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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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멸할 줄 알면서도 불빛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그 끝이 죽음임을 알면서도 머나먼 파멸의 여정를 떠나는 한 남자를 따라올 자신이 없다면 말이다. 스토리만 따져본다면 분명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본다. 가족을 버리고 한 여자를 쫓아 먼 길을 떠나는 것부터 그가 사랑한 연상의 여자와의 성적 묘사는 작가 자신도 비난의 뭇매가 날아들거라고 예상하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50대의 남자 김진영은 주류 회사의 자금 담당 이사로 하루 하루 가장의 삶을 살다가 문득 삶의 권태를 느끼고 우연히 알게 된 연상의 시인 천예린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가 돌연 그녀가 사라지고 그녀를 찾기 위해 모든걸 버리고 위험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불과 몇 년 전 이었다면 이러한 스토리는 읽다가 말았을 것 같은데 소설을 다 읽은 지금은 나 조차도 기묘한 기분이었다. 처음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중년의 남자에 대해서는 잠깐 그의 아들 선우의 입장이었다. 아직은 중년의 나이도 자식도 없어서인지 몰라도 내가 선우였다면 결코 용서하지 못했을 거라는 분노를 느끼면서 읽었다. 단순히 이런 불륜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또 읽기를 중단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깊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깊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다. 문장이나 표현들이 좋아서 내용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문장이 나를 이끄는 것 같았고 그래서 막힘없이 읽어나갔다. 다 읽은 지금도 김진영을 천예린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보여준 행위들도. 그런데도 좋았다니 나도 참 기분이 묘했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호수 바이칼호 같아서 그 호수를 멍하니 바라본 것 같기도 하고 김진영처럼 나도 바이칼에서 죽은 천예린에게 홀려 바이칼호까지 이끌려 간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끝에 작품 중에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처음에 2600매에 달라던 작품을 거의 반을 잘라내어 1500매로 다듬었고 최근에 또 다시 300매를 깎아내어 새롭게 내었다. 오랜 세월 작가의 손에서 다듬어져 남다른 애착이 묻어나는 것도 같다. 마지막까지 생애를 바쳐 천예린을 따랐으나 결국 그녀에게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고 느끼는 분노에의 허무한 결말에도 허무는 느껴지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며 이미 마음이 꽉 찼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단순히 불륜의 러브스토리로만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스토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스토리 만으로는 읽어보라 추천하기는 힘들다. 좋다고 하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가의 문장이 좋았을 뿐 문학적으로 작품성이 어떠하다는 판단도 못한다. 단지 그냥 읽는 내내 좋다고 느꼈을 뿐인 작품이지만 세월이 흘러 시간의 주름을 알 나이가 될때쯤 꼭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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