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의 연인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여름을 싫어한다. 타는 듯한 햇살도 열대야로 잠못 이루는 밤도, 그리고 장마철 습하고 눅눅한 공기가 있는 여름이 싫었다. 나에게 타이완의 이미지는 10년전 내 고향에서 열리는 큰 영화제의 야외극장에서 본 영화에서 시작된다. 도쿄와 타이완, 중국 각 3개국의 감독이 같이 연출한 영화는 각국의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는 세가지 이야기의 러브 스토리였고 그 속에서 나온  타이완의 모습은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과 눅눅하고 습한 공기에서 느껴지는 더위였다. 스토리는 재미있었지만 타이완이라는 나라는 여름을 싫어하는 내게 그저 영화나 TV 에서나 볼 곳이었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여름은 좋아지지 않았지만 적응이 된건지  예전처럼 그렇게 싫다는 느낌 또한 들지 않는다. 그런 중에 읽은 요시다 슈이치의 <타이베이의 연인들>은 남국의 습하고 더운 타이완을 꼭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타이완의 풍경과 인연의 소중함
소설과 관계없는 사설이 길었지만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가 눈앞에 영상이 보이는 것처럼 섬세하게 묘사한 타이완의 풍경이었다. 애초에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스토리는 내가 좋아할만한 간질간질한 로맨스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로맨스라고 분류하기에는 더 드라마틱하고 장대한 느낌이다. 기대했던 로맨스의 느낌이 약해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타이완 곳곳의 생생한 풍경과 어우러져 그 풍경을 달리는 고속철도와 이어지는 각각의 사랑과 인연의 이야기는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젊은 남녀의 사랑의 설렘은 물론 다양한 세대와 환경의  등장 인물들로 인해 느껴지는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그들만의 각가의 스토리 때문인 것 같다. 타이완을 여행 중이던 일본 여자 다다 하루카는 타이완 남자 료렌하오를 우연히 만나 하루동안 타이베이을 안내받게 되고 서로 호감을 가진채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지는데 그 후 연락이 끊기고도 서로를 잊지 못해 각자 서로의 나라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의 나라에 대해, 그 나라의 사람들에 대해 서서히 이해하고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단 하루 여행지에서 잠깐 만난 인연이라면 요즘은 그저 잊기 쉬울 것이다. 인연이라는 단어를 그리 흔하게 쓰지 않는 요즘은 그런 만남이라면 소홀하기 쉽다. 그렇게 치부될 인연이라도 소중함을 말하려는 작가의 마음이 다다 하루카와 료렌하오는 물론 타이베이와 고속철도에 관련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다.

사랑의 시작, 진부한 공감과 설렘
이름도 모르고 심지어 국적도 다른 두 남녀가 사랑에 빠졌다. 진부한 노래 가사 같지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어디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유일하게 로맨스의 설렘을 느낄 수 있는 다다 하루카와 료렌하오의 만남에서 하루카가 그에게 호감을 갖게된 이유에서 묘한 공감과 설렘이 느껴졌다. 사랑의 시작의 방식에 대한 작가의 표현이 좋았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는 아디다스 운동복 바지에 목둘레가 살짝 늘어진 파란 타셔츠를 입고 있었다. 오랫동안 빨아 입어 낡은 티셔츠였고 아직도 세제 냄세가 풍길 것 같았다. 우연히 재회한 사람이긴 하지만 타국 땅에서 낯선 남자의 권유에 응해 스쿠터에 올라탄 이유를 한 가지만 들라고 한다면, 하루카는 아마도 그 티셔츠 때문이었다고 대답할 것 같다. 72p 


섬세함에 섬세함을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사는 노인 하야마 가쓰이치로와 젊은 시절 절친이었던 타이완 사람 랴오총(나카노 다케오)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거지만 두사람이 같이 학교를 다녔던 시기는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대였다. 일본 사람인 작가의 시각에서 쓴 타이완이나 타이완 사람들에 대해 썼기 때문에 일본인의 편협한 시각이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그러지 않도록 섬세하게 신경썼다고 하니 뭔지 모를 안도감이랄까 작가의 세심함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렇듯 요시다 슈이치의 <타이베이의 연인들>은 사랑은 물론 소통을 통한 두 나라의 이해와 화해, 인연의 소중함을 다양한 세대와 아우르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자칫 여러 등장인물과 이야기들로 산만할 수 있는 것은 고속철도의 시작과 완성으로 하나의 선로에 묶어 오히려 고속 철도가 완성되어 가는 과장과 함께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기대감을 주었다. 여름의 끝자락인 요즘 아쉬움이 남는다면 남국의 아름다운 타이완에서 기차 여행하는 설레는 기분과 더불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소설로 읽어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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