화를 포함해 히키코모리, 개인파산, 불임, 이혼, 왕따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요소를 히다 일가를 통해 말하고 가족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비단 이런 문제는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어 더욱 씁쓸한 공감이 가는 소설이었다.
하루만에 호로록 읽어 버린 소설은 그만큼 어려운 내용 없이 가독성 있게 읽힌다. 맨 앞에 나온 히다 일가의 가계도만 잘 기억한다면. 위에서 말한 '같이'가 틀렸다고 한 것은 소설의 구성 때문이다. 치과 의사로 퇴직한 히다 가문의 가장 히다 류타로는 퇴직 후 아내와 치매가 있는 장모, 가장 골치라고 생각하는 히키코모리인 장남이지만 별다른 트러블 없이 평온한 일상를 살아가다가 출가를 했던 두 딸들의 친정 복귀로 갑자기 4대가 한 집에 살게되는 시끌벅적한 집이 된다. 분명 이렇게 갑자기 불어난 가족의 이야기는 같은 시점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것 같지만 한집에 있으면서도 따로 떨어져 사는 느낌이 들었던건 가족 구성원 각자의 시점에서 각각의 입장이 다르게 소제목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 있는 대가족의 구성임에도 그 안에서도 각각 떨어져 있는 핵가족으로 분리된 느낌이라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이런 구성에서 자연히 가족같의 소통은 부제될 수 밖에 없고 작가가 이야기에서 얘기하는 사회적 문제를 더욱 실감나게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았다. 파산한 사위는 가족에게도 딱히 대접을 받지 못하고, 식사와 화장실 외에는 방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 히키코모리 아들은 아예 가족과도 소통하지 않는다.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 하는 손자는 학교에 적응하기 바쁘고 그렇게 만든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치매를 앓는 노모를 돌보기도 벅찬데 이혼한 딸의 아들까지 보느라 점점 지처가는 엄마와 각자의 고민으로 힘든 두 딸, 언젠가 행복한 가족을 만들거라는 꿈이 있었지만 이렇게 각자가 힘들어 하는 가족때문에 고민인 아버지 까지, 시대적 흐름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만드는 가족의 소통 부제의 문제는 바로 내 가족에게도 느낄 수 있어서 더 와닿고 공감이 갔다. 우리나라도 핵가족을 넘어서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경제난과 취업난으로 이른바 3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연애와 결혼, 출산까지 포기해야 하는 요즘 세대에게는 어쩌면 가족의 소통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미래인 것 같다.
"전쟁 후에 사람들이 닦아온 길은 최근 십 년 사이에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제 분들은 모두 불확실한 내일을 하루하루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거지요. 상황이 이러한데 길 위에서 간신히라도 버티면 성공한 사람이고 낙오하면 실패한 사람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가 통용되고 있어요. 게다가 실패한 사람에게 실퍄한 책임이 있는 거라니요. 썩어빠진 논리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따위 논리에 여사님까지 희생되어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느니, 자식을 잘못 키웠다느니 자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중략) 여사님의 걱정은 개인이 끌어안고 있을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해야 할 과제이지요." - 231p
가족 파티라고?
류타로는 다시 한 번 어색함이 느껴지는 이 단어를 곱씹었다. 이 단어가 어색한 이유는 딸들이 집으로 들어온 지 일년이 지났는데도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저녁 식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류타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276p
어렴풋이는 알고 있지만,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첫째 딸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둘째 딸과 그 이상한 머리 색깔의 남자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보다 아들은 어떻게 해서 그 아가씨에게 접근했는지. 모든 것이 베일이 싸여 있었고, 그래서 류타로는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뭐야 이건 고양이 이하잖아!" -303p
대가족이 당연시 되던 시대에 태어난 아버지도 가족을 일구었지만 시대의 흐름 때문에 생겨난 문제 때문에 가족이 다 같이 식사하는 것 조차 어색해지는 상황에서 외치는 고양이 이하라고 하는 말이 어딘지 웃프다.
개성있는 캐릭터와 오히려 어둡지 않은 문체 때문에 어딘가 더 씁쓸한 공감이 가는 소설이었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었달까. 앞으로도 이런 가족의 문제가 일본이든 한국이든 많이 생겨나겠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가족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아프지만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