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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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흔해진 말 중 결정장애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결정해야할 때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의미쯤으로 말할 수 있는데 그 결정에는 일상에서 해야하는 아주 사소한 결정, 예를 들어 점심메뉴나 옷 색깔 등에서 부터 크게는 미래나 진로 등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까지 다양하다. 사소한 결정은 물론 어느 쪽을 택하건 아무런 피해도 없으며 자신의 진로나 미래 또한 그 결정은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조금 더 큰 의미로 확장해 봤을 때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서 생과 사의 기로를 오가고 더불어 그 결정이 내 생명이 아니라 남의 인생을 좌지 우지 하는 거라면? 단순히 결정 장애라고 표현하기에는 모자랄 것 같다. 이 소설은 그런 결정을 수 없이 내려야 하는 영국의 고등법원 가사부 판사의 이야기이며 그 결정에 생과 사를 오가는 한 소년과 더 크게는 제목의 의미와 같이 영국의 아동법에 의해 결정되는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 보통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다루는 고등법원 가사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메인 시놉에도 나와있듯이 소설은 고등법원 가사부 판사 피오나와 백혈병에 걸린 17세 소년 애덤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치료를 위한 수혈을 거부하고 병원의 이의 제기로 사흘 안에 그 결정을 해야 한다는게 주요 스토리이다. 이 시놉에서 느낄 수 있는 서스펜스를 소설에서 많이 기대했던건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고 미리 말하고 싶다. 소설은 단순히 피오나와 애덤의 이야기를 넘어 좀 더 넒게 보아야 할 것 같다. 영국의 고등법원 가사부에서 다루는 보통 사람들의 분쟁은 결혼과 이혼으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과 여러가지 분쟁을 주로 다루는데 그로 인해 방치되어 가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칠드런 액트 즉 아동법에 의거해 법원이 대신 부모의 역할을 하는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와 애덤의 이야기에서 각자가 생각해볼 수 있는 가치 판단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소설이다. 그래서 재미있다는 거야 뭐야 라고 묻는다면 좀 애매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애초에 기대하고 예상한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아 조금 실망은 했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피오나의 사생활 이야기가 너무 많고 애덤의 이야기가 너무 적어 아쉬웠지만 소설에서 작가가 던진 화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만큼 깊이 있는 소설이었다. 이언 매큐언의 처음 읽는 소설이었지만 다른 작품도 찾아 보고 싶을 만큼은 된다는 얘기다.

소설을 읽는 모두가 그럴 것 같지만 내가 만약 피오나의 입장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를 가장 크게 생각해봤다. 사실 이 결정에는 옳고 그름도 없고 선과 악도 없다. 오로지 신념과 가치 판단만으로 내려야 하는 결정인 것이다. 애덤처럼 종교에 의한 순교나 그 어떤 일에 대해서 타인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할 권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누구에게도 종교적 자유는 있으니까. 생명의 존엄성이냐 종교적 신념에 대한 존중이냐 분명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이 될것 같다. 그래도 내가 햐야 한다면 피오나가 내린 결정과 마찬가지로 오롯이 애덤에게 더 나은 방향이 될 수 있도록만 생각한다면 그녀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애덤이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 또한 환경적  영향으로 인한 잘못된 판단일 수 있고 죽음은 어떤 이유에서건 누구나 두려울 테니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소년에게는 앞으로 후회하더라도 기회를 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종교적 자유를 떠나 피오나처럼 한번 더 자신에게 기회를 주라고 설득하고 싶었다. 그 외에도 피오나가 해야 했던 수많은 결정들. 옳고 그름 보다는 도덕적 측면에서 해야할 판단이라서 더욱 어려운 것 같다. 법이 정한 권한으로 판사들은 판결을 내리지만 어느 누구도 남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폭력적이거나 마약이나 알콜 중독의 부모들로 부터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건 명백하지만 그 외에 애덤처럼 종교에 의한 도덕적 가치 판단은 결정하기가 어렵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리도 비난이 날아들 이러한 판단과 결정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히 풀 수 없는 가장 큰 딜레마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죽어가면서 슬픔도 후회도 추억도 점점 옅어지다가 결국엔 아무런 의미도 남지 않을 것이다. 종교나 도덕체계는(내 종교와 도덕체계도 마찬가지로) 멀리서 바라보는 산맥의 빽빽한 봉우리들 같아서, 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더 눈에 띄게 높거나 더 중요하거나 더 진실하지 않다. 판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55p 중

외국소설이고 그들의 정서대로 오롯이 이해하지 못하는 배경에서 작품성이나 문체을 말하기는 힘들지만 어쩐지 섬세하고 우아한 문체라고 표한한 말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듯 했다.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사회적 문제를 심오하게 다루면서 소설적 재미도 놓치지 않은 소설이면서, 소설 속의 화두가 어떤 이에게는 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이런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면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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