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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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과 표지, 낯선 작가의 이름까지 어딘지 으스스한 느낌을 풍기는 이 소설에 나는 제목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 제목에서는 일단 그 어감에 따라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한데 하나는 '죽고 싶어 질때 전화해 내가 위로해 줄게'라는 것과 '죽고 싶어 지면 전화해 그렇게 되도록 해줄게' 혹은 '같이 죽어 줄게'라는 의미. 나 같은 경우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는 전자의 의미로 느꼈지만 사람마다 어떻게 느끼느냐는 다를 테고 그 느낌에 따라 소설에서 느껴지는 의미도 달라질 것 같다. 전자로 느꼈다고 해서 위로와 희망에 가득찬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오히려 후자의 의미에 맞는 내용이랄 수 있다. 띠지에 로맨틱 악녀 소설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 어디서도 로맨틱한 느낌은 느낄 수 없었고 악녀 소설이라는 면은 소설속에 악녀로 면한 하쓰미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소설을 받아 들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병맛. 그 의미에 대해서는 1도 모르면서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났던 단어이다. 그 뜻을 찾아보고 줄임말의 풀이나 의미가 생각보다 나쁜뜻이어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 생각이 나는건 어쩔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소설에 대한 전반적인 것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소설은 전체적인 스토리와 그 플롯, 독자들이 느끼는 그에 담긴 의미와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 등의 요소가 있는데 철저하게 스토리만 보자면 병맛이란는 느낌이었다. 큰 사건 없이 그저 소설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삼수생 도쿠야마라는 남자가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하쓰미라는 여자를 만나 그 여자에게 서서히 빠지게 되면서 주변과 철저히 차단되는 고립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는 얘기다. 뭔가 하나가 없다는 느낌이었고 재미로만 따지자면 그야말로 병맛. 딱히 작가가 뭘 말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도쿠야마라는 바보가 더 바보가 되어가면서 쓴 일기같은 느낌. 신인인 작가에게 대단한 문학성을 바랄 수는 로맨틱 악녀 소설이란 콘셉트는 대중적으로 풀어가려는 느낌이라 심오한 메세지를 느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소설 전체가 그런건 아니다. 아주 형편없었다면 읽다가 팽개쳐 버렸겠지만 어쩐지 끝까지 읽게 되는 기묘한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속의 하쓰미의 행동이나 세계관에서는 생각해 볼 거리가 꽤 있었고 그녀의 그런 세계관에 기인한 시각에서 뿜어내는 타인에게 쏘아대는 독설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랄지 통쾌한 감정도 들었다. 나 또한 하쓰미처럼 반쯤 이상은 염세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공담되는 부분도 꽤 있었다. 남에게 옳은 소리 잘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하쓰미나 도쿠야마가 날리는 독설은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꼈고 하쓰미가 취미로 읽는 살벌한 책들의 이야기에서 조금은 잔인함에 대한 거부감과 동시에 흥미로움 또한 느꼈다(나도 변태인가?). 그렇다면 하쓰미는 과연 악녀라고 해야할까? 악녀 소설이라고 명확하게 명시를 했건 어쨌건 그녀가 악녀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것 같다. 악녀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보자면 도쿠야마라는 한 인간을 자신의 어두운 죽음이라는 세계에 물들도록 이끄는데 도쿠야마의 주변에서도 하쓰미로 인해 도쿠야마를 망치고 있으니 멀라하라는 충고를 하고 도쿠야마의 처지도 점점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어 가서 그녀가 악녀라는 느낌이 있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도쿠야마 자신의 선택에 의한 일이라는 점에서 하쓰미는 악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쓰미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오히려 도쿠야마와 함께 하는 동안은 잘해주려 한다. 강제로 무언가를 한다는 느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도쿠야마의 주변에 쓸모없는 인간관계를 정리해주어 속에 시원한 느낌도 있다. 그런 인간관계를 뺀다면 만날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있지만 사교적이지 못하고 그런 인간들만 만나는건 도쿠야마 자신의 잘못이다. 자기 자식이 나쁜길로 빠지는건 꼭 나쁜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라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이 하쓰미를 악녀로 느껴지게 하는 것 같다. 반면 악녀라는 점에서 보자면 하쓰미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면모와 지극지 현실적인 인간이라는 점에서이다. 주변과의 관계를 일절 끊고 하쓰미와의 결혼을 꿈꾸지만 그녀의 부모님이 도쿠야마는 재일 한국인이라서 반대한다는 이유로 거절하는데 난 이 대목에서 엥? 하는 느낌이었다. 실컷 신비한 무드를 풍기며 도쿠야마와 계속 함께 일것 처럼 해놓고 정작 결혼이야기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여자로 돌변한 것이다. 그 이유가 너무 갑작스럽고 엉뚱해서(이것도 병맛 요소중 하나) 재일 한국인이라는 작가가 자기 얘기를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쩐지 여기서는 악녀라는 귀여운 타이틀보다 나쁜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리고 죽음이 난무하는 이야기에 심취해 있지만 어쩐지 그 가면 뒤에서 한 남자를 마음대로 바보로 만들고 쾌락을 느끼며 정작 자신은 죽을 마음도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을 자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정작 죽기 싫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혼자이기를 원하지만 혼자 있기 싫다는 강한 의지같은 것도 말이다.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정작 그 사람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훨씬 강한 파급력을 가진다. 걱정해주며 자기 자신은 힘을 내어 살아가야 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쿠야먀처럼 같이 우울과 무기력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그게 자기 자신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영향이 지속적이고 파급력이 크다면 의지가 약한 사람에게는 선택의 의지마저 앗아 갈 수도 있는게 아닐까. 나 같은 경우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 무기력과 우울에 빠질때도 있지만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질 때도 있다. 어느 쪽으로 느끼든 각자의 몫이겠지만 이 소설로 인해 내가 생각하는 죽음과 그에 대한 의지력이랄까 그런것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소설은 분명하게 끊기는 소단위 없이 처음 부터 끝까지 달려야 하는 마라톤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힘들다고 중간에 내려놓지는 않은 기묘한 소설이었다. 병맛이라고 했지만 어쩐지 중불에 은근하게 끓어 뼈속 깊이 우려내는 사골같기도한 느낌이랄까. 인간의 내면에 있는 여러가지 것들을 끌어내어주는 깊이는 있었던 것 같다. 약한 사람이 베갯머리에 놓고 되풀이해서 읽는 소설을 쓰고 싶다던 작가의 말대로 인간의 내면에 가장 어두운 부분을 말하는 하쓰미의 세계관을 통해 자신의 의지력을 시험해보고 다져보는 시간을 갖기에 좋은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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